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다시 살피다]탈식민주의 이론의 시원
‘후진국’ ‘개발도상국’ ‘제3세계’ ‘탈식민지 국가’….
이 명칭들은 한국같이 식민지배를 경험한 나라들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보여준다. ‘후진국’이나 ‘개도국’은 서구의 시선이지만, ‘제3세계’나 ‘탈식민지 국가’는 ‘비서구’사회의 입장에서 서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포스트 콜로니얼리즘(postcolonialism)’ 즉 탈식민주의는 자원, 노동력 약탈 같은 정치경제적 차원에서는 식민지배를 벗어났지만, 문화와 의식 차원에서의 서구 중심주의는 계속되고 있다는 문제의식과 비판을 뜻한다. 식민주의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탈식민주의는 ‘서구-문명’ ‘비서구-야만’으로 정의된 서구 중심의 이항 대립적 사유를 문제 삼는다. 인도의 탈식민 이론가 아쉬스 난디의 지적대로, 식민주의는 기본적으로 ‘문명화 프로젝트’인 것이다.
탈식민주의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고 논쟁적인 사상·사조 중 하나다. ‘혼종성(hybridity)’ 개념의 호미 바바,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으로 유명한 가야트리 스피박 등 현재 맹활약하고 있는 사상가들이 탈식민주의의 시원으로 꼽는 작품이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다. 그간 전개된 탈식민주의 이론이, 이 책에서 제기하는 정체성, 폭력, 인종주의에 대한 해석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책은 20세기 인류사의 분수령이었다.
1925년 서인도제도의 작은 섬 프랑스령 식민지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난 정신과 의사이자 혁명가였던 ‘흑인 파농’에게, 근대는 인종의 드라마였다. 그들은 노예도 아니고 시민도 아닌 ‘검은 피부색’에서 근대가 시작된 사람들이다. 흑인은 그저 검은 것이 아니라, 백인에 대해서 검은 것이다. ‘유색’ 인종에게 서구는 동경과 염원의 대상인 동시에 자신을 타자화하는 권력이다. 파농이 27살에 쓴 이 책은, 인종화된 식민주의로 인한 흑인의 자기혐오, 자기부정, 자기분열에 대한 분노와 고통에 찬 임상의학서다. 파농이 몸부림치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흑인이 백인의 타자라는 사실이 아니라, 흑인의 타자 역시 흑인이라는 자기의식이었다. ‘유색’ 인종은 백인의 눈으로 자신을 본다. 말 그대로 ‘우리’는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하얀 가면 뒤에 검은 피부 즉, ‘진정한’ 흑인의 모습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파농에게 서구의 극복은 서구의 대립항으로서 ‘자기’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점이 탈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다른 점이다. 민족주의가 ‘근원적인 우리’가 있다고 가정하고 서구 반대를 주장한다면, 탈식민주의는 서구-‘우리’라는 이분법 자체가 서구의 권력이라고 보며 이를 해체하는 데 주력한다.
일본의 파농 연구자 도미야마 이치로의 표현을 빌린다면, 식민주의에서 근대를 찾기보다 근대 속에서 식민주의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파농의 탈식민은 서구와의 관계에서 정의된 ‘나’를 벗어나, 자신을 다양한 존재로 개방시켜 나가는 것이다. ‘자기 찾기’란 경과점이지 도달점이 아니며, 수단이지 최종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한국 사람들에게 통일이, 하나가 둘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여럿이 되는 과정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파농의 해체되어가는 주체는 이후 들뢰즈·가타리의 리좀(rhizome)형 존재와 조응한다.
〈정희진|서강대 강사(여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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