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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

[좌담]"아내 때린 남편은 무인도 보내야한다"

by eunic 2005. 2. 28.
"아내 때린 남편은 무인도 보내야한다"
[한겨레 2003-02-16 21:09]

개그우먼 이경실씨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과 그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굴절된 시각이 새삼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겨레>는 가정폭력의 현상과 문제점들을 짚어본 데 이어 13일 전문가들의 좌담회를 갖고 가정폭력에 대한 굴절된 시각을 바로잡고 이런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필요한 일 등을 짚어봤다.

사회 : 권태선 <한겨레> 민권사회1부장

참석자

△최보은 월간 <프리미어> 편집장. 2000년 자신이 ‘맞는 아내’였다는 사실을 <여성신문> 칼럼을 통해 공개한 바 있다. 최씨는 언론이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두식 한동대 교수(법학부) 현재 <한겨레>에 여성과 장애인, 인권문제 등에 관한 칼럼을 싣고 있다. 그는 “남성들은 자신이 맞은 경험과 가정폭력을 겹쳐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희진 경희대 강사(여성학) 2001년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가정폭력과 여성인권>이라는 책을 펴냈다. 정씨는 이경실씨 같은 ‘희생자’가 나와야 문제가 여론화하는 현실 탓에 마음이 불편하다.

사회=가정폭력 실태는 어떤가

정희진= 가정폭력에 대해 이뤄진 조사에서 피해 경험율은 5.6%에서 61.3%까지 다양하다. 가정폭력에 대한 개념이 연구자마다, 피해자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여성운동이 활발할 수록 늘어나는데, 감숴져 있던 것들이 점점 드러나는 것이다.

사회= 이경실씨처럼 사회적 지위가 있는 여성도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데 사람들은 놀라는 것 같다.

교육 많이받고 잘사는 여성들도 무수히맞고살지만 못드러내

최보은= 남성이 힘이 세고, 가부장적 남성우월 사회에서는 남성의 권리가 법적, 관습적, 정서적으로 더 인정받는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여성이든 없는 여성이든 힘시 센 남성이 때리면 맞는 거다. 교육 많이 받고 잘 사는 여성들도 무수히 맞고 살지만, 드러내지 못한다. 드러내는 여성은 너무 큰 짐을 지게 된다.

김두식=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이씨 사건에 대한 스포츠신문 보도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본질은 가만히 누워있는 아내를 남편이 야구방방이로 때렸다는 것인데, 이씨한테 남자가 있었느냐, 누구냐를 놓고 떠든다.

= 종합일간지도 마찬가지다. 마치 가정폭력을 폭력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싸움 정도로 치부해 이 사건을 아주 짧게, 건조하게 보도했다. 언론 또한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범죄를 없애기 위한 제도나 관습개선 등을 사회적으로 환기시키지 못하고 있다.

몇 달 전 한 유명 탤런트가 임신 8개월 상태에서 남편한테 맞았다는 보도들이 있었는데 당시 언론들이 이를 폭력으로 문제제기하고 법적 처벌을 했더라면, 이씨의 남편도 야구방망이를 꺼내 들지 못했을 것이다. 가정폭력을 처벌하는 법이 현실화해야 한다. 아내구타가 즉각적인 이혼사유가 되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여성도 이혼해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사회= “맞을 짓 해서 맞았겠지”라고 말하는 남성들이 꽤 있다. 이씨에 대한 폭력을 범죄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건 왜인가.

= 성공한 여자랑 같이 사는 경제능력이 떨어지는 남편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씨가 남편한테 잘 했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다. 이 논리를 거꾸로 적용하면 한국남성 가운데 두 다리가 성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남성우월적 시각이 짙게 깔려 있다. 또 많은 남성들이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보고 자라 자신도 모르게 폭력을 내면화한다. 학연과 지연이 강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 소외된 남성은 억눌림을 분출할 데가 없는데, 아내를 때려도 별 문제가 안 되니까 만만한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상담경험에 비춰보면 아이들이 가정폭력을 보고 자라는 경우, 그 폭력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성에 따라 다르다. 남자아이는 자신을 때리는 아버지와, 여자아이는 맞는 엄마와 동일시한다.

