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의 책읽기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캐슬린 배리
얼마 전 모 대학 강사는 수업 시간에 ‘책 살 돈이 모자라면 남자애들은 막노동판에 나가면 되고, 여자애들은 몸을 팔면 된다’는 말로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몸을 판다’며 오히려 항의하는 이들을 ‘여성해방의 걸림돌’이라고 주장했다. 이 정도의 ‘무식’은 용기가 아니라 권력이다. 맞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몸을 판다. 문제는, 성폭력으로서의 성기노출과 유흥으로서 스트립쇼의 차이처럼, 남성과 여성의 몸에 대한 위계적인 해석 때문에 몸을 파는 방식과 내용이 성별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남성에게 여성의 몸은 쾌락과 담론의 대상이지만, 여성은 남성의 (벗은)몸을 공포와 폭력으로 경험한다.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며, 몸/성의 불평등은 여성의 삶은 물론 국가, 자본주의, 군대, 가족, 연애, 노동 등 (모든!)사회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섹슈얼리티의 매춘화>(The Prostitution of Sexuality·캐슬린 배리 지음·정금나 김은정 옮김·2002·삼인)는 이 문제에 대한 숨막힐 듯 치열한, 분노에 찬, 그리고 ‘실천으로서의 이론’ 작업이다. 저자 캐슬린 배리는 70년대부터 국제적인 성 착취 반대 운동에 헌신해 온 사회학, 인류학 학위를 가진 질적 방법론에 정통한 학자이자 운동가이다.
이 책은 마르크주의, 자유주의 시각에서 여성문제를 바라보는 공적 영역 중심의 여성주의 시각에 혁명적인 비판을 가한 급진주의(radical)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저작이기도 하다. 영어의 ‘래디컬’은 ‘급진적인’ 뜻 이전에 ‘근본적인’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급진적인 페미니즘은 과격한 페미니즘이 아니라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섹슈얼리티 권력-을 탐구하는 페미니즘의 기본일 뿐이다. 이 책은 성매매에 대한 역사적인 분석에 충실하면서도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 “여성의 전지구적 착취”라는 부제를 붙였듯이 성별간, 국가간, 지역간, 인종간 빈부 격차가 극심해지고 있는 글로벌 경제 시기 ‘정상적인’ 성과 성매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을 진단한다. 책 제목대로 성 차제가 매춘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은 여성보다 더 섹스를 필요로 하고 그들의 성욕은 거의 무한대로 인정받지만, 남성은 성적 존재로 간주되지도 않고 성애화의 대상도 아니다. 남성은 집단적으로 개인적으로도 결코 몸으로 환원되는 존재가 아니다. 남성의 정체성은 몸의 기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한국사회에서 성매매는 ‘필요악’으로 인정된다. 대개 사람들은 구매 남성의 편리를 위해 혹은 매춘여성의 ‘인권’을 위해 합법화나 공창제를 주장한다. 그러나 군산 성매매 지역 화재 사건처럼 매춘 여성에 대한 감금과 폭력이, 성매매가 불법이어서 발생한 문제일까 아니면 성의 이중 윤리로 인한 매춘 여성에 대한 비하와 혐오 때문일까 성매매가 필요악이라는, ‘필요’와 ‘악’의 이중 시선은 모두 남성의 관점과 이해를 대변한다. 남성의 입장에서 필요하고, 남성의 입장에서 악이다. 하지만 이미 엥겔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만일 성매매가 ‘더러운 것’이라면, 더 더러운 집단은 남성이다. 성을 파는 여성은 전체 여성 중 일부지만, 성을 사는 남성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정희진/여성학 강사 한겨레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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