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대들

[세상읽기] 박구용- 삶은 계산되지 않는다

by eunic 2008. 9. 15.

[세상읽기] 박구용- 삶은 계산되지 않는다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

쾌락이 증가한 만큼 고통도 깊어지는 것이 역사라지만, 고통의 체념이나 미화는 반역사적이다. 자유는 불의 때문에 생긴 고통을 못(안)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제거하려는 역사적 의지고 실천이다. 따라서 자유의 학문인 철학은 제 땅에 넘쳐나는 고통의 뿌리인 억압과 배제를 비판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의 철학자는 그 때문에 무엇이 허세욱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

사회적 정의나 역사적 사명을 위해 자기 몸에 불을 사르는 사람은 없다. 살아 있어야 정의도 의미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사후세계의 절대적 자유와 정의를 약속하는 종교조차 자살을 권고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강요된 죽음만 있을 뿐, 자발적 죽음은 없다. 자살은 목숨이 아니라 관계를 끊는 것이며, 현실이 아니라 마음의 고통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성적비관이나 생계비관 자살이라는 말을 하지만, 성적이나 생계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유로 괴롭히는 사람이 타살한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배척한다고 모두가 죽지는 않는다. 억울해도 발언권을 가진 사람은 삶을 택한다. 말할 기회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소외된 상태에서 언어까지 빼앗긴 사람은 끝없이 저승사자와 싸워야 한다. 승리는 대부분 산자의 몫이지만, 그 대가는 작지 않다. 감금된 상태에서 말조차 빼앗긴 사람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것조차 멈춰야 한다.

허세욱씨는 생각을 멈출 수 있는 노예가 아니었다. 그는 참여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포함한 소외계층의 발언권을 빼앗아 갔다는 것을 알고 잃어버린 언어를 되찾고자 싸웠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거짓말을 고발하는 그의 참말에는 메아리가 없었다. 자유인 허세욱씨에게 삶과 죽음의 차이가 공허해진 순간이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던 날, 농사꾼인 어머니의 전화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우리도 이제 고생 끝났지!” 어머니의 말에는 바보 대통령이라면 당신의 언어를 이해할 것이라는 믿음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4년 뒤 그는 똑똑해진 대통령으로부터 ‘농업은 경쟁력이 없고 그 때문에 가치도 없다’는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내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통째로 부정하는 정치현실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비정한 현실과 온몸으로 대면한 사람, 그가 바로 허세욱씨다. 그의 죽음은 거짓말과 참말을 혼동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양치기소년 이야기는 거짓말이 도덕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용적으로도 유익하지 않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비판은 언제나 마을 사람들을 비켜간다. 그런데 늑대가 판치는 세상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홀로 양심의 거울만 닦는다고 양들이 안전할 수 없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참말과 거짓말을 구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참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한 마을사람들도 소년만큼 책임이 있다. 무책임한 마을사람이 넘쳐나면 양들은 계속 죽어갈 수밖에 없다. 허세욱씨의 죽음에 우리 모두가 책임이 있는 이유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손익계산으로 온 나라가 분주하다. 손해가 있는 분야는 보상하겠다는 약속은 거짓말일 뿐이다. 이 땅의 들녘을 지켜온 민중은 손해 본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삶은 계산되지 않는다. 삶의 의미를 빼앗은 대가는 보상이 아니라 죽음이다. 정치인은 행위 결과에 책임을 지는 실용주의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만 원칙(정의) 없는 실용주의는 참된 정치철학이 아니라 시신애호증 환자의 미학일 뿐이다.

