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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심야통신] `중국'이란 이름의 기관차 어디로 돌진하고 있는가

by eunic 2005. 12. 23.

[심야통신] `중국'이란 이름의 기관차 어디로 돌진하고 있는가

중국 여행객·미술·음악가
유럽 곳곳 활보하고
베이징 화려하게 변하지만
그 뒤엔 농촌의 희생과
체제 모순 속병 커진다

[한겨레]2005-09-23 06판 M07면 2934자 특집 기획,연재

‘중국’이라는 문제
중국의 존재감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어디를 가든 그걸 느낄 수 있다. 나는 올해 8월 2주일 남짓 잘츠부르크와 루체른에 머물렀는데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중국인 단체여행객의 모습이었다.

옷차림은 세련되지 못했고 소지품도 간소했다. 신흥 부유층이 아니라 극히 보통의 시민인듯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일찍이 일본인 단체객이나 한국인 단체객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가슴을 펴고 활보한다. 큰소리로 얘기하고 즐겁게 웃는다.

마치 제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듯 조금도 비굴한 구석이 없다. 관광지의 안내표시, 팸플릿, 지도 등에도 중국어 표기가 늘고 있다. 중국인은 이제 일본인을 밀어내고 유럽 관광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고객이 됐음에 틀림없다.

스위스에서는 10여년 전에 찾은 적이 있는 베른 미술관에 들러보았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했는데, 거기서 대규모 중국 현대미술전이 열리고 있었다. 유럽인들의 현대중국에 대한 관심 고조를 보여주는 기획이었다. 현대미술 세계에서는 지금 중국인 작가들이 최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들의 작품에 종종 익스트리미즘(극단성)이라거나 센세이셔널리즘(선정주의)이라고 비판받는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번에 본 작품에도 자신의 등에 인두로 낙인을 찍거나 온몸에 생고기를 붙인 모습으로 뉴욕 거리를 달리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내가 본 중국 현대미술의 특징은 유럽(특히 독일) 예술에서 볼 수 있는 자기부정의 감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저 단체여행객들처럼 자신만만하다.

일본의 현대미술에는 근대에 서양에서 수입한 미학이나 미의식과의 불철저한 갈등이 있고, 한국의 현대미술에는 일본을 경유해 수입된 서양 근대 미의식과의 굴절된 갈등이 있다.

하지만 중국인의 현대미술에서는 그런 갈등을 찾아볼 수 없다. 중국 현대미술에서는 전근대의 전통적 미의식과 현대 최첨단 미의식이 근대라는 시대를 생략한 채 바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중국 현대미술은 좋게 얘기하면 활기차고, 나쁘게 말하면 요란하다. 예전의 사회주의식 예술은 지난 시대의 악취미적인 유물처럼 취급받고 기껏해야 패러디 재료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보는 사람에게 위화감이나 혐오감마저 주면서도 더 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바로 중국 그 자체의 현재를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의 상업주의 요구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이 중국과 세계에 정말 좋은 것인지 어떤지는 따로 깊이 생각해봐야겠지만.

올해 여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스타 가운데 한사람은 중국인 피아니스트 랑랑이다.

8월14일 축제 대극장에서 열린 리사이틀에 나도 가 봤다. 프로그램은 슈만, 하이든, 슈베르트, 쇼팽, 리스트, 그리고 현대 중국의 작곡가 탄 둔(47)이었다. 이 비빔밥 같은 곡목을 보고 나는 의심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어떤 곡이라도 연주해 보이겠습니다, 라는 과시가 아닌가.

기교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최고의 연주라 할 수 없다. 음악은 서커스나 스포츠 경기와는 다르다. 서양음악의 전통이 아직 일천한 중국에서 최근 저명한 콩쿠르 입상자가 줄을 잇고 있으나 마치 스포츠 선수와 같은 젊은이들이 많다.

랑랑도 그런 젊은이들 가운데 한사람이 아닐까.

나의 이런 의심, 편견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보기 좋게 배반당했다.

그의 첫 터치로부터 흘러나온 음의 섬세함과 투명성에 접한 순간 “아, 이건 보통내기가 아니군”하는 직감이 왔다.

연주가 끝났을 때 일류 연주만 들어온 잘츠부르크 관중들이 모두 일어서 발을 구르며 환성을 질렀다. 나도 그들과 함께 열광했다. 진짜 천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일생에 몇번 없는 귀중한 순간이었다.

랑랑은 1982년생이니 아직 23살이다. 고향은 동북지방(옛 만주)의 선양. 베이징 음악원을 나와 97년부터 미국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에서 배웠다고 한다. 옛날에는 북방 수렵민족이 내달리던 변경의 땅. 근대에 열강의 쟁탈전 무대가 돼 일제가 괴뢰국가를 세워 식민지로 지배한 땅. 우리 동족이 많이 사는 땅. 항일전쟁, 국공내전, 사회주의 혁명, 그리고 문화대혁명, 현대사의 거친 파도에 씻겨온 광대한 땅. 그런 곳에서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듯 서양 클래식 음악의 천재연주가가 출현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경이와 함께 중국이라는 나라의 불가사의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서 돌아와 집에서 고작 사흘을 보낸 뒤 한 학술 심포지엄에 참가하려고 베이징에 달려갔다. 13년 만에 이뤄진 두번째 방문이었으나 그 격변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거리 전체가 거대한 건설현장 같았다. 사회주의 슬로건이 모습을 감추고 은행이나 부동산, 정보기술(IT)산업 광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택시의 라디오에서는 영어 랩뮤직이 시끌벅적하게 계속 흘러나왔다.

중국은 경제발전을 이뤄 풍요로워졌을까? 어느 중국인 지식인이 이 질문에 대답했다. “서구 제국은 수백년간 제3세계를 수탈하고 그 희생 위에 공업화를 성취했다. 실은 중국은 그런 일을 자국 농촌을 상대로 자행해 왔으며 지금도 그것을 계속하고 있다. 소농경영, 상호부조, 생태계와의 공존이란 중국 농촌사회의 전통적 문화를 재평가하고 서구형 대량소비문명에 대항하는 가치관을 수립해야 한다.”


다른 지식인은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긴급과제로 3가지를 들었다.

첫째, 내셔널 인티그레이션(국민적 통합)의 동요.

둘째, 경제지상주의의 폭주.

셋째, 무책임한 개인주의의 만연.

즉 사회주의 이념을 내걸고 자본주의를 실천하는 데 따른 모순에서 비롯된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적은 아주 정곡을 찌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방향을 잘못 잡으면 괴멸적인 혼란이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퍼져갈 것이다. 중국의 일부 지식인은 그것을 인식하고 강한 사명감을 갖고 사상적인 고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확고한 방향(침로)을 전망할 수 없는 상태 속에 중국이라는 거대한 기관차는 돌진해 가고 있다. ■
서경식/도쿄경제대학 교수
번역 한승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