= 때리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과 때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폭력행위를 처벌할 때 문제를 삼는 것은 그 원인이 아니라 때리는 행위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내 구타의 문제가 되면 그 행위 대신 원인을 더 부각시킨다. 스포츠신문은 때린 행위보다는 얼마나 때릴 만하면 때렸냐는 쪽에 초점을 맞춘다.

사회= 가정폭력특별법이 있음에도 신고율은 낮다. 또,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부분은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가.

= 법은 경찰이 가정폭력을 인지했을 경우 수사해서 처벌하도록 규정하는 등 상당히 잘 돼 있다. 그러나 법대로 집행하지 않는 게 문제다. 실제로 이경실씨 사건에서도 경찰은 남편 손씨의 폭력사실을 인지한 후 즉각 체포해 수사할 수 있었으나 이씨가 처벌을 원한다고 밝힌 후에야 움직였다. 이는 검찰·경찰 등의 책임있는 위치에 여성들이 많지 않은 것과도 관련된다. 여성들이 주류가 되거나 절반 가까이 되면 자동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때려도 별문제 안삼으니 만만한 아내에 폭력 휘두르는 것

= 법은 만들어져 있지만 가부장 사회의 틀은 온존해 있는 게 문제다. 맞는 여성이 멍청해서 신고하지 않는 게 아니다. 신고해도 해결이 안 되고 이혼하면 사회적 인프라가 없어 살기 힘드니까 그렇다.

= 나도 맞은 횟수가 열댓번 되지만 신고는 못했다. 경찰이 법대로 가정폭력 사범을 처벌하고, 또 때리면 즉각 이혼이 가능하게 한다면 남성들은 때리고 싶어도 못 때리게 될 것이다. 이씨 사건에서 경찰이 즉각 남편을 수사해 처벌했더라면, 대중적인 계몽효과가 컸을 것이다. 또 캐나다는 가정폭력 피해자를 정치적 난민으로 인정해주는데 이는 가정폭력이 얼마나 엄중한 범죄인가를 확인시켜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 그렇다면 최보은씨는 어떻게 스스로 남편한테 폭력을 당한 경험을 밝힐 생각을 했나.

= 남편이 딸의 아버지로서만 있어 준다면 폭력을 참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참고 살면 딸들이 또 맞고 사는 일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아이들을 위해서도 참아서는 안되겠다고 결심했다.

사회=마지막으로 가정폭력을 줄일 수 있는 방안들이 있다면.

= 가정폭력에 대해 자주 ‘떠드는’ 것도 해결방법이다. 나는 중고등학생 때 선생님한테 이유없이 폭력을 당한 경험 때문에 폭력에 대한 분노가 생겼고 가정폭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느끼게 됐다. 그래서 “아내를 때린 놈은 잡아서 무인도에 보내야 한다”는 얘기를 친구들한테 늘 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아내를 때리고 싶다가도 네가 한 무인도 얘기가 떠올라 안 때린다”고 하더라. ‘때리면 끝이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남성들은 이런 문제를 들을 기회도 별로 없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때문에 남성은 성의식에서 엄청나게 뒤떨어져 있다. 남학생들에게 여성학 강의를 꼭 듣게 하는 등 학교에서 양성평등 문제에 대해 남성들이 많이 얘기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도 필요하다.

=한 때 맞았던 여자로 꼭 말하고 싶은 것은 폭력을 물려주지 말자, 나 하나 참으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 여성들이 똑같은 피해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이 많다. 가정폭력을 당했을 때 전국 어디서나 국번 없이 1366으로 전화하면 전국 가정폭력상담소로 연결된다

정리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