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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

[한겨레] 책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

by eunic 2005. 2. 28.

정희진의 책읽기

어빈 얄롬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때 여성학을 한다고 하면 대개 나를 다시 쳐다본다.
길거리에서 피부색이 다른(사실은 ‘진한’) 사람을 두 번 보듯이.
이른바 ‘차별적’ 시선이다.
그런 걸 지나치게 의식해서일까.
여기에선 사랑 같은 성별 분업적 주제를 다룬 책은 소개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는 예외였다.
사랑보다는 고통에 관한 논의로 읽혔기 때문이다.
‘실존심리치료’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미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모았다.
스탠퍼드 의대 정신과 교수 어빈 얄롬의 <사랑의 처형자>(Love’s Executioner)를 옮긴 것이다(시그마프레스 펴냄·2001).

절실할 때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을 만나면, 어둔 밤 추운 바다를 헤매다 등대에 닿은 듯한 기분이 든다.
지난 여름 나는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몰입’ 때문에, 중독과 금단 상태를 되풀이하며 몹시 아팠다.
열정의 섬광에, 눈이 멀고 마음이 베었을 때 이 책을 접했다.
아침저녁으로 성경처럼 읽었다.
질병, 자기 비하, 비만, 깊은 슬픔, 강박적 성행동, 사랑하는 이의 죽음, 외로움, 소모적인 사랑, 영원히 젊고 싶은 욕망, 실패에 대한 공포, 실연, 부모에게서 버림받았다는 느낌,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 사람들은 보통 상담사례집을 읽으면 자기 문제를 대입하여 쌈박한 처방전­-노력은 적게 들고 효과는 강력한-을 바라지만, 이 책에 그런 내용은 없다.
저자는 단지 어떻게 고통과 더불어 살아갈지, 어디에 서서 고통을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해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흔히 주장하듯 고통은 ‘억압된 본능적 욕구, 비극적인 과거사’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실존 자체에 주어진 필연적인 삶의 조건이다.
그러므로 고통의 원인을 어떤 한 가지로 규명한 뒤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근대적 사고 방식을 버릴 때, 인간은 고통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이 때 변화와 성장이 가능하다. “죽음이라는 사실(fact)은 육체적으로 우리를 파괴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idea)은 우리를 구원한다.”

이 책의 독특한 제목은 사랑과 심리치료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저자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훌륭한 상담자는 어둠과 싸워 불빛을 찾는 것인데, 낭만적 사랑이란 상대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 안개의 신비가 지속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심리 치료자는 사랑의 처형자이다. 10개의 사례 중 전체 책 분량의 4분의1을 할애한 70살 여성과 30대 남성의 사랑을 다룬 델마의 이야기는 압권이다.
나는 고달프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여성의 삶을 담은 페니의 사례에 가장 동일시되었다.
‘새로운 글쓰기’라는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이기도 했던 이 책은 저자의 영성 넘치는 문학적 글쓰기와 성실하고 깊이있는 우리말 번역이 책읽기의 기쁨과 슬픔을 더한다.

여성학자 / 한겨레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