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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

[경향신문] 정희진 인터뷰

by eunic 2005. 2. 28.

[이 사람의 책읽기]여성학자 정희진씨
[경향신문 2004-08-27 17:45]


여성학자 정희진씨(37)는 장안에서 알아주는 인기 강사다. 호쾌한 말투와 넘치는 지식이 장기다. 평소 대학 두 곳에 출강하는 것 외에도 여성단체, 노동조합 등에서 사회운동, 탈식민 여성주의, 성폭력 등 다양한 주제로 강의한다.

“책요? 당연히 많이 읽죠. 지식 노동자인데요”라며 웃는다. 지식을 생산하고 나누는 직업의 특성상, 다독은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투다. “여성학은 근대 분과(分科)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문·사회과학의 정수’입니다. 박학다식은 여성학자의 기본 조건이지요.”

그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독자를 현실로부터 얼마나 멀리 이동시키는가이다.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에 눈길을 준다. 그는 “웬만한 책은 2~3시간 안에 다 읽는다”면서 “독자와 저자의 시각이 갈등할 때 책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된다”는 독특한 독서론을 폈다.

정씨가 좋아하는 한국 저자는 권혁범, 정찬, 강준만. 해당 분야에서 자리를 굳히고 있는 전문가들이지만, ‘아웃사이더’ 이미지가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권혁범은 국민 국가와 젠더(성별)의 경계를 뛰어넘는 지적 상상력과 감수성을, 강준만은 남성으로서는 드물게 지역·학벌 문제 등 ‘정체성의 정치’에 깊이 접근한다는 점에서 존경한다고 한다.

“정찬의 소설집 ‘완전한 영혼’(문학과지성사)에 실린 ‘얼음의 집’이나 ‘슬픔의 노래’를 반복적으로 읽습니다. 폭력 앞에 선 인간 행동과 ‘권력의 아름다움’을 그보다 치열하게 사유하는 작가를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정씨는 권력과 폭력, 대량 학살 문제에 관심이 많다. 역사와 세계, 인간을 들여다보고 해석하는 창(窓)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청아출판사),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예담), 도미야마 이치로의 ‘전장의 기억’(이산)은 빼어난 책이라고 했다.

그는 노다 마사아키의 ‘전쟁과 인간-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을 예로 들며, “한국 사회는 제주 4·3이나 광주항쟁을 겪었으면서도 폭력 가해자를 연구하는 책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아쉬워했다. 정씨는 “젠더 관계를 성찰하지 않는 한, 지적 상상력은 빈곤할 수밖에 없다”며 지식인 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아프리카 가나의 어느 여성 단체 소식지에서 읽었던 글귀를 가슴에 새기고 있다. “배움이란, 3초 전에 배웠던 것과 결별하는 과정입니다.”

〈조장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