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원이 나에게 보여준 진실
BY : 조윤호 http://blog.aladin.co.kr/jobonzwa
| 2010.12.07
담론투쟁을 좋아하는 정치학도.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인문학 전반에도 관심을 기울이려 애쓰고 있다. 급진적 정치기획에 관심이 많으며 20대 생활학습연대조직 공동생활전선에 참여하고 있다.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철원 M&M 전 대표 사건을 다룬 <시사매거진 2580>을 오늘에서야 보았다. SK 가문의 2세 최철원 M&M (주) 전 대표가 고용승계 문제로 마찰을 빚은 화물연대 지회장을 야구방망이로 때리고 맷값으로 2천만 원을 건넸다는 내용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2580>은 맷값 사건에 이어 후속 보도를 통해 최 전 대표의 만행에 관한 M&M 직원들의 증언을 전했다. 한 전직 직원은 “최 전 대표가 ‘엎드려 뻗쳐’를 시켜 놓고 과장급이든 부장급이든 곡괭이나 삽자루로 두들겨 패기 일쑤였다.”고 말했고, 어떤 직원은 “한 중견간부가 골프채가 부러질 정도로 맞아서 부축을 받아 나갔다.”고 말했다. 여직원들에게 “요즘 불만이 많다.”며 데리고 온 사냥개의 개 줄을 풀어 위협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고, 고속도로에서 차량 여러 대를 일렬로 늘어뜨려 주행하면서 다른 차량이 끼어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군사작전’ 이동을 한다는 증언을 들으면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자신이 살던 아파트 아랫집에서 층간 소음으로 경비실에 불만을 제기하자 남자 3명과 함께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를 들고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는 보도를 보면 오히려 ‘이건 좀 과장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나는 이 사건을 보면서 매우 화가 났고 슬프고 거기다 역겹기까지 했다. 인간은 누구나 ‘진실’에 직면하면 매우 불편해한다. 나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이런 복잡한 불편함을 경험했다. 그렇다면 내가 최철원 사건을 보면서 직면한 ‘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정도의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수준의 짓을 할 수 있는가!”, 즉 한국 재벌의 일상에 대한 실망인가? 아니면 ‘어떻게 돈이면 뭐든지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 즉 한국 사회에 팽배한 물신주의에 대한 경악인가?
한국 재벌
의 일상에 대해서는 애초에 더 실망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80년대 말에 현대건설과 중공업이 각각 노조위원장과 노조원들을 납치해 집단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고, 79년 어떤 재벌2세는 호스티스에게 애인되기를 강요하며 담뱃불로 자신의 성인 ‘하’자를 새기는 사건도 있었다. 1994년에는 이른바 ‘건방지게 프라이드’ 사건이 있었다. L 그룹 모 재벌2세가 친구들과 서울 강남에서 승용차를 타고 가다 옆 차선의 프라이드 승용차의 운전자와 동승자가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며 끌어내 벽돌과 화분으로 집단 구타했다. 벽돌에 머리가 찍힌 동승자는 뇌수술을 받았고, 이 재벌2세는 몰래 해외로 도망가려다 공항에서 붙잡혔다. 그러나 그는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6년 뒤에 강남에서 술에 취해 승용차를 몰다가 단속하려는 경찰을 창문에 매달고 질주해 전치 석 달의 중상을 입혔다. 이어 지나가던 차량 3대를 들이받은 뒤에 차를 버리고 골목으로 달아나다 시민들에게 붙잡혔다. 또 다른 재벌 2세는 CCTV를 공동개발하기로 한 동업자 박 씨에게 돈을 투자했으나 진척되지 않자 박 씨를 산으로 끌고 가 집단폭행하고 물고문 했다. 불과 몇 년 전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아들이 밖에서 맞고 들어오자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보복하는 ‘끔찍한 부성애‘를 보여주기도 했다.
재벌들의 폭력 행사는 일시적이고 돌출적으로는 물론, 매우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파업 현장이나 재개발 지역에 등장하는 ‘용역깡패’들은 재벌들이 휘두르는 조직화된 사적 폭력의 절정이다.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의 농성현장에 들이닥친 용역들은 목장갑에 쇠볼트를 넣은 사제 무기를 휘둘렀으며, 지난 4일에는 포크레인에 대형 철골구조물을 부착한 사제 탱크까지 등장해 농성장을 파괴하기도 했다. 이 사제 탱크 옆에는 100여명의 용역깡패들이 보호 헬멧과 방패를 들고 진을 치고 지키고 있었다. 철거민들이 재개발 반대를 위해 투쟁하는 현장에는 언제나 고용된 깡패들이 투입되어 시위를 진압하고 토건재벌들의 강제 철거를 돕는다. 예전에는 용산이 그러했고 지금의 두리반 역시 그러하다.
