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과 여성, 차이가 평등의 근거이다 [조선일보 2004-04-03 01:06]
성의 정치 | 실비안느 아가젠스키 지음
유정애 옮김|일신사268쪽|1만원
[조선일보] “하느님이 남성은 직접 진흙으로 만드셨지만, 여성은 남성의 갈비뼈로 만드셨다.” 이 이야기는 여성의 열등성을 정당화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남성은 진흙으로 만들었으니 질그릇이고, 여성은 갈비뼈로 만들었으니 ‘본 차이나(bone china)’다. 더구나 여성들이 기존의 담론에 주눅들지 않고, “누가 만들어 달랬어?” 하면 그만이다. 여성의 지위를 남편의 직업으로 설명하는 것은 성차별 논리의 하나지만, 어쨌든 프랑스 사회당 정부의 총리를 지낸 리오넬 조스팽의 부인이자 사회과학 고등교육원의 철학 교수인 실비안느 아가젠스키가 쓴 이 책은 성차(性差)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그녀는 남성과 여성의 성차는 생물학적 차이든 사회화의 결과로서의 차이든 간에 차별의 근거가 아니라 권력을 남녀 동수(同數)로 분배하는 근거라고 주장한다. 이때 권력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힘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의미하게 된다. 어느 한 성(性)도 국가 권력을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남녀 동수 이론은 프랑스의 모든 정당들이 모든 경선의 입후보자 명단에 여성을 50% 포함하도록 하는 법률의 기반이 됐고, 2000년 5월 발효됐다. 뿐만 아니라 1999년 동성애 커플에게 결혼 제도의 권리를 똑같이 보장하는 팍스(PACS) 법안 제정에도 큰 영향을 미쳐, 프랑스 전역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에 의하면 남성과 여성은 양성(兩性)이 아니라 혼성(混性)이다. 기존의 양성이란 단어가 남성과 ‘남성이 아닌’ 여성이란 의미를 함의한다면, 혼성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성(性)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뜻을 지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간 시몬 드 보부아르 식의 실존주의 페미니즘은 양성 평등을 주장했기 때문에, ‘불평등한 평등’이었다고 비판한다. 남성을 따라잡기 위해(혹은 남성처럼 되기 위해) 여성들은 이중삼중의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는 것. 근대 이후 여성은 소위 ‘공적 영역’으로 진출했지만, 여성들이 바깥에서 일하는 만큼 남성은 집안에서 노동하지 않았다. 즉, 양성평등론은 여성이 밖에서도 일하고 가사노동도 전담하는 이중 노동 구조를 지속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9조 1항,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진다’는 구절처럼 국민, 인간, 시민, 민중은 모두 남성을 의미한다. 병역의 의무조차 없는 여성이나 장애인은 국민이 아닌 것이다. 남성이 인간의 기준인 상태에서는, 여성은 남성과 같음을 주장(보편주의)해도 차별받고, 다름을 주장(분리주의)해도 차별받는다는 것이다. 인류의 혼성성이란, 인간의 본성이 ‘원래’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져 있음을 뜻한다. 이렇게 인식하면 여성은 부차적인 존재가 아니며,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남성과 동일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게 되면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성차는 부정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제도와 일상에 적용되어야 한다. 철학자인 아가젠스키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이트(저자는 지적하지 않았지만 마르크스를 포함하여)에 이르기까지 서구 지성은 여성을 ‘결핍된 남성’ ‘불완전한 남성’으로 인식해왔음을 지적한다. 초월성과 내재성, 주체와 객체, 능동과 수동이라는 식의 대립 논리는 남성 모델에 특권을 부여한 차이의 해석 방식이다. 평등은 불평등과 대립하는 것이지, 차이와 대립하는 말이 아니다. 평등이란 같음이 아니라 공정함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남녀동수 의회 구성 논리에서 보면, 한국의 여성 할당제는 ‘특혜’가 아니라 당연한 ‘인간 본성’이며, 각각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장애인과 동성애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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