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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남성 페미니스트를 위한 변명

by eunic 2005. 2. 28.
남성깨기 12


남성 페미니스트를 위한 변명


권혁범


니카라과나 쿠바 혁명에 대해 쓰던 사람이 젠더 문제 쓰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그게 선생님이 지난 10년을 고민하며 살아왔다는 증거죠!
작년 이맘때 원고 쓰기를 망설이던 내게 이 코너 담당기자가 해준 '아부성' 대답이었다.
일년동안 찬사만큼 비난도 많이 받았다. 한쪽에서는 남자는 페미니스트로서 한계가 있지 않냐는 의혹의 눈길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남자가 어째서 그렇게 여자 편만 드느냐고 야단이었다.

남성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한발 물러서게 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관심을 꺼버리고 싶은 욕망은 실은 어쩌면 여성 억압의 가해자, 공모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적 욕망에 의해 동기화된 것은 아닐까? 혹은 사회적 수혜자로서의 남성이라는 자기 문제의식이 별로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닐까?

내게 여성문제는 남의 문제,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문제며 나의 문제다.
왜냐면 성차별 메커니즘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나같은 남성은 사회적으로 또 사적으로 분명 여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특권을 누리기 때문이다.

남성이 사회적으로 더 많은 기회와 더 유리한 조건위에 서있다는 것을 알면서 동시에 사적으로 여성(어머니, 누이, 아내)의 노동에 의존해서 살아가면서도 사회적 소수자 여성에게 여성문제는 그들만의 문제라고 밀어낼 수 있을까?
적어도 사회적 정의와 평등을 얘기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가해자라고 한다면 거슬리는 표현이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남성 일반은 여성에 대하여 사회적 강자임이 분명하다.
(어떤 남자들은 어떤 여자들에 대하여, 즉 신일 기업의 노동자 남성 홍길동은 신일 기업의 사장 여성 신사임당에 대해서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계급적 차원의 문제다.
그걸 혼동하기 때문에 일부 진보적 남성들은 부르주아적 여성에 대해 갖는 적대감을 여성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해내는 바보짓을 하고 만다).

남자도 피해자라고, 왜 남자를 적으로 만드냐고 항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게 여성과 똑같이 손해보는 피해자라고 하는 의미라면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렇게 생각하는 남성들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여성으로 태어날래?" 혹은 "그럼 지금 성전환해서 여성으로서 생활하시려우?"라고 물어본다면 허점이 간단히 드러난다.
남자들이 여성과 똑같은 피해자라면 왜 그리 가부장제 사수에 열심일까?
여성들은 물론 모든 남자를 적으로 보지도 않으며 특히 한국의 여성주의자들은 내가 보기에는 너무 평화적이고 온건해서 문제다.
하지만 가부장제를 몸으로, 이론으로 지켜내려는 남성들과 화합하고 부디 조화롭게 살아가라고?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정치학개론도 모르는 순진남이거나 아니면 고도의 사기꾼이다.

물론 여성억압체제는 남성에게서도 많은 것을 빼앗아간다는 점에서 남성도 궁극적으로 가부장제의 피해자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한 제자는 이런 말을 내게 주었다. "세상은 온통 거미줄과 같이 연결되어 있고 여성을 억압하는 그물, 장애인을 억압하는 그물, 동성애자를 억압하는 바로 그 그물은 여성도 아니고 장애인도 아니고 동성애자도 아닌 나를 억압하는 그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는 바보같이 그 그물이 가늘어질 새라 끊임없이 그걸 짜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가부장제가 규정하는 남성성이 인간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 행복, 감격의 순간들을 박탈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은 없는지 이 글을 읽는 남성 독자여 잘 생각해보시라.
강요된 남성성 안에서 당신은 행복한가?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무슨 사내자식이 이렇게 약해서야,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 (여전히 '계집애 같은' 나라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 우는가?) 등등 '상식적인' 말들을 생각해보자.
그게 얼마나 기질적으로 '여성스러운' 혹은 '사나이'들과 다르게 살고 싶어하는 수많은 남성들을 억압하는가?
가령 남학생들 둘이서 차 마시며 조용히 대화하거나 둘이서 영화 구경하고 수다 떠는 것은 아직도 드문 일이다.
'어른' 남자들은 폭탄주나 소주 마시고 뇌가 마비되어야만 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말의 교환은 철저히 형님-동생, 선배-후배의 위계가 결정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남성에게 요구되는 '남성적' 사회성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권위는 가족과 친구들과 어린애들처럼 어울려 수다떨고 장난치는 즐거움, 육아의 기쁨, 여남간 남남간 수평적 대화에서 오는 진정한 마음의 교류 등을 빼앗아간다.
남자들이 누리는 가부장적 특혜는 사실 이러한 손실의 이면이다.

나는 남자로서 여자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여성주의가 여남에게 근본적으로 정의롭기 때문에 또한 수혜자로서 나 자신을 인식하기 때문에 여성주의 편을 택한다.
'여자'도 얼마나 반여성주의적 경우가 많은가?
물론 나, 남성은 여성이 느끼는 모든 감정에 도달하는데 분명 한계가 있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성적 이해와 그것을 토대로 한 합리적 의사소통 및 연대는 여남간에, 어떤 인간사이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 가능성을 부정한다면 긍정적 사회적 변화 및 실천에 대해 무슨 얘기를 더 이상 할 수 있을까?
부르주아가 노동자문화를 내면화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본론을 읽고 나름대로 감동 받고 소화한 부르주아가 노동자계급 편에 서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으랴?
그가 사회민주당의 당원이 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으랴?

그리하여 나, 40대 중년 남자는 주저 없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고, 언젠가 여성주의 정당이 생긴다면 기꺼이 당비를 내고 싶다.
아니 그 이상의 일, 예를 들어 원고료 안받고 '격문' 쓰는 일도 하고 싶다.
코리아 남자들이여, 당신은 여성주의자가 될 권리와 자격이 있다 (물론 사회적 가정적 정의에 예민한 사람에 한해). 의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