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릴레이]사랑학 개론 (1)
여성신문 2002-02-15
여자들에게 사랑은 무엇입니까.
나고 크면서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여러 종류의 억압들은
그들로 하여금 맘껏 사랑할 수도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거 정말 이상한 말이다 할 사람도 있겠지만
사랑은 결국 자기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지는 정희진 씨와 이미경(성폭력 상담소에서 다년간 일함)씨 그리고 이경미(의 번역자. 전북여성단체연합 교육위원장)씨의 릴레이 칼럼을 실으려고 합니다.
똑똑한 사랑으로 자신을 윤택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가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에 누군가 이렇게 써 놓았다.
“amor vincit omnia(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
맞다,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한다.
그러나 유지태의 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가 유행어가 된 것은,
우리가 그것이 어처구니없는 말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여전히 영원한 사랑을 욕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에 빠질 땐 누구나 닐 세다카의 노래처럼
‘당신은 나의 모든 것(You mean everything to me)’이 되지만,
이는 사랑에 빠진 그 순간에만 진실이다.
그래서 실연 경험이 있는 일부 지각 있는 사람들은 - 의 이영애처럼 - 사랑에 빠지되 사랑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인들은 상대방에 대한 ‘객관적’ 분별력을 상실하고, ‘모든 것이기에 유한할 수밖에 없는’ 인생 법칙을 통찰하기 어렵다.
며칠 전 소위 ‘용납될 수 없는 사랑’을 경험한 - 언제나 그런 사랑의 각본이 그렇듯이 유부남에게 ‘채인’- 후배가 실연의 고통을 호소해왔다.
그녀 고통의 주요 골자는, 세상 누구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어떤 특정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상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모든 사람은 차별주의자가 되고, 인권 의식이 없어진다.
지금 그녀에게는 ‘그 사람 = 온 세상’이다. 사랑하는 사람 외 다른 사람의 코멘트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남자 친구가 예쁘다고 해야 ‘객관적’으로 자신이 예쁘다고 느낀다.
실연에 빠진 사람에겐 그 사람만이 의미 있는 유일한 인간이므로, 이 세상 모두가 ‘영원히’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독일 영화 의 원제목(Keiner liebt mich),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애인 없는 여주인공의 심리를 정확하게 표현한다.
근데, 이러한 과대망상은 남녀간의 차이가 있다.
실연이라는 인간 고통에 무슨 위계가 있으랴만, 사실 이성애 맥락에서 사랑만큼 성별 분업(성 역할)이 철저하게 관철되는 감정 노동도 없다.
남자에게 사랑은 인생의 일부분이지만 여성에게는 전부가 되는 사회구조 때문이다.
내 후배의 경우처럼 그 유부남은 관계 이후에도 돌아갈 가정과 직장이 있다.
남자는 실연 후에도 사랑 외에 자신이 몰두할 수 있는 일과 기회가 여성들보다 훨씬 많을 뿐 아니라, 실연 후 괴로움을 오래 간직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에게는 오히려 그러한 상태가 여성다운(지고지순한, 일부종사 하는…) 것으로 암암리에 ‘격려’된다.
더 근본적으로는 남성 중심 사회 자체가 남성을 통해 여성의 자기 가치와 자기 인식을 부여하기 때문에,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성은 가치 없는 여성이라고 여겨지기 쉽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리고 자신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 뿐이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여성은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느낀다.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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