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온 예수님들
성탄을 맞아 귓가를 맴도는 노래는 1960년대 ‘반전시대’에 사이먼과 가펑클이 불렀던 “7 o'clock news/Silent night”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배경으로 빠르게 흐르는 영어 뉴스의 내용을 열다섯 한국 소년이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긴박함만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부터 30년이 넘게 지난 오늘 우리의 상황은 반전, 민권, 소수자 운동으로 소용돌이치던 당시 미국과 유럽보다 더 긴박하다. 아니 절박하다.
칠순 노인들이 맹추위 속에서 열흘이 넘게 ‘이라크파병 반대’를 외치며 노상단식농성을 벌여도 참여정부는 파병이 국익이라며 마이동풍이다. 명동성당과 성공회대성당을 비롯하여 열곳 가까운 ‘성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추방 중단’을 절규해도 ‘유색인 사냥’은 멈출 줄 모른다. 이역만리에서 ‘농업개방 반대’를 호소하며 농민이 할복을 해도, ‘손배 가압류 철회’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울부짖으며 노동자들이 분신하고 투신을 해도 이 나라 지배층들에게는 우이독경일 뿐이다.
‘차떼기’ 날강도들은 참회는커녕 오히려 눈을 부라리며 자신들의 범죄를 권력투쟁의 무기로 삼는다.
그러면서 원내 제1당의 호화판 당사에 커다랗게 걸린 현수막 구호처럼 “경제 살리기에 온힘을 쏟고 있다”나.
이 통에 ‘조폭적 범죄’라며 도매금으로 매도당하는 조직폭력배들이 차라리 가련하다. 어느 조폭이 초대기업들에게 100억, 150억원씩 갈취한단 말인가
‘메인스트림’이 정치적 위기에 몰리면 ‘범죄와의 전쟁’을 한다면서 제일 먼저 잡아들이는 것이 조폭들인데. 그 큰돈을 뜯겼으니 피해자라며 갈취자들에게 예방책을 마련해달라는 메인스트림 재벌기업가들의 행태는 가히 ‘웃으면 복이 와요’다.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만든 재부를 메인스트림들끼리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주고받는 것은 횡령인가, 배임인가 이럴 때 손배소송, 가압류 신청은 어느 법정에 해야 하나! 메인스트림의 대가 끊길까봐 고교 평준화 해체를 대학 총장님까지 나서서 가르치는 세상에 노동자들의 호소를 받아줄 세속법정은 어디에도 없을 성싶다.
몇백억원이 아이들 과자값 취급받는 현실에서 고작 다음과 같은 3류 메인스트림 사이의 거래는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하리라. “업무연락(대외비) … 국회교육위원회 XXX 의원께서 우편접수 후원회를 갖는바, 본 협의회 제41차 이사회(03.6.4)에서는 전 임원이 1인당 20만원 이상씩 후원하고 …”(사단법인 한국사립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업무연락 … 국회교육위원회 000 의원 후원회 행사가 있음을 알려드리오니 후원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후원회 계좌번호 …”(사단법인 한국사학법인연합회).
하지만 그 ‘푼돈 거래’에도 수많은 학생의 등록금은 유실되고, 교육환경은 악화되어만 간다. 어디 동덕여대뿐이랴만, 6천여 여학생들이 전원 유급을 무릅쓰고 50일이 넘게 수업을 포기하며 ‘비리 동덕재단 척결’ ‘임시이사 파견’을 교수·직원들과 함께 겨울바람 맞아가며 외쳐대도 교육부와 비리재단은 제 갈길을 가겠단다.
<데카메론> 중에 이런 이야기가 기억난다.
어느 성실하고 신심 깊은 유대인이 개종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가톨릭의 총본산 로마를 순례하겠다고 하자 메인스트림 성직자들의 부정부패 비리를 너무나 잘 아는 친구는 극구 만류한다.
개종은 물 건너간다는 우려로.
만류에도 로마를 다녀온 유대인은 뜻밖에도 하느님이 계신 사실을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단다.
메인스트림들이 그렇게 썩었는데도 교회가 유지되는 것은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며.
누울 자리 없어 구유에 놓인 아기 예수, 금관이 아니라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힌 청년 예수가 설마 메인스트림 편에 서서 내몰리는 사람들을 욱박지르지는 않겠지. 아니, 한겨울 길거리의 칠순 어르신들, 이주노동자들, 동덕여대생들, 그리고 박해받는 모든 노동자 농민 빈민들이 바로 오늘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시라. 메리 크리스마스.
황상익/서울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