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부총리의 "이상한 법" 발언
<필자 조순경님은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수출주도 산업화의 딜레마", "저임금의 정치경제학" 등의 논문과 <냉전체제와 생산의 정치>, <노동과 페미니즘> 등의 저서를 집필했습니다. - 편집자 주>
‘인신매매 공화국’, ‘성매매 천국’이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만연해 있는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성매매특별법에 대해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한다'는 식의 주장이 성매매 업소 대표가 아닌, 한 나라의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부총리의 입에서 나왔다.
성매매특별법이 “인간의 성욕을 막고,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좌파적 발상에서 나온 법”이라는 전경련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의 발언은 성매매 소비집단의 신경증적 반응쯤으로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찌꺼기를 버릴 수 있는 하수구를 막는” 성매매특별법 때문에 우리 경제가 엉망이 되었다는 대한상공회의소 박용성 회장의 ‘하수구 경제론’은 우리나라 재계 지도자들의 경제관이 얼마나 ‘찌꺼기’ 같은지 아는 것으로 족할 뿐, 대응할 필요조차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헌재 부총리의 발언은 그대로 지나칠 수 없다. 여성의 성을 매매해서라도 경제의 확실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성매매 경제론’을 펴는 사람이 일국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처 최고 책임자로 있는 한, 우리 나라의 합리적인 경제정책은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성매매특별법의 효율적인 집행과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지원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그러한 경제관이 성매매를 부추긴다는 사실이다.
‘경제’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을 해도 좋다는 경제관을 가진 사람들은 다음의 것들에도 동의해야 할 것이다. 이헌재 부총리의 경제관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10대들이 ‘원조교제’라는 이름의 성매매로 유입되는 것을 문제 삼을 수 없다. 소비 진작을 위해서라면 더 많은 10대들이 성매매를 하고, 더 많은 소비를 하는 것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호스트바도 늘리는 것이 내수 진작을 위해 좋지 않겠는가? 나아가 마약생산이나 마약소비도 막지 말고, 도박도 권장해야 할 일 아닌가?
성매매특별법의 경제 영향, 과학적 근거 없어
성매매특별법이라는 “이상한 법”이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의 급등, 달러화 약세와 마찬가지로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더해주는 요소라는 부총리의 발언은 어떠한 근거에서 나온 것인가? 성매매특별법이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실상 아무런 과학적 자료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성매매 업소들에 대한 실태조사에 기초한 것도 아니며, 정부의 공식 통계에 기초한 것도 아니다.
경제에 대한 악영향 운운하는 주장들, 예를 들어 최근에 대두되는 러브호텔 등 숙박업소에 대한 은행 대출이 성매매특별법의 시행으로 은행 부실채권이 급증할 것이라거나, 이러한 숙박업소에 대한 부실 대출로 은행주가 “휘청”하게 된 것, 성매매특별법으로 제주도 경제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은 성매매 업주들의 소리를 대변한 언론이나 단편적인 르포 식의 기사들, 그리고 아무런 실증 자료에 기초하지 않은 ‘경제 전문가’들의 추측일 뿐이다.
빈번하게 인용되고 있는 은행권의 ‘숙박업’ 대출 규모에서 ‘숙박업’은 ‘러브호텔’ 등 성매매 겸업형 숙박업소의 한 부분일 뿐이다. 지금 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성매매특별법이 우리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는 공식 통계나 자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숙박업과 같은 성매매 관련 업종들의 경영난은 이미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확인된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기 이전인 지난 5월 중 재정경제부가 실시한 ‘중소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러 업종 가운데 숙박/음식업의 원금 및 이자 연체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 2년간 부채 증가율이 가장 높고 신용도가 가장 낮은 업종은 숙박/음식업이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기 한참 전부터 이미 숙박업은 높은 은행 연체율과 경영난과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 숙박업이나 유흥음식점업의 매출축소가 마치 성매매특별법 때문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또 다시 여성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경제정책과 경영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부동산 정책, 교육정책도 "이상한" 정책인가?
