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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심야통신] 유대인과 아랍인 ‘루트 181’ 동행

by eunic 2005. 12. 23.

[심야통신] 유대인과 아랍인 ‘루트 181’ 동행

‘이-팔 분할’ 유엔 181 결의는 고향사람 아랍인을 소수자로 만들었다
루트 181이란 영화는 그 길을 따라간다 선량한 사람들 입에서 쏟아진 말
“아랍인은 암이야, 쓸어버려야 해” 일상적 악의 실재감에 심장이 조여왔다

[한겨레]2005-10-21 06판 M07면 2970자 특집 기획,연재

〈루트 181〉을 아시는가? 미셸 클레이피와 에이알 시반 두 감독이 공동제작하고 2003년에 발표한 다규멘터리 영화다. 4시간 반이란 긴 상영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고 끝난 뒤의 느낌이 묵직하다. 아마 한국 독자 가운데 이 영화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상영해 볼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루트 181〉이라지만 그런 이름의 도로가 실재하는 건 아니다. 1947년 11월29일 유엔은 ‘결의안 181호’를 채택해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인 국가’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을 ‘국제관리지구’로 삼겠다고 결정했다.

이 결의는 유대인에게 유리하고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겐 불리한 매우 불공평한 것이었다. 게다가 유대인 쪽은 이 결의가 정한 분할선을 넘어 무력을 통한 영토 확장을 꾀했다. 다음해 이스라엘 건국이 선언되고 그 직후에 발발한 제1차 중동전쟁 결과 이스라엘은 한층 더 점령지를 확대했다. 그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 약 100만명이 난민이 되고 16만명이 이스라엘 영역 안에 남게 됐다.

그 뒤 약 60년이 지났다. 난민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현재 그 총수는 약 6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또 이스라엘 영토 안에 남게 돼 이스라엘 국적이 주어진 팔레스타인인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장소에 머물러 그냥 살아왔을 뿐인데 자신들의 고향에서 마이너리티(소수자)로서 차별받는 지위로 전락했다. 즉 결의 181은 팔레스타인 분할 역사의 분기점이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절망적인 투쟁의 출발점인 것이다.

클레이피와 시반은 이 결의에 따른 분할선을 〈루트 181〉이라고 명명했다. 이 루트를 따라가며 차를 달리는 그들이 여행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실로 다양하다.

공사 현장감독은 말한다. “좋은 아랍인 따위는 없다. 좋은 아랍인이란 죽은 아랍인뿐이다.” 여성 상점주인은 말한다. “아랍인은 암이오. 한놈도 남김없이 싹 쓸어없애버려야 해. 설령 이스라엘 국적이라 해도 말이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대학살) 피해자를 어머니로 둔 조각가는 자기 어머니가 겪은 고통을 얘기할 때는 흐르는 눈물 때문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지만, 마을이 파괴당한 뒤 쫓겨난 팔레스타인인에 대해 물으면 태연하게도 “양심의 가책도 죄의식도 없다”고 대답한다.

늙은 퇴역군인은 “빗자루 작전”에 관한 기억을 떠올린다. 빗자루로 쓰레기를 쓸어버리듯 팔레스타인인을 일소해 버린다 해서 그런 작전명이 붙었다. “여성이나 아이들도 추방했나?”라는 질문에 “가족과 헤어지게 만드는 게 더 가혹할 거다. 함께 쫓아내는 쪽이 오히려 봐주는 거다”라며 소리내어 웃었다. 그리고 “우리의 생존이 걸려 있던 문제였다”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 영화는 여러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점령과 식민지 지배라는 현실, 일상화하고 제도화한 국가폭력, 사람들의 내면에 침투한 중층적인 차별의식을 날카롭게 들춰낸다. 피상적으로만 보면 어떤 인물도 선량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런 만큼 더더욱 그 말들에는 흡사 셰익스피어극의 대사를 듣는 듯한 압도적인 악의 실재감을 느낄 수 있다. 여성 상점주인의 말은 일본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우리 재일 조선인들에게 섬뜩하게 심장을 죄어오는 듯한 리얼리티가 있다. 일본 사회의 현실을 보면 이와 같은 말이 우리를 향할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점령, 식민지 지배,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런 말들은 우리 조선인이 근현대사 과정에서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것이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팔레스타인인의 고난이 시작된 1948년, 우리 민족은 남북으로 분단됐다. 식민지 지배를 받은 근대사와 분단·이산의 현대사를 우리들과 팔레스타인인은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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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한 사람인 미셸 클레이피는 1950년 지금의 이스라엘령 나사렛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 아랍인이다. 14살 때 자동차 수리공이 됐으나 1970년에 벨기에로 이주한 뒤 영화를 배워 다큐멘터리 작가가 됐다. 지금까지 〈풍요한 기억〉 〈3가지 보석 이야기〉 등 여러 뛰어난 작품을 만들었다.

또 한 사람의 감독인 에이알 시반은 유대인이다. 그의 아버지는 1963년 남미 우루과이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그 다음해 하이파에서 태어난 그는 학교교육 속의 국가주의와 군국주의에 반발해 시민 불복종 사상을 갖게 됐다. 82년 레바논 침공 때 병역을 기피했고 85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나치 전범자) 아이히만 재판 기록필름을 독자적으로 해석해서 편집한 다큐멘터리 영화 〈스페셜리스트〉는 이스라엘 국가가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자기정당화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즉 두 사람은 모두 이스라엘 영내에서 태어났으나, 한 사람은 선주민인 마이너리티이고, 또 한 사람은 식민자의 자손으로 머조리티(다수·주류)인 것이다. 이런 두 사람이기에 비로소 긴장을 배태한 그들의 여행은 팔레스타인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화평과 공존 가능성을, 또는 그 불가능성을 준열하게 응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일본의 지방도시 야마가타의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상영됐으나 상업적으로 채산이 맞을 전망이 서지 않아 다른 도시에서의 상영은 예정돼 있지 않았다. 거기서 내가 우인들과 함께 도쿄에서 상영하기로 기획을 했다. 도쿄에서는 10월14, 15, 16일 사흘간 상영된다. 14일은 내가 근무하는 도쿄경제대학이 상영 장소여서 그날 나도 참가하는 두 감독과의 좌담회가 예정돼 있다.

클레이피와 나는 이미 아는 사이로, 그가 95년 일본에 왔을 때 대담한 적이 있다. 그 대담에서 나는 “팔레스타인 상황은 매우 곤란한데 당신이 낙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건 왜 그런가?” 하고 다소 무람없이 질문했다.

거기에 대한 그의 대답은 “사람들이 낙관적일 때는 창조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비관적이어야 하고, 사람들이 비관적일 때는 낙관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팔레스타인 상황은 점점 비관적으로 돼가고 있다. 이번에도 같은 질문을 한다면 그는 뭐라고 대답할까? ■
서경식/도쿄경제대학 교수
번역 한승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