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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박목월의 '가정'

by eunic 2005. 3. 1.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이 시를 어제 kbs에서 봤다.
삽화와 함께 보고 있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버지 생각에,
하나는 시 자체의 아름다움에
동생이 교과서에 실린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시를 처음 접했다.
내가 초등학교때 그리 공부를 안하고 운동장에서 놀았던 말인가?
아님 기억력이 넘 나쁜 것일까?
후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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