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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닉의 산문

'내 어머니의 모든 것'

by eunic 2005. 3. 21.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위대한 어머니, 마누엘라가 한 말이
남성이 생각하는 어머니의 모습,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여자는 혼자라는 게 두려워서 뭐든 받아들이지"


2년정도외국에 나가있던남편은

여장남자가 아닌 성전환 수술을 해서 여자가 돼 돌아오고,

남편의 아기를 임신한 수녀가

에이즈에 걸리자 그녀를 극진히 간호하고,

좋아하는 연극배우의 사인을 받으려다

배우가 후진한 차에 받혀 죽은 아들까지.
마누엘라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슬퍼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은 채.
모두 상황을 이해와 사랑으로 껴안으며
마누엘라는 미래의 희망과 행복의 싹을 키운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따져야 하는 나는,
한편으로 부럽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내 정화해버리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 그들이.
그런데 그런 모습이 여성을 가학적으로 다루는 영화 등에서

명분을 얻는 장치로 이용되는 것 같아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

홍상수, 김기덕 등등.

참는게 이긴다는 말도 있지만
여성의 무한한 헌신과 희생의 면만을
봐 온 것 같아 이젠 지겹다.
이제 다른 여성상도 보고 싶다.
아들이나 가족의 불행에 항거하는 여성이 아니라
불의에 항거하는 여성,
가정보다 일, 이념을 사랑한 여성
복수를 하는 여성,
잘못된 현실을 참지 못해 화를 표출하는 여성도
영화속에서 그려졌으면 한다.

예전에 난 민노당 당원임을 밝히며 당당한 의사표현을 하던 문소리.
효자동 이발사에서 아내로 나오는문소리가 싫었다.

자신을성폭행 하려던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장애인 여성으로 나오는 것도 싫었다.
상황이 70년대이긴 해서 그런 설정의 여자가 필요했을 수도 있지만,

문소리가 여성의 목소리를 담는 새로운 여성상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길 바랬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걸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섹시로 승부하는 이효리였다.

(여걸의 힘이라기 보다 슈퍼스타의 힘이겠지만)
성룡과 찍는 영화에서 이전의 양념역할만 하던 여자는 싫다면서

대본을 다시 쓰게하는 파워를 보이다니.


문소리가 남자들의 이야기 일색인 한국영화계에 파문을 일으켰음 좋겠다.
때마침 씨네21 문소리 인터뷰를 읽어보니 말미에
여성감독과 꼭 작업하고 싶다는 말에서 희망을 읽는다.
그녀도 답답했었구나. 좋은 영화고 훌륭한 영화를 하는 기쁨도 있지만 조금은 배경같은, 양념같은 역할에 그녀도 갈증을 느끼고 있었구나 하고 말이다.


장길산 역을 맡은유오성에게는 책을 읽는 등의 끊임없는 캐릭터 연구가 필요했으며, 유오성은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한 것 같았다.
유오성이 한 인터뷰를보면 정말 배우가 역할을 소화해 내기 위해 눈빛부터 시대상황, 장길산이 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소옥역의 한고은에게는, 아버지 같은 남자가 자기를 사랑하고, 장길산 같은 큰 사람을 사랑하는 운명의 여자에에게는 그녀가 가슴에 한 문신이 기사꺼리다.
맡은 역할에 따라 고민의 폭과 내용도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건 알지만....

여자가 사람으로 먼저 보이는 시대가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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