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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내 인생의 콩깍지 명대사

by eunic 2005. 3. 21.

'티격태격' 일상 현실녹여 '알콩달콩' 사랑받네

평범한 두 남녀가 10년을 두고 만남과 헤어짐을 되풀이하면서 친구에서 애인이 돼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다. 이런 남녀간의 잔잔한 이야기를 '일상 속에서 하고 싶어' 문화방송 한희 피디와 영화 〈접속〉 시나리오를 쓴 조명주 작가가 만났다.
16회 가운데 벌써 중반부로 접어든 〈내 인생의 콩깍지〉(월/화 밤 9시55분)는 이렇게 작가와 연출자의 손을 떠나 시청자를 만나게 됐다. 1990년대 초반 대학생이던 주인공 은영(소유진)과 경수(박광현).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고 여러차례 자신의 사랑을 찾다가 십여년을 보낸 둘은 드디어 서른살을 넘기고서야 결혼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콩깍지〉가 젊은 남녀의 심리와 연예 풍속도를 주제로 한 흔한 멜로, 로맨틱 코미디이면서 도 요즘 드라마 가운데 돋보이는 것은 시청자의 눈과 귀를 자극하면서 시청률을 올리려는 흔한 공식을 쓰지 않은, 보기 드물게 깔끔한 극적 구성 때문이다.

특히 극중인물들은 탐욕을 위해 갈등하고 싸우지 않는다. 〈인어아가씨〉 〈위풍당당 그녀〉처럼 주인공을 둘러싼 출생의 비밀도 없고, 〈장희빈〉 〈노란 손수건〉처럼 신분상승도 없다. 또 〈아내〉나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겨울연가〉처럼 기억상실증이라는 드라마적으로 늘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설 정도 빠져 있다.

물론 〈올인〉 〈야인시대〉 〈술의 나라〉처럼 야망과 폭력도 없다. 더욱이 코믹멜로로는 드물게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당시 우리 정서를 대변한 대중가요의 음률을 타고 드라마 배경으로 자리한다. 1992년 14대 국회의원선거, 성수대교 붕괴, 아이엠에프와 금모으기, 입시부정, 벤처열풍, 인터넷 혁명 ….


이 일련의 지나온 사건 속에 두 주인공은 서 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일상으로 겪으며 '성장'한다.

드라마는 젊은날 추억의 일기장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또 사회적 양심과 책임의식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기득권을 적극 활용하는 은영의 집안과, 다소 불편하고 피해를 보면서도 정직하게 살아가는 경수의 집안을 통해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되짚어보게 한다. 현실성이 없는 멜로드라마와는 분명 이런 점들에서 다르다.


지난달 29일 주인공 은영은 아이엠에프 한파로 퇴출자 명단에 오른다.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사의 '사모님' 속옷을 선물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안방에 전달됐다.

경수는 여자친구에게 차이고는 커플반지를 금모으기 현장에 내던진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시청자는 잠시 로맨틱 코미디임을 잊는다.


더욱이 화면 사이사이에 뮤지컬(작곡 권오섭)까지 끼어든다. 드라마에서 무슨 뮤지컬이라니 한희 피디는 "색다른 드라마를 보여주려고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시청자 반응은 극과 극이다. "뮤지컬 보려고 〈콩깍지〉 본다"고 하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그것만 안 하면 보겠는데…"는 반응이 있는 것이다.

하여간 이런저런 시도가 새로운 드라마 보기의 즐거움을 주어서인지, 인터넷 게시판에는 시청률 낮은 이 드라마에 대한 찬사가 줄을 잇는다. 명연기, 명대사도 종종 화제가 된다.

지난달 21일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이 지났는데 경수가 취직이 안 돼 힘들게 지내는 장면이 방송됐다. "백수생활도 모자라서 아버지까지 돌아가시다니 … 괜히 쾌활한 척하는 경수의 눈빛 … 그 연기에 놀랐습니다" 김응택) "경수에게 취직하라고 아버지가 준 양복이 그렇게(장례식) 쓰일 줄이야"(이도근) ….

실연한 경수가 술을 들이켜며 '나쁜 년'을 읖조리며 울 때, 은영은 경수를 위로한다.(29일) "경수야 내가 실연에 대해서는 선배 아니니 지금 넌 버려야 할 것들을 과감히 버리는 게 좋아. 그 사람을 사랑했던 기억. 그거 버려. 그리고 그 사람이 다시 올 거라는 기대 그것도 버려. 그리고 친구로 남고 싶은 욕심. 그것도 버리고, 오랫동안 날 기억해주기 바라는 이기심, 다른 사람 만나지 않길 바라는 희망, 우연히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집착 그런 거 다 버려." 이 대사는 인터넷상에서 열광팬들끼리 돌려보기할 정도다.

한편 5일(9회) 방송에선 은영과 경수가 드디어 키스를 한다. 우연히 만난 둘은 반가움에 술로 회포를 푼다. 만취한 경수는 정신을 잃고 은영은 경수를 여관방에 재우는데 경수는 은영과 밤을 보낸 것으로 오해한다. 고민고민하다 경수는 은영에게 정식으로 사귀자고 말한다. 20대 초반 드높은 이성상 때문에 서로 연애상대로 여기지 않았던 둘은 30대가 되면서 자신들이 꿈꾸는 사랑에 거품이 빠짐을 느낀다. 권정숙 기자 good@hani.co.kr
한겨레 2003-05-02 2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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