기사등록 : 2007-04-24 오후 05:59:44

ⓒ 한겨레 (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삶은 계산될 수 없다는 말. 삶을 계산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 그들은 삶을 모르는 사람이다.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했고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제껏 내 짧은 인생살이를 돌이켜보면서 그냥 그럭저럭 밥 굶지 않고는 살아왔구나 위로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그런데 아버지가, 내 부모님이 겪으신 시대의 좌절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고 난 못 받은 자에 속하는구나, 계속 박탈당하기만 한 건 아닌가 그렇게까지 생각이 든다. 시대의 조류 때마다 궁지로, 구석으로 떠밀려졌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형화, 체인점화에 밀려 아버지는 파리 날리던 학교 앞 문구점을 팔고 농사를 열심히 지으신 게 그 첫번째 좌절. 농사를 짓다가 농사보조금제를 시행하면서 농사 지으면 망한다는 소리에 땅을 팔게 된 게 그 두번째 좌절. 결국 아버지는 우리 농산물 생산자에서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가서 싼 중국 농산물을 수입해 와서 파는 수입농산물상이 된 게 그 세번째 좌절. 그때부터 아버지의 삶은 가속도로나락으로만 떨어지셨다. 아버지가농사도 못 짓게 되고 중국을 가는 일이 너무고되다며 선택하신 게 산 속에서 수로를 놓는 일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젊은 노동자들도와서 이틀 하다 그만두고 간 일을 60이 넘은 아버지 세대의 동료들은 형편없는 세끼 밥만 주는 열악한 상황 하에서 꿋꿋히 해오셨다. 그게 네번째 좌절이다.

아버지가 경험하지 못한 한가지가 있다면 삶의 벼랑으로 가는 지름길인 재개발지역에서 쥐꼬리만한 보상금받고 집 잃기만 안해보신 것 같다. 그런 삶의 좌절 탓에 난 이마트를 이용 안하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대형화에 밀려 팔아버린 문구점을 생각하면서 작은 가게에서 물건 사주기 운동을 혼자라도 계속 한다. 하나둘씩 계속 사라지는 중이긴 하지만... 여름 땡볕은 곡식이 잘 익어야 한다면서 기쁘게 감내하다가도 아버지가 계신 강원도의 어느 산속 공사현장을 떠올리면 길 위에서 녹아드는 건 아닐까 걱정이 돼 아버지 계신 곳은 구름이 가서 그늘을 만들어주길 기도하곤 했다. 9호선 지하 공사현장의 악취는 지상까지 올라왔는데, 잠시 그 곁은 지나쳐도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그 땅굴 속에서 불쑥 올라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얼굴을 보면서 난 마음이 아팠고 죄스러웠다. 이렇게 열악한 현장에서 어떻게 일을 하는 걸까. 일을 어떻게 시킨단 말인가. 하루하루가 아버지를 통해 만나게 된 삶의 비정한 면들이었다.

결국 아버진 힘들어서 더이상 못하겠다며 까맣게 마른 얼굴을 해서 몇 달만에 집에 돌아오셨다. 전쟁을겪은 세대와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서 오는 차이 같았다. 우리는 죽을만큼의 배고픔, 고통 이런 걸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못 참는 게 많고조금만 부당해도따지지만, 아버지 세대는 하다하다 안되면 그제서야 죽을 둥 해서야 못하겠다 탄식하며 놓는 것 같다.이 블로그에다도 썼지만 아버지에게 농사는 가장 재미있는 학문이었을 것이고, 가장 맘 편하게할 수 있는천직이었다. 아버지에게 땅을 빼앗아간 것은 돈으로 보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돈으로 보상이 가능하다고 하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몇 십년동안 해왔던 생활을 하루 아침에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그 불안감과 막막함. 벌이에 대한 불안감말고 자신에 대한 그 이상한 존재감.

박구용 교수 넘 글 잘 쓴다. 왜 한겨레 연재를 그만뒀는지. 이 남자도 새로운 남자에 속한다. 박구용 교수의 칼럼 내용과 정희진 선생님의 강연 내용과 겹치는 게 많다. 둘이 생각이 많이 비슷한 것 같다. 고통, 상처에 대한 생각들 부분에서. 정희진 선생님과 박구용 교수, 그리고 황상익 교수의 칼럼이 다시 연재되길 기대하며. ㅋㅋㅋ

한겨레에서 만드는 만화잡지 팝툰 구독 조건이 한혜연 만화 연재였는데, 드디어판툰에서 한혜연 만화를 연재한다. 어쩌나. 돈도 없고 내 방은 이제 책이 들어찰 곳이 없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안타깝다. 다 사지 못하는...

이삼돌 박사의 논문이 드디어 번역되서 나왔는데.... 아직도 살까 말까 고민중이다. 누가 내 생일선물로 줬으면 난 그를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할텐데.... 내 친구들 중 요 블로그를 찾아오는 친구가 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