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통신] `중국'이란 이름의 기관차 어디로 돌진하고 있는가 중국 여행객·미술·음악가 |
[한겨레]2005-09-23 06판 M07면 2934자 특집 기획,연재 |
‘중국’이라는 문제 옷차림은 세련되지 못했고 소지품도 간소했다. 신흥 부유층이 아니라 극히 보통의 시민인듯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일찍이 일본인 단체객이나 한국인 단체객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가슴을 펴고 활보한다. 큰소리로 얘기하고 즐겁게 웃는다. 마치 제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듯 조금도 비굴한 구석이 없다. 관광지의 안내표시, 팸플릿, 지도 등에도 중국어 표기가 늘고 있다. 중국인은 이제 일본인을 밀어내고 유럽 관광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고객이 됐음에 틀림없다. 일본의 현대미술에는 근대에 서양에서 수입한 미학이나 미의식과의 불철저한 갈등이 있고, 한국의 현대미술에는 일본을 경유해 수입된 서양 근대 미의식과의 굴절된 갈등이 있다. 하지만 중국인의 현대미술에서는 그런 갈등을 찾아볼 수 없다. 중국 현대미술에서는 전근대의 전통적 미의식과 현대 최첨단 미의식이 근대라는 시대를 생략한 채 바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8월14일 축제 대극장에서 열린 리사이틀에 나도 가 봤다. 프로그램은 슈만, 하이든, 슈베르트, 쇼팽, 리스트, 그리고 현대 중국의 작곡가 탄 둔(47)이었다. 이 비빔밥 같은 곡목을 보고 나는 의심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어떤 곡이라도 연주해 보이겠습니다, 라는 과시가 아닌가. 기교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최고의 연주라 할 수 없다. 음악은 서커스나 스포츠 경기와는 다르다. 서양음악의 전통이 아직 일천한 중국에서 최근 저명한 콩쿠르 입상자가 줄을 잇고 있으나 마치 스포츠 선수와 같은 젊은이들이 많다. 랑랑도 그런 젊은이들 가운데 한사람이 아닐까. 그의 첫 터치로부터 흘러나온 음의 섬세함과 투명성에 접한 순간 “아, 이건 보통내기가 아니군”하는 직감이 왔다. 연주가 끝났을 때 일류 연주만 들어온 잘츠부르크 관중들이 모두 일어서 발을 구르며 환성을 질렀다. 나도 그들과 함께 열광했다. 진짜 천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일생에 몇번 없는 귀중한 순간이었다.
첫째, 내셔널 인티그레이션(국민적 통합)의 동요. 둘째, 경제지상주의의 폭주. 셋째, 무책임한 개인주의의 만연. 즉 사회주의 이념을 내걸고 자본주의를 실천하는 데 따른 모순에서 비롯된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적은 아주 정곡을 찌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방향을 잘못 잡으면 괴멸적인 혼란이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퍼져갈 것이다. 중국의 일부 지식인은 그것을 인식하고 강한 사명감을 갖고 사상적인 고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확고한 방향(침로)을 전망할 수 없는 상태 속에 중국이라는 거대한 기관차는 돌진해 가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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