<인어공주>가 어머니를 이해하는 방식 | ||||
[일다 2004-06-28 03:08] | ||||
<인어공주>가 순박한 해녀와 백마 탄 왕자님 같은 우체부의 정감 어린 로맨스 영화에서 넘어선 이유는 고두심이 맡은 ‘아줌마’ 캐릭터에 상당부분 의존한다. 영화의 시작은, 빚 보증을 선 남편 때문에 초상집에 가서 엉엉 울면서 고함지르는 고두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삶에 찌든 티가 덕지덕지 붙은 그녀의 연기는 영화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데, 그녀는 세월의 힘에 의해 보기 싫을 정도로 속물적인 ‘아줌마’로 살아가는 여성에 대한 이해를 불러온다. 목욕탕에서 때를 밀며 바닥에 침을 탁탁 뱉다가 목욕탕 주인이 잔소리하면 시익 웃으며 무마하고 다시 침을 뱉는 그녀의 넉살은 절로 감탄을 불러일으킬 만큼 리얼해서 어느새 ‘아, 우리 엄마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녀는 ‘년’자 소리 써가면서 마구 욕을 하다가도 요구르트 마사지 하면 피부 매끈해진다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손님을 꼬드길 줄 알고, 계란 값을 속여서 낸 여자 앞에서 쓰레기통을 뒤집어서 계란 껍데기를 확인시킬 만큼 무시무시하게 거센 인물이다. 팍팍한 현실 속 어머니와 딸 도대체 존경할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어머니, 한국 영화에서 이 같은 캐릭터는 별로 등장하지 않았다. 고두심 정도의 현실감을 획득하려면 현실의 ‘아줌마’들에 대한 관찰력이 상당히 필요하니, 그 이전에는 현실의 어머니들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는 소리다. 마요네즈를 바르는 <마요네즈>의 김혜자가 이 같은 생생한 ‘아줌마’ 모습을 선보인 바 있었지만, 그 영화 역시 소설이 원작이었다. 오랜만에 외식을 왔는데 게장 더 달라고 큰소리치고 ‘쉬고 싶다’며 눈물 흘리는 아버지한테 못할 소리 해대고, 목욕탕에서 손님과 몸싸움을 벌이면서 머리채를 흔드는 어머니 앞에서 딸은 할 말이 없다. 어머니는, 딸이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아줌마’인 것이다. 어머니와 딸은 아버지로 인해 가난해진 현실 속에서 함께 살아왔기에 누구보다도 가깝지만, 누구보다도 애증에 휩싸인 관계이기도 하다. 딸은 아픈 아버지가 집을 나가도 찾을 생각 하지 말라고 고함지르는 비정한 어머니 앞에서 “이런 가족 없으면 좋겠다”고, “나에게는 오로지 현실 밖에 없다”고 괴로워한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런 딸의 모습도 마음을 울리는 데가 있다. 팍팍한 현실과는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고 싶어서 뉴질랜드로 떠날 생각에 꿈에 부풀고, ‘가족을 만드는 일에 자신이 없으니 나는 혼자 살 것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애인 옆에서 엉엉 울어버리는 딸은 아직도 희망이 남아있는 소박한 성격인지라 그래서 고집스럽다. 딸은 하는 수 없이, 혹은 자신의 의지대로 아버지를 찾기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았던 섬으로 떠난다. 다행스럽게도 뉴질랜드의 푸른 바다만큼 아름다운 우도의 푸른 바다는 그녀가 꿈꾸던 다른 세계를 선사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환상적인, 다른 세계에는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다. 어머니는 잘생기고 착한 우체부 때문에 마음이 콩콩 뛰는 상태. 딸은 사랑의 열병에 걸린 나머지 짠 부침개를 들고 동네를 다 뛰어다니면서 한번만 우체부에게 말 걸고 싶어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어느새 어머니를 도와 아버지와 맺어지게 해준다. 판타지로 표현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로맨스 해녀 시절의 어머니 연순과 아버지 진국의 로맨스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들지만 성격상 판타지에 더 가깝게 위치한다. 