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우리 사회의 악습 중의 하나는 찬반 토론회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사회에는 이분법 논리가 만연하여 사회 전체의 상상력과 관계를 죽이고 있는데, 찬반 토론회는 이러한 사유를 증폭시키고 정상화한다. 이분법 논리는 ‘가’와 ‘나’가 아니라 ‘가’와 ‘안티 가’의 관계라는 점에서, 이분법은 둘의 대립의 아니라 하나의 확장, 곧, 획일주의다. 찬반으로는 성립할 수 없는 주제를 찬반 형식의 틀에 끼워 넣는 경우, 찬반 기준의 외부에 있는 논리, 찬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제3, 제4의 다양한 경우를 인식할 수 없게 된다.
‘군 위안부’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사실 자체를 부정, 왜곡하는 상황에서, 문화방송의 〈100분 토론〉에서 이영훈 교수의 발언에 대한 ‘여론’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논란이, 과거사 청산 찬반으로 환원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가 일제 잔재 청산의 전부가 아니듯, 삶은 과거의 연속이고 일부이기에 “깨끗이 정리한다”는 의미의 ‘청산’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야당의 청산 반대 입장과, 현재 청산 주장의 논리가 국가주의적 사고에 기초해 있다는 이 교수의 지적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본다. 또한, 강제로 끌러간 ‘군 위안부’ 피해 여성의 기억과 고통은 당연히 일제 억압의 역사로 인정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매춘 여성에 대한 비하와 혐오로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교수의 발언 요지는, ‘군 위안부’가 자발적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군 위안부’ 강제 동원에 한국인들도 많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비극은 한-일 사이 민족 모순의 결과일 뿐 아니라 한국 내부의 가부장제도 원인의 일부이다. ‘군 위안부’ 문제가 민족, 성, 계급의 삼중 모순의 결과라는 시각은 신혜수, 정진성 교수 등 관련 연구자들의 오래된 지적으로 전혀 새로운,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다. 강제 동원에 한국인이 참여했기에, 그만큼 더 친일 청산이 시급한 것이다.
또한, 그는 국가 폭력 등 인권 침해 사건은 규명되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민간 차원의 성찰과 자각 없는 국가 주도의 과거사 청산은 ‘진정한’ 청산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자행한 국가 폭력을 다시 국가의 힘에 기대어 ‘해결’하려는 것은, 국가만을 의미 있는 정치적 주체로 보고 국가를 모든 문제 해결의 최종 심급으로 간주하는 국가주의적 발상이 녹아 있다. 곧, 국가 주도의 과거사 청산이 청산의 전부가 아니며, 이후 시민들의 문화적, 정신적 차원의 탈식민 작업이 더 중요하다.
그날 토론에서 송영길, 노회찬 의원의 이해처럼, 정신대 문제가 한국사회의 성차별 때문이기도 하다는 역사 인식을 일본의 책임이 없다는 논리로 연결하는 것은 대단히 단순하고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내부를 성찰하는 것과 과거 청산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두려운 사실은, 이 교수 발언에 대한 ‘온 국민’의 분노가 매춘 여성에 대한 타자화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 위안부’ 문제를 명백한 전시 성폭력으로 인식하는 근거가, ‘자발적인’ 매춘 여성에 대한 혐오여서는 안 된다. 나는 오히려 ‘순결한’ 피해 여성과 ‘타락한’ 매춘 여성이라는 구분보다, 성폭력과 성매매가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를 질문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본다. 현재 대한민국 여성들은 일제에 의해 집단 성폭력을 당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성폭력은 만연해 있다. 한국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하면 ‘개인적인 일’이고, 일본 남성에게 당하면 ‘민족의 아픔’인가? 성폭력은 가해 남성이 누구인지에 따라 그 성격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 의한 폭력이라는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다. 전시 성폭력을 단지 과거의 일로, 민족 모순으로 환원하면, 현재의 여성 억압을 인식하기 어려워진다.
과거사 청산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러한 ‘역사 바로 세우기’가 또다른 타자를 만들어 내고 현재의 문제를 과거로 도피시키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정희진 서강대 강사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 2004-09-16 19: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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