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정신’ 스타이넘의 반란 |
[한겨레 2004-02-27 18:27] |
[한겨레] "여성운동은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가…" 그건 편견! 글로리아 스타이넘 캐롤린 하일브런 지음·윤길순 옮김 해냄 펴냄·2만3000원 여성운동가도 미인이면 ‘용서’가 될까 미모만으로 출세하는 남성은 없다. 남성에게 잘 생긴 외모는 부가적인 장점이지만, 여성의 외모는 인생을 좌우하는 정치적 이슈가 된다. 장애인운동이나 노동운동, 민족해방운동, 인종차별반대운동은 운동의 어려움 여부를 떠나, 여성운동처럼 사소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남성사회는 여성주의를 정치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이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들의 불평’이라는 남성 사회의 폄하와 무시는 어떻게 극복 가능할까 편견은 편견을 가진 자가 극복해야 할 과제지만, 지배자가 자기 성찰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언제나 편견의 대상이 되는 피억압자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자기 증명을 하는 현실에 나는 분노를 느낀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며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운동가로 알려진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전기인 이 책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개인의 전기이면서 20세기 미국의 사회운동과 여성운동, 여성운동 이론을 일별할 수 있는 뛰어난 학술서이다. 700쪽에 가까운 책이지만 번역이 훌륭하고 내용이 재미있어서 읽기에 어려움이 없다. 탐정 소설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지은이의 대중적인 글쓰기는 이 책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고, 학술서와 대중서의 경계를 허무는 데 성공했다.
남성중심 권력·불의
겁먹지 않고 맞서
언론 페미니즘 조롱
일관되게 대응 "남성은 나이들수록 보수
여성은 갈수록 급진적" 글로리아는 여성의 성 상품화를 폭로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플레이보이 클럽의 ‘바니 걸’로 위장 취업했을 정도로 미인이었다. 금발에 미니스커트, 긴 생머리의 글로리아 스타이넘에 대해 미국 언론은 항상 갈피를 잡지 못했다. 글로리아가 여성운동가에 대한 고정 관념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미모가 여성운동의 ‘대중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사회운동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이론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의 원제, <여성이 교육받는 것의 의미: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생애>가 한국어판 부제에서 “아름다운 페미니스트”로 둔갑한 것은 유감스럽다.
미국 최초의 여성주의 저널인 <미즈>의 창간, 레즈비어니즘과 인종, 계급 문제를 둘러싼 여성운동가들의 분열과 여성들간의 투쟁, 베트남전 반대운동, 기자가 여성일 경우 자기 이름을 밝히고 신문 기사를 쓰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던 미국의 1920~30년대 풍경, 근대 이후 여성이 ‘자기만의 방’과 자기만의 언어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 사회운동의 대중성, 어머니와 딸의 관계 등에 대해 이 책은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 글로리아는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 여성이지만 흑인, 레즈비언, 노동 계급 여성과도 광범위하게 연대했고 열정적으로 이들의 운동을 지지하며 현장을 누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대중적 영향력, 미모와 재능으로 인해 늘 선입견과 혐의에 시달려야 했고, 실제로 남성뿐만 아니라 베티 프리단 등 ‘부르주아 페미니스트’의 집요한 공격을 받았다.
그는 70살이 넘도록 단 한번도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고, 페미니즘을 배반하지 않았으며, 대중 매체가 여성운동을 조롱하는 것을 가만두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남성 중심 사회의 권력과 불의에 겁먹지 않았다. 평생에 걸쳐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지난해에 한국을 방문한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한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이 되지만,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급진적이 되지요”. 그의 책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일상의 반란>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여성망명정부에 대한 공상> 등이 번역되어 나와 있다. 정희진/여성학 강사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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