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보단 실력이 쭉쭉빵빵해야죠" | |
[조선일보 2004-06-28 18:19] | |
개그우먼 박경림 "첨에 MC한다니 방송사 사람들이 코웃음 치데요"
여성학자 정희진 "페미니스트는 말술에 골초라는 편견에 시달려"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 꿈꾸고 도전하는 여성은 아름답다. 인기 절정에 있던 개그우먼 박경림(25)이 지난해 미국 유학을 떠난 것은 “예쁘지 않은 여성이 오래 버틸 수 없는 한국의 대중문화 속에서 승리하려면 끊임없는 자기 계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성학자 정희진(37)은 그런 박경림을 두고 “자기 힘으로 홀로서기를 두려워 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흔치 않은 여성 연예인 모델”이라고 칭찬했다. 현재 뉴욕필름아카데미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연기 수업 중인 박경림이 방학을 맞아 서울에 왔다. 그를 ‘386 대표 여성학자’ 정희진이 만났다.
정=남성 중심 외모 지상주의에서 자유롭고 당당한 경림씨 만나러 왔더니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네. 원래 이렇게 날씬하고 예뻤어요?
박=머리는 돈도 없고 자를 시간 없어 저절로 자랐고요, 살은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빠졌어요. 이번에 펴낸 ‘영어 성공기’도 그 고생담을 담은 거에요.
정=다른 고생은 안했어요? 향수병 같은….
박=혼자 있는 시간 줄이려고 미국 친구들 열심히 쫓아다니고, 노인들 쇼핑 도와주기 자원봉사하면서 영어 배웠지요.
정=요즘 한국에선 외모 콤플렉스가 레드 콤플렉스보다 더 무서운 거 아시죠? 간첩이라도 얼짱이면 용서되잖아. 제가 인기 없는 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얼굴이 못생겨서래요.
박=못생겨요? 난 (전)도연 언니가 들어온 줄 알았네(웃음). 그러고 보면 미국 여자들은 외모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우리보다 자유로운 것 같애요. 처음 MC 되겠다고 했을 때 방송사 스태프들이 코웃음쳤던 거 생각나요. 키는 난쟁이 똥자루만하지, 목소리는 뚝배기 깨지는 소리 같지. 하지만 내가 가진 걸 사랑하고 계발하기로 했더니 용기가 나데요. 쉰 목소리 때문에 절대 안된다고 했던 라디오 프로 대박 났던 거 아세요? 자정 프로였는데, 졸고 있는 수험생들 제 목소리로 다 깨워 공부시켰잖아요 제가.”
정=그래서 경림씨 같은 여성들이 오래오래 활동해야 해요. 가수 마돈나 봐요. 프로듀싱부터 비즈니스까지 혼자서 장악하고 있지요? 마돈나가 여성 팬이 더 많은 이유는 성적 대상으로 응시되는 존재가 아니라 성적 매력을 스스로 발산하는 여성이기 때문이에요.
박=심벌이 아니라 주체라는 말이죠.
정=그런데 경림씨 왜 이렇게 똑똑해? 여성학 강의 많이 들었어요?
박=인생에 대해 워낙 궁금한 게 많아요. 뉴욕에서도 내가 질문을 하도 많이 하니까 교수가 너 한국에서 온 거 맞냐고 물어요. 한국 여학생들은 한결같이 페라가모 구두에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에 에트로 머리띠를 하고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면서. 저요? 청바지에 다리 벌리고 앉아 한쪽 다리는 막 떨고 있었죠.
정=아, 유학은 왜 갔어요? 한창 인기 있을 때.
박=꿈을 이루는 것보다 나 자신에게 도전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겹치기 출연도 부끄러웠고요. 참, 영어도 그 도전 항목 중 하나죠. 톰 크루즈가 한국 왔을 때 ‘하우 아 유’ 한 마디 하고 냅다 도망치면서 결심했죠. 외국인과의 토크쇼에서도 나 스스로 인터뷰할 정도는 돼야겠다. 그런데 저도 궁금한 거 있어요. 한국에서 여성학자로 살기 힘들지 않으세요?
정=화살이 왜 나한테 날아오지? 페미니스트는 말술에 줄담배하는 여자라는 편견 때문에 늘 시달리죠. 그래서 제가 집 밖, 도서관 밖엘 안 나가잖아요. 휴대폰도 없고.
박=여성학자로서 여성 연예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정=아이고 진땀나. 기본적으로 여성으로서 사회적 정체성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김미화씨의 커밍아웃이 매맞고 숨어사는 여성들에게 큰 힘이 됐듯 여성 연예인은 여성으로서 사회적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경림씨 공부 열심히 하세요. 오프라 윈프리 영향력의 첫째 원인이 지성이라는 건 아시죠?
박=3D직종 종사자부터 대학교수까지 대화가 다 가능한 여성이죠.정=정말 대단해. 경림씨가 10대들에게 특강하면 진짜 좋겠다. ‘걸스, 비 앰비셔스!(Girls, be ambitious)’란 주제로.
(김윤덕기자 sio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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