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작년 말 전국을 휩쓴 조류독감으로 100만 마리 이상의 오리와 닭이 생매장되었다. 가축전염병예방법상 조류독감 등 법정 가축전염병에 걸렸거나 걸렸다고 의심되는 가축에 대해서는 지체 없이 살처분하고, 처분된 가축의 사체를 소각 또는 매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살처분과 생매장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인간의 건강과 생명이 중요한 것은 더 말할 나위없지만 대량으로 죽어가는 동물을 보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신문과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살아있는 닭과 오리가 깊게 파인 구덩이 속에서 꽥꽥거리는데 그 위로 흙이 덮힌다. 작업에 동원된 공무원들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우리 정부가 얼마나 생명에 대해 무지몽매한지 또 무대책인지를 보여준다. 성공회 대학교의 박창길 교수는 한겨레신문 발언대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법은 6조에서 무자비하게 죽이는 것을 명백한 동물학대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동물보호법을 관장하는 농림부가 이런 실정법을 무리하게 어기는 것은 문제다. 또 현행 가축전염병 예방법은 20조에서 가축을 매립하기 전에 반드시 전살이나 타격 등 정상적인 방법으로 살처분하기로 되어 있는데 이런 과정을 생략하였다. 이런 처리방식은 동물복지와 환경과 국민건강을 아우르겠다는 농림부의 축산정책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구제역, 조류독감에 이어 광우병이 다시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고 있는데, 이런 가축전염병의 근본 문제점은 동물의 복지를 무시하며,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무리한 상업축산에 있으며, 이렇게 해서 발생한 병이 문명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도살뿐만 아니라 교배, 사료, 사육과 운송 등 어느 것 하나 동물의 복지가 고려되지 않고 있으며, 정부가 이를 개선할 의지도 전문지식도 없다.”
녹색연합 환경소송센터는 2003년 7월 7일, 농림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구제역 방역 대책 과정에서 '동물보호법', '가축전염병예방법', '구제역긴급행동지침'을 위반하면서 방역 대책에 나서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했다. 농림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구제역으로 2000년에는 182농가에 2,216마리, 2002년에는 163개의 농가에 160,156 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했다. 그러나 환경소송센터 조사결과 농림부와 매몰과 방역의 책임을 진 지방자치단체는 '가축전염병예방법시행규칙'중 [소각·매몰기준]에 따라 살처분을 한 다음에 소각하거나 매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하게 생매장을 해왔다. 경기도는 140개의 매몰지 중 30%가 생매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인들을 동원해 돼지를 생매장했는데 다음날 파묻은 돼지가 흙을 비집고 나오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에 대한 감사원의 회신은 인력과 도살장비가 부족한 일부 현장에서 구제역의 전염을 신속히 막기 위하여 부득이하게 생매장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구제역 매몰지에서 1년이 지난 현재까지 환경오염이 발생한 사례가 보고 된 바가 없어 즉시 감사에 착수할 만큼 시급한 사항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대량 상업축산업과 항생제 남용으로 가축의 면역력이 떨어진데다 집단 사육으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와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가축의 대량 살처분은 더욱더 잦아질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그런 위기가 닥칠 때마다 농민들의 정부의 늑장대책에 눈물지어야 하고 국민들은 무참한 학살을 지켜봐야 하는가. 동물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인간도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도살되는 동물의 생명과, 그 동물을 자식처럼 길렀을 농민들의 안타까움, 매몰 현장에서 일해야만 하는 군인과 공무원들이 느낄 비애, 그 모든 것을 언론을 통해 지켜보는 우리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이 문제에 대해 시급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글 : 녹색연합 정책실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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