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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닉의 산문

졸업앨범

by eunic 2005. 3. 1.

나는 제복을 싫어한다.
그래서 경찰도, 군인도 싫어한다.
개성있는 인간도 아니면서, 매일마다 바뀌는 현란한 패션을 추구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제복을 무지 싫어한다.
못생긴 사람은 제복을 입으면 아예 사라지지만
예쁜 사람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이 된다.
그래서 그럴까?
난 제복을 싫어했다.

졸업앨범을 위해 학사모를 찍어야 했다.
난 학사모를 쓰기 싫었다.
그것이 사진으로 남겨진다니 싫었다.
사진을 찍을 당시 제출해야 될 보고서가 날아가
사진 찍기를 포기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신에게 감사했다.

당연히 정장입은 사진만을 찍고, 졸업식에도 가지 않았고, 졸업앨범도 없다.
부모님께서 졸업식장에 오신다는 것을 나는 "서울에서 학원을 다니던 때라 중요한 수업을 들어야 하느라 졸업식은 못 가겠다"고 박박 우겨 무마시켰다.
다섯딸중에 졸업앨범이 없고 학사모 사진이 없는 딸이 마음에 걸린 엄마는 동네 사진관에 가서 내 사진을 들고 가서 학사모 사진을 만들어줄 수 있는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엄마는 다섯 딸의 학사모 사진을 일렬로 배열해놓고 보는 게 꿈이라고 말하며, 나에게 학사모 사진을 찍을 것을 졸업후 2년이 되가는 이 마당에 강요하고 계신다.
이때 엄마의 정말 주관적인 판단하에 좋은 기회가 나타난 것이다.
다섯번째 딸이 멕시코로 해외취업을 하면서 여름 졸업식에 참석을 못하게 된 것이다.
엄마는 내가 동생 대신 졸업식장에 가서 학사모를 받아와서 집에서 찍을 것을 명령했다.
나는 웃겨서 전화를 받다가 떼구르르 굴렀다.
웃는 내 목소리와는 반대로 울음이 전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엄마는 "니가 돈이 없어 앨범을 안 사고, 그래서 학사모를 찍지 않은 것이 너무 미안하다며 제발 학사모를 입고 찍으라"고 울먹였다.
그때 돈이 없었긴 하지만 앨범이 먼지만 쓰고 짐만 될 것 같았고, 난 졸업장이나 졸업앨범이나 형식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지 않았는데...
내가 아무 생각않고 "돈도 없고 해서 안 샀어"라고 한 말이 부모 마음에 대못을 박았나부다.
이 대못을 뽑아주기 위해 정말로 그 짓을 해야 하나벌써부터 웃기고 동생 졸업식날이 기다려진다. ㅋ ㅋ

psycheㅋㅋ 저랑 비슷하시네요. 저도 제복이 싫습니다. 제복뿐 아니라 똑같은 것이 여러개 있으면 짜증이 나더군요. ㅋㅋ 그래도 가끔 제복입은 군계일학을 볼 때는 기분이 좋습니다. 헤헤헤
07-11 (일) 19:11 덧플쓰기 : 덧글에 대한 답변(리플)을 씁니다.
azoro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만 제복을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지요. 제복은 제복대로 사회에서 필요한 것이고 또 일반 옷을 입는 분들은 그렇게 입고 해서 우리 동네의 다양한 사람들을 형성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07-11 (일) 21:39 덧플쓰기 : 덧글에 대한 답변(리플)을 씁니다.
azoro저는 제복보다는 오히려 출석부르는 것을 참 싫어합니다. 이건 정말로 형무소나 군대를 연상시키더군요.
07-11 (일) 21:40 덧플쓰기 : 덧글에 대한 답변(리플)을 씁니다.
imyoungju제복보다 어머니의 마음이 더 가슴에 느껴지네요. 그냥 한 말인데도 본인보다 더 상처를 받는 엄마의 마음이란 도대체 어떤걸까요.
07-13 (화) 17:42 덧플쓰기 : 덧글에 대한 답변(리플)을 씁니다.
eunic제복 이야기에 묻어버리려 했지만 엄마가 우는 모습에 제 마음이 아파온 걸 말하고 싶었는데 그걸 용케 아셨네요. 들켜버렸네요.
07-13 (화) 17:55 덧플쓰기 : 덧글에 대한 답변(리플)을 씁니다.
imyoungju제가 어떤 느낌으로 덧글을 달았는지를 `용케 알아내신' 은닉님이 무섭(?)습니다.
07-15 (목) 18:50
eunic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생각과 느낌이 너무 잘 통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너무 좋아요. 이 기분은 모르실 거예요.
07-16 (금) 14:53 덧플쓰기 : 덧글에 대한 답변(리플)을 씁니다.
imyoungju그 이유를 나중에 제가 해석해 드리죠⊙.⊙
07-20 (화)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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