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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

[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

by eunic 2006. 2. 3.

국민국가 넘어 ‘나의 조국‘은 어디에?
2006-01-26


태어난 일본서도 핏줄인 ‘조국’서도 이방인 서경식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평생 품고
팔레스타인·아르메니아·중동…
디아스포라 쏟아내는 뒤틀린 곳을 누볐다
그들이 눈물을 닦아주며 눈물을 삭히러

서경식의 글은 섬세하고 유려하며 잔잔하지만 언제나 깊은 곳에서 슬픔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 묵직한 슬픔에는 타인에 무관심하고 일상의 안정성을 당연하게 여기는 ‘다수자’, “‘민족’과 ‘국민’을 동일시하는 것에 의구심을 갖지 않는 단일민족국가 환상”에 사로잡힌 우리의 무지를 깨부수고 눈을 새로 뜨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 세계 여러 곳의 많은 사람, 숱한 예술품들과의 만남을 통해 구체화된 그의 독특한 ‘세상읽기’엔 굵직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 그의 글이 지닌 남다른 강점 중의 하나는 그런 메시지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탁월한 감응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디아스포라 기행-추방당한 자의 시선>(돌베개 펴냄)에서 우리는 그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 디아스포라 기행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돌베개 펴냄. 1만2000원

디아스포라(diaspora)가 무엇인가? “본래 ‘이산(이산)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이자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가 이 책에서 말하는 디아스포라는 그런 사전적 정의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다. “근대의 노예무역, 식민지배, 지역분쟁 및 세계전쟁, 시장경제 글로벌리즘 등 몇 가지 외적인 이유에 의해, 대부분 폭력적으로 자기가 속해 있던 공동체로부터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들 및 그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용어”다. 지난 1백여년간 이 땅에서도 왕조의 몰락과 식민지배, 전쟁, 군사독재, 시장화를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 각지로 흩어져 나갔고 그 수는 6백여만명에 이른다. 최근의 귀화자들을 포함해 1백여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재일조선인(재일동포)도 그 일부이며 서경식은 그들 중 한사람이다. 그 자신이 바로 디아스포라인 것이다.


추방된 자의 세상 읽기 깊은 슬픔
그의 아버지 서승춘은 식민지시절인 1928년 여섯살 나이에 할아버지를 따라 충청남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는 51년 교토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위의 두 형(서승, 서준식)은 1970년대 초 서울에 유학왔다가 ‘유학생간첩단사건’에 얽혀 각각 19년, 17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으며, 그 기간에 두 나라를 오가며 옥바라지를 하던 어머니는 절망속에 세상을 떠났다. 일본땅에서 차별받고 무시당한 이방인이며 소수자였던 그들 가족은 ‘조국’에서도 버림받았다. (혈연 지연 따위의) 계보로부터 차단당한 존재는 그 무덤조차도 “어제도 내일도 없이 소속할 공동체도 없이 홀로 뚝 떨어진 고립된 무덤”이었다.(자살한 유대인 작가 파울 첼란의 무덤에서) 그의 인생을 지배해온 화두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왜 살아가야 하는가?’는 바로 이 선택의 여지없이 우연히 주어진 디아스포라적 상황에서 비롯됐다. “아이들끼리 싸움이 벌어져 ‘죠-셴(조선) 돌아가’하는 욕을 들을 때마다 내가 다른 애들과 다른 ‘죠-셴’이라는 존재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런 말을 듣는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는 속 시원히 알 수가 없었다.” 조국은 그나마 남북으로 분단되고 전쟁까지 벌여 일제 패망 뒤에도 돌아갈 곳을 주지 않았다. 한국 국적인 그가 굳이 ‘재일 한국인’이 아니라 ‘재일 조선인’임을 고수하고 ‘조선어’에 집착하며, ‘모어’와 ‘모국어’ ‘국어’, 조국, 민족과 국가의 의미와 차이에 그토록 민감한 태도를 보이는 까닭도 그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가 ‘디아스포라적 자기인식’을 정립하는데 영향을 준 암살당한 팔레스타인 작가 갓산 카나파니의 마지막 작품 <하이파에 돌아와(Palestine’s Children)>에서 이스라엘인 손에 키워져 이스라엘 병사가 돼 있는 아들을 찾아간 낳아준 팔레스타인 부모에게 아들은 말한다. “20년간 그냥 울기만 했는가. 눈물로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 없다.”

질식해버릴 것 같은 일본 바깥의 공기를 마시기 위해 1년에 몇번씩은 찾아간 유럽에서조차 끊임없이 자살의 유혹에 시달렸던 서경식은 그러나 눈물로 세월을 보내진 않았다. 그는 조선땅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아르메니아, 보스니아, 아프리카, 중동, 동유럽, 중남미, 동·서남아시아 등 지구 전역에서 디아스포라를 쏟아내고 있는 뒤틀린 세상을 뒤엎기를 원했다. 책 첫장에서 영국 런던 교외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의 칼 마르크스 무덤을 찾아간 저자는 묘비에 적힌, 27살의 마르크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 쓴 유명한 구절을 인용한다. “철학자들은 세상을 이런저런 식으로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가 가진 유일한 ‘혁명’의 무기는 글이다.

▲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세계를 연상시키는 독일 낭만주의

대표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싸인 바다 위의 방랑자>(1818).

나치 독일이 선호했던 바그너의 악극에서 느낄 수 있는

고독, 우울, 차가운 고양감이 높은 봉우리 정상에

버티고 서서 구름에 덮인 대지를 내려다 보는

남자의 형상속에 표현돼 있다.

그는 글로써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모두 제국주의적 식민지배가 수세대에 걸쳐 야기한 ‘거대한 일그러짐’”을 바꾸고 바로 세우려 한다.

그의 지향점, 그가 세상을 바꾸고 되찾으려는 것은 잃어버린 ‘조국’일 수 있다. 그러나 조국은 향수 속에 있지 않다. “‘조국’이란 국경에 둘러싸인 영역이 아니다. ‘혈통’과 ‘문화’의 연속성이라는 관념으로 굳어버린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식민지배와 인종차별이 강요하는 모든 부조리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을 의미한다. 우리 디아스포라들은 근대 국민국가를 넘어선 저편에서 ‘진정한 조국’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식민과 약탈, 전쟁, 차별과 억압, 살륙으로 얼룩진 “근대 국민국가의 틀로부터 내던져진 디아스포라야말로 ‘근대 이후(포스트 모던)’를 살아갈 인간의 존재형식이 앞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라고 외친다.

질식할듯한 일본…자살 유혹
여기까지 오는데 프리모 레비, 장 아메리, 펠릭스 누스바움, 슈테판 츠바이크 등의 유대계 디아스포라들, 시린 네샤트, 자리나 빔지, 오퀴 엔베조, 잉카 쇼니바레, 아이작 줄리언 등의 아시아·아프리카 디아스포라들, 그리고 윤이상, 다카야마 노보루, 조양규, 문승근, 니키 리, 김하일, 미희-나탈리 르무안느 등 코리안 디아스포라들 뿐만 아니라 리하르트 바그너 등 디아스포라를 야기한 쪽에 속했던 인물들과도 그는 조우하고 쉼없이 사색했다.
그러나 ‘진정한 조국’으로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그는 예감하고 있다. “그것이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곤란한 길을 거쳐야만 할 것인가.”
2005년 4월까지 일본 월간지 <세카이(세계)>에 11차례 연재한 같은 제목의 글(지난해 7월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책으로 출간)을 다시 다듬고 보완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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