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닉의 산문

학창시절 내 우렁이 각시

by eunic 2005. 3. 1.
학창시절의 막바지.
4학년 계절학기로
나는 '19세기 영시'라는 영문과 전공수업을 신청했다.
천문학과인 내가 인문계 수업을 그것도 가장 공부 열심히 한다는 영문과 애들과 수업을 듣게 돼 학점은 포기하고
오로지 호기심 해소 차원에서 들었다.
그러나 전공수업의 타이틀이 주는 매력으로 나 같은 처지는 많았다.
영문과 외에도 행정학과, 사회학과, 언어학과 등등이 몰려들어
아주 분위기가 좋았고 어느날은 인근 산으로 야외수업을 해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영시를 읽었던 추억도 있다.
그때 만난 친구가 하는 짓이 넘 예쁘다.

실연을 앓고 있어 내가 우울모드로 침잠해 들어가면
없는 돈으로 술을사주는것은 기본.
자취방에서 금방 삶아온 계란을 까서 반을 잘라
노른자가 약간 흐르는 (가장 맛있는 상태) 것을 내게
언능 먹으라고 준다.
내가 계란을 먹는동안 그는 자취방에서 가져온 과도로 복숭아를 깍아 가장 큰 쪽을 먹으라고 내민다.

그의 자취방에 저녁을 먹으러 가는 날.
그는 날 자전거 뒷자리에 태워서
도서관 정문에서 자취방 앞까지
한방에 모셔다준다.
여자인 나보다 요리를 잘한 그.
찌개와 밥도너무 맛나게 해서
한그릇 먹을 거 두그릇 먹게 해 그집 쌀을 축내게 만들었다.

학창시절 말년에 만난 그.
졸업을 위해 오늘도 도서관에서 붙박이 하고 있겠지.
나의 우렁이각시.


'은닉의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동화  (0) 2005.03.01
동물을 보는 나의 시선  (0) 2005.03.01
B.B의 황당선언  (0) 2005.03.01
어린왕자와 장미, 나와 Daum속의 너  (0) 2005.03.01
별과 같은 관계  (0) 2005.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