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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

나는 이렇게 읽었다 [사로잡힌 몸, 통증의 자연사]

by eunic 2006. 2. 3.

나는 이렇게 읽었다/

프랭크 T.버토식 주니어 <사로잡힌 몸, 통증의 자연사>
2006-02-02

통증과의 전쟁, 아득바득 이기려 말라
병원도 손놓은 디스크
직립보행 저주 하필 나야?
마음으로 인해 더 괴롭던
내게 ‘치유의 미소’가


지난 6개월 동안 나는 개들이 부러웠다. 개들은 상처입은 발을 핥으며 스스로 상처를 치료한다. 그러나 환자들의 고통이 박물관처럼 전시된 병원에서 이 의사 저 의사의 손을 무력하게 옮겨다니던 내게는 어떤 건강한 자생의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이 책에서도 나오듯, 내가 걸린 허리 디스크라는 병은 ‘직립보행으로 진화한 우리같은 초기 호미니드들에게 내려진 저주’란다. 네발로 걷는 짐승이 부러울 수밖에.

▲ 남은주/월간 <스카이라이프> 편집장

호모 에렉투스의 고통을 대신하고 있는 내게 무소불위 전지전능하신 줄로만 알았던 현대 의학이 당장 내게 줄 수 있는 것이 기껏해야 한시간 정도 통증에 둔감해지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알약 한알뿐이라는 사실에, 믿고 살던 남편이 밖에 첩을 두었다는 걸 눈치챈 여자처럼 분노했다. ‘육신이 병드니 마음에 비애가 깊다’고 법정스님은 읊으셨으나, 내 경우엔 지친 마음이 내 허리를 더욱 죽비처럼 내리쳤다. 왜 나만 이렇게 아픈지 억울해서 더 괴로웠고, 허리를 고치는 ‘원천기술은 있다면서도 증거를 보여주지 않는’ 병원을 원망하느라 괴로웠다.

결국 종합병원을 나와 한적한 의원을 찾았다. 간밤의 긴 고통을 토로할 수 있는 곳이었다. 길들여지지 않는 승냥이처럼 내 몸속을 맘껏 헤매던 고통은 누군가 매일매일 내 고통을 들어주고, 나도 이를 가다듬어 표현하게 된 그때서야 비로소 고삐가 잡혔다. 고통에 대해 처음으로 지성이 제어력을 발휘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의 고통을 더하는 것도 지성이며, 고통을 더는 것도 지성의 힘이라고 한다.

이 책은 미국 신경외과 전문의 프랭크 T.버토식 주니어가 현대 의학의 용어로 통증의 역사와 인간의 괴로움에 대한 연민을 읊은 책이다. 책에 나오는 환자들은 모두 자신만의 지옥에 갇혀 있다. 편두통을 막기 위해 억지로 구토를 하다 망막까지 손상된 환자, 절단된 팔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통증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환지통 환자,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고통을 겪는 손목굴증후군환자, 수건으로 다리를 매달고 다니는 허리디스크 환자. 이 책은 그야말로 통증에 대한 탈무드였고, 괴로워하는 인간군상도였다. 엄숙한 목소리로 경고한다. 병에 걸린 자, 모두 희망을 버려라. 지금까지 우리가 통증과 싸우기 위해 고안했던 많은 전략들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어디서 구원을 얻을 것인가.

저자는 통증을 일으키는 원인인 신경과 신경 전달물질, 그리고 그 처방을 설명하는데 상당부분 공을 들이면서도 아직 완전하거나 모든 사람의 아픔을 덜어주는 의학의 성취는 드물다고 보고한다. 의사인 그 자신도 평생의 짐으로 편두통을 지고 있다. 그도 어린이용 해열제나 억지로 토하는 방법에 의지해 곡예사처럼 아슬아슬하게 통증을 피해가며 살아간다고 고백한다.

버트런드 러셀이 말한 ‘영원한 지옥’이라는 환자들의 공포와 사회적 열패감, 무익한 통증에 대한 또다른 괴로움까지 속깊이 이해한 끝에 마침내는 모든 통증은 ‘무(無)’로부터 비롯된다는 보기드문 성찰에까지 이르고 있다. 의사인 자신도 통증과의 전쟁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까닭에 인본적 진찰을 붙잡은 것이리라.


비로소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한 지난 주 꿈을 꾸었다. 아프던 다리에서 흰 새들이 화드득 날아가는 그럴 듯한 꿈이었다. 지난 6개월 동안 약사여래도 사도바울도 아스클레피오스도 통증에 미쳐 날뛰는 내게 희망의 미소는커녕 그림자도 보이지 않던 터였다. 신비한 예언은 못될지언정 메시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고통이 외부로부터 와서 나를 사로잡은 게 아니라 내 몸속에서 시작된 것처럼 희망도 몸속에서 시작되리라. 책 끝머리에 저자는 이렇게 충고하는데, 심신 쇠약해진 이 환자는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마음 속으로 자신의 결승선을 그리고 계속 전진하라. 결국 우리의 삶을 고통으로부터 해방하려는 노력은 철저히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는 통증이 아니라 차라리 인생에 대한 경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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