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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

[한겨레] 더 두려운 2차 피해

by eunic 2005. 2. 28.

더 두려운 2차 피해


성폭력은 피해 여성이 ‘죄의식’을, 가해 남성이 ‘피해의식’을 갖는 매우 특이한 범죄이다. 성폭력 가해자의 ‘피해의식’과 여성 지위 향상에 따른 남성의 ‘분노’는 같은 기원을 갖는다. 수천 년 동안 남성의 당연한 권리, 역사와 문화의 일부였던 성폭력이 여성들의 치열한 저항으로 범죄가 되었기 때문이다. 현행 성폭력특별법을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접근 ‘권리’ 침해라고 주장하는 남성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성희롱을 처벌하면 직장 분위기가 경직된다’,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아내는 뭔가 잘못을 했을 것’ 등이 대표적인 언설이다. 성폭력 가해자로 고소당한 남성이 ‘억울한’ 또 다른 이유는, “(남들도 다 하는데) 나만 걸렸다”는 심리다. 가해자가 처벌받는 경우가 워낙 드물기 때문에, 처벌받는 가해자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남성 문화는 강간범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재수 없이’ 잡힌 남성이 ‘남성의 위엄’을 훼손한다고 본다.
전쟁과 일상의 이분법은 남성의 경험에 기반한 언어이다. 여성에게는, 일상이 폭력에 노출된 전시 상태이다. 여성은 생물학적 성별 혹은 섹스로 인해 두들겨 맞고, 직장을 잃고, 강간당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목숨을 잃는다. 현재 한국의 성폭력 신고율은 2% 내외.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2년 접수된 성폭력 범죄는 1만1580건이다. 역산하면, 한해 성폭력 발생 건수는 약 100만 건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여성이 신고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고하면 더 큰 피해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이 사회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를 보호하는데 더 적극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법 제정 이후 많은 개선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대다수 법 운용자들은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성의 시각에서 강간 사건을 처리한다.

한국사회의 인권 수준을 가늠할 역사적인 판결 법정이 8월18일 열린다. 2002년 7월, 울산에서 직장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던 여성이 두 명의 남성에게 차례로 성폭행 당하고 금품을 빼앗겼다. 그녀는 때마침 사건 현장을 지나가던 112순찰대를 세워, 강간 피해를 직접 신고했다. 그러나 신고를 받은 순찰 경찰은 이 사실을 울산지방경찰청 112신고센터에 보고조차 하지 않아, 검문을 통해 용의자를 조기에 검거할 기회를 처음부터 봉쇄했다. 담당 형사는 피해여성에게 “과부들 상대로 강간 수사하면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범인이 구강성교를 했나” “성경험이 있나”등 사건과 관련 없는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고, 심지어 범죄 신고를 격려해야 할 경찰이 “시집가야 하니 알리지 말라”고 하였다.

이에 성폭력 피해자는 2003년 8월4일, 울산지방법원에 대한민국과 울산광역시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 강간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 자료 수집 의무 태만, 피해자 보호 지침 위반, 잦은 담당자 교체 등 수사 지연을 넘은 수사 회피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강간 범죄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국가와 현장 인근 주민들이 이전부터 요구한 가로등 설치를 관리 감독하지 않은 울산시는 이 사건의 ‘합법적 가해자’들이다(폭 20미터 이상 도로에는 가로등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다).

물리적 강간이 1차 피해라면, 성폭력 사건에 대한 가해자 중심적 해석은 2차 피해(사회적 강간)라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신체적 피해라기보다는 2차 피해이다. 2차 피해가 없다면, 강간은 단순 상해 범죄 중의 하나가 될 것이고 피해자가 신고를 꺼릴 이유도 없다. 피해여성의 고통과 상처는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다. 상처는, 사회가 성폭력 생존자를 존중하느냐, 가해자 처벌 의지가 있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이번 판결을 통해 국가가 성폭력 가해에 일조하고 있다는 여성들의 절망과 불신을 잠재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여성도 ‘국민’이고 싶다.

정희진/서강대 강사


엊그제 동아TV를 봤는데, 면식범의 성폭력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리포터는 대학교정을 지나는 많은 남자와 여자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한 남자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성폭행, 성추행이 되버린 기억을 털어놨다.
"키스를 하고 진도를 더 나가려는데, 여자가 "그만해, 안돼" 라는 말을 한 순간,
개줄이 풀린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여자의 말에 더 화가 나고, 감정이 폭발했다는 그 남자의 솔직한 답변에 처음엔 웃다가 남자들이 여자들의 그런 말을 그렇게 해석한다는 것에 대해 무서워졌다.
또 한 남자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자들에 대해서 여자들이 행동을 잘못해놓고 변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여자와 남자의 생각차이를 인정하는 선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남자와 어디 무서워서 뽀뽀라도 하겠는가 싶었다.
여자들의 말을 내숭이나 변명으로 해석하는 남자들에게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날 저녁 문화방송의 삼색토그 여자를 시청했다.
한 여자 경찰서장이 나와 성폭력이 성기라는 한 신체에 가해진 폭력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 전체에 폭력을 입히는 결과를 가져와서 더 큰 문제라고 했다.
성폭력을 당했을 경우 팔을 다치거나 다리가 부러지는 것과는 다르게 인식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자신의 잘못으로 돌려서 자신의 다친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상처입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엊그제는 또 정송희씨의 만화 '신체적 접촉에 관한 짧은 회상'을 읽었다.
그 책도 어린 여자아이를 성추행하는 이웃집 오빠, 술김에 여자를 덥치는 남자 등이 나왔다.
언니는 이런 우울한 책을 왜 읽냐고 했지만, 만화책이 항상 밝고 상상의 세계를 그려야만 하는 것을 아니다.
그런 현실을 더 날카롭게 그리는게 만화의 임무라고 생각하니까.
아무튼 저번 주말에는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성폭력에 관한 것들만을 접했다.
오늘 아침 한겨레에 실린 정희진의 '더두려운 2차 피해'까지.
나는 여자한테 절대 강제로 키스를 하지 않았다고 자부하는 남자들이여,
자신만의 착각·오해는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