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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심야통신] 보수의 그림자 드리운 음악제

by eunic 2005. 12. 23.
[심야통신] 보수의 그림자 드리운 음악제

85년 잘츠부르크 음악제 휴머니즘 전통 흔들린다
타자 배제한 자폐에 빠질까
런턴폭탄 이후 불안한 유럽을 상징한다

[한겨레]2005-09-09 06판 M07면 2965자 특집 기획,연재

비내리는 잘츠부르크


8월23일 유럽에서 일본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그랬듯 시차 조정 때문에 애를 먹었으나 이번에는 예전보다 컸던 온도차로 고생했다. 내가 머물렀던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에서는 차가운 비가 계속 내려 하천 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각지에서 홍수와 산사태 피해가 잇따랐다. 한여름인데도 기온은 섭씨 10도 안팎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일본과의 온도차는 대체로 20도나 됐다. 역시 이상기후인가.

이번 여행의 목적은 잘츠부르크 음악제와 루체른 음악제였다. 내가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다. 그때부터 매년 거르지 않고 계속 다녀, 올해로 6년째가 된다. 겨우 6년이지만 그동안 세계정세 변화 탓에 음악제에도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2000년 봄, 오스트리아에서는 외르크 하이더가 이끄는 극우정당이 득표율을 높여 연립여당에 참가했다. 하이더는 외국인 배척을 주창하면서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강점시대를 미화하는 발언을 공공연하게 되풀이했다. 그런 역사관은 유럽 통합의 이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유럽연합(EU) 가맹국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당시 잘츠부르크 음악제 총감독이었던 벨기에 사람 제라르 모르티에는 항의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계약기간을 1년 남겨둔 채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 얼마 뒤 빈에서 극우에 반대하는 15만명의 시민들이 참가한 시위가 벌어졌다. 이것을 본 모르티에는 생각을 바꿔 극우반대 자세를 보인 시민과 연대하기 위해 임기를 마칠 때까지 총감독 직을 유지하기로 했다.

모르티에의 임기 최종연도였던 2001년, 나는 잘츠부르크에서 요한 슈트라우스(아들)의 오페레타 〈박쥐〉를 관람했다. 별다른 기대도 없이 때마침 빈자리가 있었기에 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정말 재미있었다. 시대 설정을 원작의 19세기에서 1930년대로 옮기고, 밤 모임을 코카인 파티로, 주인공을 파시스트로 설정하는 도발적인 새 연출이었다. 현재의 정치를 풍자하고 하이더 등 극우파를 조롱한 것이다.

객석의 반응은 완전히 둘로 갈라졌다. 민족의상이나 턱시도 정장으로 치장한 유복해 뵈는 중장년층은 벌레를 씹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자들도 적잖이 있었다. 한편 서머 스웨터나 재킷 등 편한 옷차림을 한 관객들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곧잘 웃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정치적 입장의 차이나 세대간 대립구도가 드러나, 나로서는 무대 위의 열연에 못지않게 객석의 상황이 재미있었다. 예술행위는 문화를 둘러싼 투쟁이며, 극장은 투쟁의 장이라는 진실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잘츠부르크 음악제는 1920년, 극작가 후고 폰 호프만스탈과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 주도 아래 시작됐다. ‘유럽 중심주의’라는 역사적 한계성은 있었지만, 그것은 국가의 벽을 넘는 보편적 ‘휴머니즘’ 이념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으로부터 다시 일어서려는 문화적 실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슈테판 츠바이크 등 유대계 문화인이 해낸 역할은 컸다.

1944년 나치는 총력전이라는 명목 아래 음악제를 중지시켰다. ‘휴머니즘’의 실험은 일단 나치즘이라는 대반동에 의해 좌절당했지만 제2차 대전 뒤에도 음악제의 전통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새 연출의 〈박쥐〉도 그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6년간 내가 본 작품 중에서 핀란드의 여성 작곡가 카이야 사리아호의 〈머나먼 사랑〉이나 독일 출신 한스 베르너 헨체의 〈루푸파〉라는 신작 오페라는 모두 유럽문화와 타문화(이 경우는 이슬람)의 우애를 테마로 한 의욕적인 작품이었다. 헨체는 1968년 독일 학생반란 세대의 우상으로, 도망 노예를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 〈엘 시마론〉을 작곡한 현대음악계의 거장이다.

올해 음악제에서 주목받은 작품은 프란츠 슈레커의 오페라 〈낙인찍힌 자들(Die Gezeichneten)〉이다. 오스트리아의 유대계 작곡가 슈레커의 오페라는 양차 대전 간의 시대에 많이 상연됐다. 그러나 나치의 정권 장악 뒤에는 상연이 금지돼 그 작품은 최근까지 거의 잊혀졌던 것이다. 8월19일치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나치에 의해 매장당한 음악이 기념비로 다시 살아난다”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이런 예술작품을 재생시키는 것이 젊은 세대의 역사의식이나 평화 지향을 함양하는 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나 자신도 8월9일 이 오페라를 보고 질 높은 연주에 만족하면서 동시에 거기에 음악제의 전통이 가느다랗게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나의 전반적인 인상은, 이 슈레커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올해 음악제에서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문제작이나 의욕적인 작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다.

관객도 정장한 부유층 일색이었다. 보수화가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같은 시기 런던에서 일어난 폭탄사건을 계기로 영국 정부가 이슬람계 시민의 기본적 인권을 제한하는 정책을 내놓은 사실이 보도됐다. 인권사상의 모국인 영국에서 인권의 기본원칙이 버림받는 사태가 빚어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속사정을 추측해 보건대, 현재의 유럽인에게 나치에 의한 유대인 박해의 역사를 강조하는 것은 다수의견에 동조하는 것인 만큼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9·11 사태와 이라크 침공을 겪은 지금 다수파가 위험시하는 이슬람 문화와의 우애나 공생을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잘츠부르크 체류 중에 잠시 맑은 날씨를 보였던 어느날 나는 카프치나베르크 언덕의 옛 츠바이크 저택에 올라가 봤다. 그곳은 일찍이 로맹 롤랑이나 토마스 만 등 평화와 인간성의 이상에 희망을 걸었던 유럽 지식인들이 모였던 장소다.

그 저택의 주인은 나치에 쫓겨 망명지 브라질에서 자살했다. 문화 투쟁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투쟁을 반영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60년,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 잘츠부르크는 일찍이 한번 좌절당했던 휴머니즘의 이상을 이어받아 발전시켜 갈 수 있을까? 아니면 타자를 배제하면서 자기중심주의로 자폐해 들어갈까? 차가운 비를 머금은 구름은 세계를 뒤덮고 있는 불안의 그림자처럼 보였다. ■
서경식/도쿄경제대학 교수
번역 한승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