한국 사회에 팽배한 물신주의(돈이면 다 된다.)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뉴스에서 매일 돈 때문에 생기는 온갖 범죄를 보고 있다. 사실 때리고 돈을 준 것은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다. 빌린 돈을 안 갚는다고 매일 찾아와 협박하고 신체포기각서에 도장을 찍게 만들고, 손가락도 잘라버리는 게 현실이다. 돈 때문에 지하철 역 화장실에 가면 붙어 있는 장기 매매 포스트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 거는 이들이 즐비한 것이 현실이다. 나는 매우 슬프게도 재벌이라는 자들의 온갖 폭력 행사를 보는 것에도, 그리고 돈이면 뭐든지 다하는 풍토에도 익숙하기에 이 두 가지로 인해서 열 받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내가 <2580>을 보고 나서 열 받고 불편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화물노동자 유홍준 씨가 10월에 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 넘게 ‘참아야 했다.’는 것이었다. 유 씨가 고용승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1년 여 동안 1인 차량 시위 등을 했으나, 결국 생계가 어려워져서 ‘참고’ 자신의 탱크로리를 회사 측에 팔아야 했다는 것이었다. M&M사가 인수합병 과정에서 운수 노동자들에게 화물연대 탈퇴와 이후에도 가입하지 않는 것을 고용 승계 조건으로 명시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했음에도, 유 씨를 제외한 나머지 노동자들은 ‘참고’ 그 계약서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최철원에게 눈이 오는 날 얻어맞은 직원들도, 사냥개에게 위협을 당한 여직원들도 ‘참아야 했고’ 아니면 회사를 떠나야 했다. 골프채가 부러지도록 얻어맞은 회사의 중견간부는 맞고도 자신이 맞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그 사실을 숨기며 ‘참아야 했다.’ 최철원에게 위협당한 이웃들 역시 ‘참아야 했고’ 아니면 이사를 가야 했다. 내가 최철원 사건을 바라보면서 느낀 분노의 대상은 ‘기득권층의 막 되먹은 횡포에 대해 비 기득권층은 참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최철원의 만행은 그가 정신병적 증세를 지녔다느니, 가정교육을 잘못 받았느니 하는 식의 ‘개인적’ 문제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개인적’ 문제는, 우리가 기득권층 ‘개개인’에게 ‘좀 더 착한 심성’을 요구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현실 그 자체이다.
결국 최철원 사건이 나에게 보여준 진실은 기득권층과 그 나팔수들이 아무리 이 사회가 공정한 시장경제이자 기회가 넘치는 희망찬 곳이라고 떠들어대도, 결국 이 사회가 부여하는 공정함과 기회는 기득권층에게만 해당하며, 그 외 나머지는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는 단 한 번도 ‘공정한’ 시장경제 내지는 ‘개개인 각자의 가치와 이익을 존중하는’ 자본주의였던 적이 없으며 항상 ‘기득권층을 위한’ 사회주의였다. 유홍준 씨가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러한 진실을 정확히 반영한다. “나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재벌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한국의 힘없는 사람들은 아주 오랫동안 하찮은 취급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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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김하영, “사냥개 풀고 골프채로 패고…최철원, 직원들도 상습폭행”, 프레시안, 2010. 12.6.
김하영, “외신도 최철원 사건 보도 ”외신도 최철원 사건 보도…”자기감시 능력 없는 chaebols(재벌)”, 프레시안, 2010.12.2.
“맷값 파동에 대한 부질없는 상념”(http://socialandmaterial.net/?p=666)
박노자, “대한민국은 조폭국가다”, 레디앙, 2010.12.3.
“‘사냥개위협’ 최철원 직원폭행, 정태수 머슴발언 닮았다.”(http://jsapark.tistory.com/1278)
서의동, “그가 야구배트를 들게 된 사연”, 경향, 2010.12.01.
손기영, “최철원 구속 청원 1만 돌파, 후폭풍”, 레디앙, 2010.11.29.
손준현, “한대에 백만원…재벌 2세가 노동자 팼다”, 한겨레, 2010.11.30.
시사매거진 2580, “믿기지 않는 구타사건 방망이 한 대에 100만원”, 2010.11.28.
시사매거진 2580, “믿기지 않는 구타사건 2”, 2010.12.5.
조병훈, “최철원은 재벌의 일상이다”, 레디앙, 2010.12.6.
“재벌과 폭행…그 유구한 역사”(http://khross.khan.kr/41)
채은하, “’맷값 폭행’ 최철원, 4년 전에도 야구방망이로 ‘이웃 협박’”, 20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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