만약 성매매특별법이 우리 경제를 위축시키기에 유예되거나 시행되지 않아야 한다면 정부의 주택가격 안정을 위한 부동산 정책이나 사교육비 축소를 위한 교육정책도 유예되거나 철회되어야 한다. 이 두 정책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표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서비스업 활동 동향”에 따르면 부동산 및 임대업, 그리고 교육서비스업의 생산이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전년 동기 대비 부동산 및 임대업은 10% 이상 감소했으며, 학원 등의 교육서비스업은 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성매매특별법으로 휘청거린다는 숙박업은 오히려 휴양콘도운영업의 높은 성장세에 힘입어 전년 동기 대비 8% 증가했다.
정부의 부동산 안정대책의 영향으로 부동산업 및 임대업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위축되고, 교육정책의 영향으로 교육서비스업이 심각한 불황의 늪에 빠져든다 해서 이들 정책 시행을 유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 측으로부터 대두된 바는 없다. 성매매특별법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아직 확인할 수도 없고, 확인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소위 ‘전문가’라는 집단과 언론, 재경부 최고 관료가 이 법을 문제 삼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헌재 부총리가 그의 논리대로 경제를 염려한다면 다른 정부 정책도 문제 삼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비경제적인 이유뿐이다. 진정으로 그들의 경험에 기초해 남성의 성욕은 어찌할 수 없는, 반드시 “하수구가 필요한” 욕구라고 믿거나, 아니면 성매매 업주들의 이해를 직간접적으로 대변해야 할 어떠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전자의 이유라면 일본군 성노예의 동원 논리와 다를 바 없다. 군인을 위한 성노예의 필요성은 남성의 성욕은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는 논리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는 정부가 어떻게 일본에 사죄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경제’의 목적을 잊은 경제 논리
설혹 성매매특별법의 시행이 관련 산업의 소비 위축을 가져온다 하자. 그러나 ‘경제'의 목적이 무엇인가. 경제활동, 경제성장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가. 잘 살기 위한 것, 보다 나은 삶이 목적이라면, 설사 그 산업이 경제지표상의 수치를 조금 높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여성과 청소년의 인권을 침해하고, 노예화하고, 수많은 국민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것이라면 그 경제 부문은 당연히 도려내야 마땅한 것이다.
성매매특별법은 그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부모의 폭력으로 가출한 10대가 머물 곳이 없어 거리를 떠돌다가 취업사기로 들어가게 된 티켓 다방에서 업주가 강요하는 성매매를 하게 되고, 강요된 성매매를 할수록 빚은 늘어나 온갖 폭력과 협박 속에서 단란주점으로, 노래방으로, 그리고 집창촌으로 가게 만드는 그러한 성매매 구조가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 하여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주택가와 학교 주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러브호텔과 단란주점, 룸싸롱이 성매매특별법으로 매출이 줄어서 문을 닫는다고 해서 그 지역 주민의 삶의 질과 아이들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가.
정부가 국민의 인권과 생존권을 존중한다면, 그리고 우리 경제의 안정성을 원한다면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접근해야 할 것이다. 성매매특별법의 단속으로 성매매 알선 업소들이 폐업을 하고 그 공간이 경매에 넘겨지게 된다면, 중앙정부나 지자체는 그 건물을 구매, 개조하여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에 필요한 공간으로, 혹은 도서관, 청소년 문화관이나, 탁아, 보육시설, 방과후 공부방, 또는 탁로 시설로 활용할 정책적 방안을 고민해 보는 것이 일차적 과제일 것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에 의하면 성매매 업주가 1명의 성매매 여성을 고용하면서 한 달에 취하는 순수익은 최저 1백만원에서 최고 1천만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이 성매매 여성들로부터 얻은 수익을 몰수, 추징하도록 된 법을 제대로 집행하여 그것을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위해 쓰는 것이 어떻겠는가. 또한 국내 소비를 늘리고자 한다면 한해 1조원이 넘는 룸살롱 등 고액 유흥향락업 접대비를 보다 철저하게 규제하고, 그 접대비로 지출될 비용을 임금인상 등을 통해 임금 소득자에게 분배되도록 하는 것이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보다 빠른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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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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