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난 무엇에 홀린 듯 6시 15분 타임 영화를 보기 위해 달렸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영화를 혼자서라도 보겠다는 생각으로.
여자 주인공인 조제는 다리가 불편하다.
할머니가 끌어주는 유모차 속에 숨어 세상을 가끔씩 구경나온다.
그러다 인기많고 바람둥이 대학생 츠네오를 만나게 된다.
조제가 해준 밥이 너무 맛있어 조제의 집을 들락달락하게 된 츠네오는
이내 정규학교도 다니지 않았지만 많은 걸 알고 있고,
조금은 엽기스러운 조제를 좋아하기 시작한다.
조제도 츠네오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조제에게 바깥세상을 구경시켜주던 할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츠네오는 조제를 찾아가고
조제는 가지 말라고 애원한다.
(츠네오가 조제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연민의 감정이 더 큰 것 같다.)
끌렸다기 보다는 연민이었다.
연민으로 시작했지만 분명 사랑이었다.
유모차 대신 츠네오를 업고 다닌 츠네오의 사랑은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츠네오는 평생 업혀다니고 싶다는 조제한테서 조금씩 싫증을 느끼게 된다.
1년하고 몇 달을 사랑했던 그들은 담담하게 이별을 맞이한다.
이별을 고하고 조제의 집을 나오자마자 예전 여자친구와 웃으며 걸어가던 츠네오는 갑자기 위통이 오듯이 울음을 토해내고,
조제는 츠네오의 포근했던 등을 대신할 전동휠체어를 사서 씩씩하게 시장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이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의 미덕은 장애인 여성과의 사랑을 연민으로만 포장하지 않은 점과,
그녀를 장애인으로만 보는 함정에 빠지지 않은 데에 있다.
조제는 영화 내내 여성으로 나왔다.
츠네오에게 "가지 말고 우리집에서 같이 살자"며 첫날밤을 보낼 이불을 펴는 것도 몸이 불편한 조제였다.
"다리가 불편해 돌봐줄 사람이 없어 츠네오가 나를 버렸다" 며 "너의 무기가 부럽다"는 츠네오 여자친구가 한 말에 화가 나 "그럼 너도 다리 짤라"라고 대꾸하며 뺨을 때린 것도 조제였다.
조제, 도발적이고 씩씩했다.
그런데,, 영화니까 정말 담담한 이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 여성, 남성을 떠나서 이 영화는 사랑의 전과정을 공평하게 중계하지 않는다.
사랑의 시작과 절정에는 길게, 구질구질하고 어떻게 그들이 점점 서로에게 싫증이 났는지에 대해선 함구한다.
그냥 살다보면 지겨워지겠지 보는 사람들로서는 넘겨짚을 수밖에.
조제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사는 모습이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조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호랑이'이다.
조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호랑이를 볼 것이라고 다짐해 왔다.
츠네오와 조제는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를 보고, 조제는 츠네오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그만큼 조제에게 있어 츠네오라는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무서운 것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그런 조제가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전보다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건 조제를 떠나 모든 사랑했던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유모차 속에서 숨어지내다가 사람들 앞에서 업고 다니길 마다하지 않았던 츠네오의 등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나라면 못 잊겠다. 정말루....
워터보이즈에 나왔다는 츠네오 역의 츠마부키 사토시를 다시 보는 계기였다.
조제 역의 이케와키 치즈루가 하는 짓이 나와 너무 닮아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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