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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닉의 산문

귀농을 생각하다

by eunic 2005. 3. 1.

일주일간의 황금같은 휴가를 맞이해
논산에 있는 집에 갔다.
언니는 태국으로 휴가를 갔지만 나는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기로 결심했다. 흑흑
(연봉의 차이가 아주 큰 차이를 만듭니다)
도착한다음날부터 아침 6시 (평소 내 기상시간은 8시)에 일어나 몸빼바지를 입고
호박밭에 투입됐다.
처음에 일할 때는 서늘하니 좋았다.
왠걸 오전 11시가 되자 나는 비닐하우스를 만들어낸 최초의 누군가에게 악담을 퍼붓고 있었다.
비닐하우스를 한창 저주하며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차를 타고 가던 중에
우산을 쓴 채 밭을 메고 있는 4명의 할머니들을 보게 됐다.
투정한 게 부끄러워졌지만 여름볕은 정말 잔인하고 잔인하다.
볕이 뜨거워지면 과거의 슬펐던 기억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볕 사이사이로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다시금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고
모든 걸 순응하고 인내하고 따뜻하게 받아들일 여유가 새록새록 솟고 있었다.

예전에 절에 가서 1080 배를 하던 생각이 난다.
처음엔 잡생각이 너무 많았다.
미움, 괴로움 등등
500번째 절을 하고 있는 상황에 다다르자
이제는 마음도 몸도 혼연일체가 되어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만 생각하게 된다.
오로지 계속 쉬지않고 절을 올리고 끝내는 길이다 하며 그 생각에만 머물고 있었다.
그러다 정말 다리가 서질 않아 주저않게 되버려 멈추게 됐다.
조금의 휴식을 취하니 마음의 여유만 생기고 멈춘 것을 후회하게 되고
나약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다그친다.
끈기없고 오로지내 몸 하나 고통이 온 우주의 일인양 고통스러워 했던 것이

노동도 종교 수행중의 하나인 이유가 그런 이유일 것이다.
고통을 통해 자신의 인내심의 한계에 도전할 때는
오만가지 미운 생각이 들고 사람이 단순해지기도 하지만
그 수행이 끝났을때는
다음엔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평상심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힘들면 예전의 힘든 시절을 떠올리고,나보다 더 치열하게 사는 사람을 생각하며
이겨내듯이 그렇게 나는 이번 휴가에서 햇볕과 싸워보았다.

그리고 토요일날 더 시골로 가게 됐는데 동네사람들이 정자나무 아래서 한솥 가득 닭발을 먹고 있었다. 먹으면 입술이 뜨거워지는 빨간 닭발을....
그 정경이 너무 좋았다.
농촌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지역인 우리집 근처는 모든게 어중간해서 피폐하긴 도시 같고 편리한 시설은 시골처럼 부실해서 아무런 매력이 없다.
큰엄마는올해 담근 된장으로 진한 된장국을 끓여오고 방금 뜯은 호박잎을삶아 오셨다.
그리고 내가 젤 좋아하는 1년 묵은 김장김치까지....
"나 여기서 살래" 외치기 직전이다.
갑자기 아궁이에서 나무태우는 냄새가 그리워지고 낮은 담벼락에 둘러쳐진순리대로 자라는 호박넝쿨이 아름다워보이는 순간이었다.
(우리집에서 키우는 애호박은 줄을 매어 나무처럼 키우고 거기에 일정한 크기와 굵기로 자라기 위해 플라스틱 통을 채워서 키워내기 때문에 너무 애처롭다)
귀농.... 귀농에 대한 욕망이커졌다.
그러나햇볕과 싸우고 내 몸의 고통과 매일 싸워이겨야 하는 노동이라는 수행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그게 한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규칙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두려움이 앞선다.
농촌에서 살고만 싶어하는 심약한 아이.

imyoungju저두 1080배를 중간에 포기했던 기억이... 농사를 짓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적이...
07-26 (월) 20:15 덧플쓰기 : 덧글에 대한 답변(리플)을 씁니다.
eunic정말요. 너무 반갑네요. 비슷한 생각을 해본 사람이라 말이 잘 통한다고... 저의 착각일까요?
07-27 (화)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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