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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 여성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는, “아줌마 같다”일 것이다. 반면, 기혼 여성에게 “아가씨 같다”는 말은, 칭찬으로 간주된다. 왜 여성의 ‘지위’가 나뉘어지는 기준이 ‘아가씨’와 ‘아줌마’일까? 비슷한 맥락에서 여자 대학생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4학년 같다”다. 대학생들의 학과 행사나 술자리에서, 여학생들이 학년에 따라 하는 일이 다르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남학생들은 술을 마시며 술자리를 즐기는 데 반해, 1학년 여학생들은 술을 따르거나 노래를 부르고 4학년 여학생들은 음식을 만들거나 시중드는 일을 주로 한다. 여성은 나이에 따라 ‘애인’ 또는 ‘어머니’로서 노동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실례”라는 에티켓 아닌 에티켓도 있다. 넘쳐나는 ‘안티 에이징’ 화장품 광고들은 “절정일 때 지켜라” “스무 살만 돼도 피부 노화가 진행된다”며, 협박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나이 든 여성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를 알게 해준다. 왜 여성들은 나이 드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해야 할까? 여자는 취직도 안 되고, 고위직에도 거의 없고, 성폭력은 만연해 있다. 여성의 지위는 낮은데, 왜 ‘젊고 예쁜 여성’의 지위는 높은가? 나는 여러 대학과 시민단체, 정부기관, 노동조합 등에서 여성학 강사로 일하고 있는데, 대학생들이 제일 보수적인 경우가 많다. 수업이 끝난 후 의문에 가득 찬 표정으로 이렇게 질문하는 여학생들이 매학기마다 한두 명씩은 꼭 있다. “선생님은 여성이 차별받는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이상해요. 저는 아니거든요. 왜 남자들은 저만 예뻐하는 거예요?”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10년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몸과 남성의 몸은 전혀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물론, ‘몸짱’은 성별을 불문하고 높이 평가되지만, 이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성 차(별)가 있다. 남성의 사회적 계급이나 정체성은 나이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돈이 많은지, 지식이 많은지 등에 의해 형성된다. 하지만 여성은 나이와 외모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남성은 몸의 상태로 평가되지 않는다. 그래서 돈 있고 나이든 남성에게 선택될 가능성 때문에, 10대와 20대 초반 여성은 또래 남성들보다 ‘권력이 많다.’ 그러나 이후에는 완전히 역전된다. 계층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50대쯤에 이르면 여성과 남성의 권력은 비교 불가능하게 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젊고 예쁜 여성은 ‘억압받지 않는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회 현상이 흔히 ‘원조 교제’라 일컫는 청소년 성 매수다. 청소년 성 매수는 ‘나이가 어림’이라는 여성적 자원과 나이가 들면서 뒤따르는 ‘돈’이라는 남성적 자원의 교환이다. 언뜻 보면 평등한 교환이요 합의된 거래지만, 성 인지적 관점(Gender Perspec-tive)에서 보면 차별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자원과 남성의 자원은 동등하게 평가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적 자원’인 몸은 나이듦에 따라 소멸하는 유한한 자원이지만, ‘남성적 자원’인 부와 권력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나이에 따라서 가치가 상실되지는 않는다.
‘연상의 여인’이라는 말은 있지만, ‘연상의 남성’이라는 말은 없다. 남녀 관계에서 남성이 연상인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남성이 나이가 많은 경우는, 20년, 30년 연상이라 해도 크게 문제시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 차가 많은 젊은 여성을 파트너로 두는 것은 남성의 권력을 상징하며, 세간의(남성들의) 부러움을 산다. 그러나 여성이 연상인 경우, 주변 사람들은 불편해하거나 지나친 호기심을 보이며, 차이가 많은 경우에는 윤리적인 차원에서 ‘불륜’(혹은 변태, 엽기)으로 단죄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남성은 일생을 걸쳐 남성으로 산다. 남자 아기 첫돌 사진의 이른 바, ‘고추 전시’를 보라. 이런 사진관 풍경은 지금도 익숙하다. 성폭력 가해자 중에도 70대 남성은 흔하다. 남성은 1세부터 70세까지 모두 남자로 간주된다. 그러나 여성은 특정 연령층에만 여성으로 여겨지며, 나이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아줌마’는 ‘제3성’이란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Female)이 여성(Woman)으로 간주되는 시기는 매우 짧다. 15세 소년은 남성으로 여겨지지도 않고, 남성의 20대를 절정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남성의 20대는 준비 기간이다. 그러나 여성은 15세 정도부터 이미 성적 대상이 되며, 대략 25세 정도까지가 그 ‘절정’으로 여겨진다. 그 나이 이후의 여성들은 화장술과 외모 관리에 따라 개인차는 있겠지만, 늘어가는 나이로 인해 유형·무형의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남성은 평생을 남성으로 살기 때문에, 나이듦으로 인한 남성성 상실을 여성보다는 덜 고민한다. 여성들에게 나이듦은 곧 여성성 상실로 인식된다. 남자 배우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혁명가부터 깡패까지 모든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여자 배우의 역할은 대개 어머니, 아내, 거리의 여자 등 여성의 성역할로 제한되어 있다. 남자 배우는 마흔이 넘어서도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되지만, 여자 배우가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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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나이듦의 의미는 성별에 따라 다르다. 여성의 나이는 사적인 영역이라고 불리는 성과 사랑, 가족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노동 시장에서도 중요한 고용 기준이 된다. 여성의 나이(섹슈얼리티)는 노동자로서의 조건, 자원으로 간주된다. 현재 20대 미혼 여성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행사 도우미’ 같은 판매 서비스, 대인 서비스직은 가사노동과 유사한 단순 노동이라고 간주되면서도 젊음과 외모를 중요한 노동 요소로 요구한다. 여성들이 종사하는 직업은 대개 성애화(Sexualized)되어 있거나, 업무와 관련 없는 부분에서도 성적 서비스를 강요받는다. 여성에게 외모는 생존의 조건인 것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젊고, 예쁘고, 마른’ 여성의 몸은 자원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를 억압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모든 여성이 그렇게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상태가 영원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여성의 가치가 나이에 따른 몸의 상태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지배적인 몸 이미지는 경제 활동이나 연애, 결혼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여성들을 감시, 규율하고 있다. ‘몸짱 아줌마’ 신드롬에 대해 내게 의견을 묻는 이들이 많은데, 나는 여성들이 자기애와 자기 긍정 차원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몸을 갖추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몸이, 미디어에 의해 모든 여성의 기준(Standard)으로 제시되면서, 나를 포함하여 평범한 사람들을 일상적인 스트레스 상태로 몰아넣는다는 데에 있다. ‘몸짱’ 이미지가 늘 나의 몸에 대한 비교 근거가 되면서, 자아 개념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감정적인 차원에서부터 취업 등 구체적인 제도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몸과 나이 듦에 대해 단일한 해석 체계를 가지고 있다. 나이듦과 몸으로 인한 고민에서 자유로운 여성들은 거의 없다. 남들이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만족하는 여성들은 드물다.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적인 사회적 시선과 검열을 깊이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고도로 조직화된 조용한 폭력이 아닐까? 나의 자아 존중감을 위협하는 ‘이미지의 폭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다른 세계관을 모색함으로서 그러한 권력을 상대화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다른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상, 다음 호에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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