인심이 좋아서 집집마다 부침개를 돌리는 연순이나 길 가는 우체부를 붙잡아서 막걸리 한잔 건네주는 아주머니들이 사는 우도는 저런 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면 참 좋겠다는 보편적인 소망이 투사된 공간이다. 이는 <인어공주>라는 영화의 대중적인 성격을 규정한다. 연순과 진국의 로맨스는 누구에게나 있으면 싶은 따뜻한 판타지인 것이다. 글을 몰라서 진국에게 배우며 즐거워하는 연순의 모습이나, ‘오라이’ 에피소드는 말랑말랑하고 정겹다. 여기에 도대체 저런 우체부가 어디에 있을까 싶은 박해일이 연기한 진국의 모습은 판타지의 핵심에 있다. 억척스럽고 단순한 연순의 모습이나, 어릴 때의 모습이 현재와 비슷한 연순 동생의 모습에서는 과거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잘 다루는 것이 <인어공주>의 장점이다), 연순에게 한글 가르쳐주고 자전거도 태워주는 등 지극 정성을 다하는 순박한 진국은 심지어 연순이 아플 때 밤새 바다에서 물을 퍼다 오는 진득한 면모까지 갖추고 있어, 거의 완벽에 가깝다. 그래서 진국의 경우 현재의 무능력한 모습과 그다지 이어지지 않는다. 또한 영화 전반에 걸쳐 진국의 캐릭터는 ‘고개 숙인 가장’이라는 기능만을 수행할 뿐 그 색깔은 희미하다. 연순에게 왕자님이었던 그는 어느새 빚 보증 때문에 월급 한푼 집에 가져오지 못하고 딸 등록금까지 잡아먹은, 보기만 해도 연순의 짜증을 일으키는 존재가 되었다. 그만하면 그 역시 살아오면서 받은 피로감이 엄청날 텐데 영화는 진국의 피로감을 삼겹살과 소주 앞에서 흘리는 눈물 한 방울과 갑작스런 죽음으로 처리해서, 무게감만 표시할 뿐 영화 속에서 그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딸의 시각에서, 딸로 하여금 어머니와 아버지의 로맨스를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딸에게 어머니를 수용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수용해보자’는 제안 어머니는 죽어가는 아버지 앞에서 차마 아버지를 바라보지 못하고 열어놓은 문을 통해 “가진 거 하나 없이 살아왔는데 질기게라도 살아야지”라고 외치면서 비통해하고, 딸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울어버린다. 이제 과거의 따뜻한 로맨스는 초라한 현실과 대조되면서 어머니와 딸 모두에게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자, 소망이 투사된 판타지로 남는다. 어머니는 사진 속 아버지가 우는지 웃는지 기억하냐는 딸의 물음에 “싱거운 것, 웃것지 울것냐”라는 털털한 멘트로 과거의 로맨스를 마무리한다. 어머니와 딸에게 과거는 행복한 로맨스로 기억 속에 남았지만, 과거에 로맨스가 있었다 한들 어머니는 다시 과거의 소녀로 회귀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 또한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딸은 어머니를 수용하고, 여전히 어머니와 싸우면서 살아간다. 아무리 존경할 구석이 없다고 해서, 쓸 만한 장롱 건져왔다고 자랑하면서 딸 방에 밀어 넣는 어머니를 머리에서 지워버릴 이유는 없다. <인어공주>가 어머니를 이해하는 방식은 소박하지만 상당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존경할 점이 없는 사람들이라 해도, ‘현실’에 힘들게 적응하면서 살아왔기에 후세대의 비난이나 전세대의 변명 대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수용해보자는 것. 이는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그 존재감이 희미한, 오로지 ‘자식들과 남편 때문에 고생하는 존경스러운 어머니’로서의 이미지만을 가졌던 수많은 여성들을 폭넓게 이해하는 괜찮은 방식이 될 수 있다. * '일다'에 게재된 모든 저작물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옮기거나 표절해선 안 됩니다. ⓒ www.ildaro.com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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