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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바람의 딸 에꾸아무

by eunic 2005. 3. 21.

<낭독의 발견>

바람의 딸 에꾸아무 / 낭독:김혜자

나는 에꾸아무를 다 허물어져 가는 헝겊과 지푸라기로 된 삼각형 모양의 움막안에서 만났습니다.
에꾸아무는 나를 보자 마치 친한 사람을 만난 것처럼 잘 웃었습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였습니다.
내가 "너 뭣 좀 먹었니?" 하고 묻자, 그 아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저께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동생이 아프다는 얘기를 하며 에꾸아무의 눈이 젖어 듭니다.
이 예쁜 아이가 울고 있습니다.
'바람'이라는 뜻을 가진 에꾸아무가..
나는 에꾸아무 곁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날이 저물 무렵 엄마가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에꾸아무 엄마가 사금을 캐서 버는 돈은 하루에 5실링에서 10실링 사이입니다.
5실링이면 이곳에서 물 한잔 값입니다.
아빠는 두 해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엄마는 칭얼거리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자장가 비슷한 노래를 불러 줄 뿐, 에꾸아무는 오늘도 아무것도 먹지못하고 잠을 청합니다.
어떻게 하면 허기진 배 부분을 없앨까 애를 쓰듯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서.
에꾸아무. 나는 이 아이를 서울로 데려가고 싶습니다
데리고 가서 깨끗이 씻기고, 밥 먹이고 예쁜옷 입혀서 학교보내고, 손잡고 데리고 다니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 소녀를 데려가면 서울 가서 한 열흘을 행복할 거에요
하지만 이곳에 있는 엄마가 보고싶고, 동생이 보고싶어, 에꾸아무는 곧 불행해질 겁니다.
마음이 아파 견딜수가 없습니다.
에꾸아무야, 넌 왜 여기서 태어났니?
왜 하필 아프리카 땅에서 태어났니?

헤르만 헤세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헤세는 에꾸아무를 모르니까 그런 시를 썼겠지요. 이 모든 것이 드라마라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연속극이 아닌 단 한편으로 끝나는 단막극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