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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닉의 산문

슬픈 음악을 듣는다는 건

by eunic 2005. 3. 1.
가사가 없는 앙드레 가뇽의 피아노연주는 슬퍼서 눈물이 난다.
음표의 위치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눈물을 만들어낸다.
예전엔 음표의 위치에 동반되는 영상이 있어 내가 눈물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요즘도 그런 음악을 들으면 여전히 슬퍼 눈물을 흘리지만머릿속은 백지상태다.
완전한 음표의 위치 변화에 따른 뇌속의 반응이다.
눈물은 뇌의 기억장치 작동으로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인 행동일지도모른다.
그런데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노력한 삶, 누군가를 잊기위한 노력들이 이제는 노력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아무리 내가 사랑했던 추억을 떠올리려 해도 하나도 조금도 생각나지 않는다. 옛날 옛적에 본 시시한 영화처럼 감흥이 없다.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머금은 내 얼굴을 볼 때의 공허함이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경험속에서 체득하는 단어들이 있기 마련이라고 이윤기씨가 자신의 소설 '하늘의 문'에서 말한 적이 있다.
나도 경험을 통해서 상상속에서만 막연하던 '공허'라던 낱말이 의미를 갖고 내 안에 파고 들어온다.
그래 공허하다.
공허한 삶이다.
공허한 내 얼굴은, 아무것도 상상되지 않는 채로 눈물을 흘리는 나의 모습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개인적인 감정은 공유될 수 없는 것을 안다.
추억하기 조차 고갈된 오랜 고독의 삶.
그렇다면 오랜 고독이 슬퍼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나는 평소에 너무 많이 무표정하다.
무표정한 내 얼굴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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