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펴낸 정희진씨
한겨레 2001-09-08
"꽃을 기다리지 말고 경찰을 부르세요.
남편은 언제나 안 때렸다고 한답니다."
캐나다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내 폭력'에 대한 공공 포스터 문구다.
여기서 제목을 따온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는 지난한 여성운동 경험을 지닌 여성학자 정희진(34)씨가 새로운 관점에서 '아내 폭력'을 조명한 책이다.
"대학 때는 이른바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학생이었습니다. 졸업하고 여성운동에 뛰어든 것은 단지 여성들을 민주화운동에 동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1992년부터 한국 여성의전화 연합에서 5년 동안 상담가와 교육가로 활동한 뒤 그는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여성학에 대한 전문적 연구에 심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98년 늦깎이 학생으로 이화여대 여성학 석사과정에 입학했고, 그때부터 '여성과 인권 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아내 폭력'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아내 폭력의 장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학문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겨우 90년대 들어서부터였고, 20년 역사를 지닌 이화여대 여성학과의 경우도 아내 폭력에 대한 논문이 전무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아내 폭력'을 화두로 잡기 시작한 뒤, 피해 여성 45명과 가해 남성 5명을 심층면담했다.
짧게는 한 차례 면담을 하기도 했지만, 길게는 일곱 차례에 걸쳐서 만나기도 했고, 남성의 경우는 모두 열 차례에 걸쳐 23시간 동안 만났다.
이 책은 심층면담의 사례를 바탕으로 아내 폭력의 발생 메커니즘과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이론적으로 풀어낸다.
아내 폭력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은 '피해자 유발론'이다.
쉽게 풀어 말해,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았겠지'라는 식이다.
이것은 성격 차이 때문에 남편은 아내를 때리지만, 아내는 남편을 때리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말대꾸를 했다고 남편은 아내를 때리지만, 그런 이유로 아내는 남편을 때리지 않는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또다른 시각은 '가정 폭력적 접근방식'이다.
아내 폭력을 어린이 학대, 노인 학대 등의 가정 폭력의 일종으로 보는 관점이다.
아내 폭력의 원인을 다른 가정 폭력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 개인간 심리의 문제 등으로 환원시키는 이 관점은 남녀 사이의 권력 관계를 무시하고, 단지 폭력을 행사하는 개인의 정신적 문제로 축소시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1960년대 타이의 한 지역에 관한 연구를 보면, 아내 구타는 극히 드문 현상이었는데, 그곳에서는 성에 따른 노동 분업이나 남녀 분리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씨는 "아내 폭력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사회 문화가 아내 폭력의 핵심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아내 폭력을 '가정 폭력'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여성 인권 운동사)와 (한국 기지촌 여성 운동사)를 펴내기도 한 그는 "앞으로 대량학살과 같은 국가 폭력 속에 내재된 젠더 관계를 연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하나의문화 펴냄, 9000원.
글 김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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