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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시리즈 「X 파일」의 중요한 인기 비결은 남녀 주인공이 애인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언제 키스할까?’를 기다리며 계속 「X 파일」을 보게 된다. 두 남녀가 키스하고 사랑에 빠진다면, 그 때부터 드라마는 ‘X 파일’이 아니라 ‘연애 파일’이 될 것이다. 제작진과 시청자 모두 이같은 ‘공공연한 비밀’을 공유한다. 이성애 제도에 기반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동료’이거나 ‘경쟁자’이거나 ‘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동료나 적은 공적 영역에서의 관계이다. 남녀 관계의 최종, 최우선 목표는 언제나 사적 영역이라고 간주되는 ‘사랑’이며,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질 것이 기대된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사적 영역의 관계가 더 본질적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남성과 여성이 연애 관계에 들어서면, 두 사람은 개인과 개인이라는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된다는 데 있다. 남성과 여성에게 성과 사랑의 의미는 같지 않다. 연애 관계에 있는 남녀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역할과 압력 역시 그들의 성별에 따라 크게 다르다. 여성은 아무리 공적 영역에서 노동하고 있어도 사적인 존재로 간주되기 쉽다. 성희롱, 특히 직장 내 성희롱은 남성이 여성을 사적인 존재로 환원할 때 발생한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동료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거나 엉덩이를 만지는 등의 행위는 그녀를 동료가 아니라 ‘여자’로 보기 때문이다. 남성들에게 사적 영역이란, ‘쉬는 곳’(가정)이나 ‘노는 곳’(유흥업소)을 의미하는데, 이는 ‘어머니와 창녀’라는 여성에 대한 이분화로 연결된다. 남성 문화는 여성이 본래 있어야 할 자리는 가정이라고 보기 때문에, 개별 남성들은 집 밖으로 나와 공적인 영역에서 일하는 여성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훼손된 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은 ‘애인’이거나 ‘어머니’이지, 남성의 동료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남성들끼리 연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오가는 얘기는 ‘(여자와) 어디까지 갔냐’일 것이다. 손잡기, 키스, 애무, 성(교)관계…, 섹스‘까지’ 했다면 흔히 ‘갈 데까지 갔다’고 말한다. 갈 데까지 갔다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대개 남성들은 남녀 관계의 진도를 대화나 가치관의 공유라기보다는 상대 여성의 몸에 어디까지 ‘도달’했는가를 중심으로 사고한다. 물론, 이것은 남성의 본능이 아니라 철저히 사회·문화적 학습의 결과이다. 섹스가 남녀 관계의 종착역이라면, 섹스 이후 두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나? 종착역에서는 버스에서 내리거나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가부장제 사회의 의미 체계에서, 갈아타는 사람은 남성이고 여성은 ‘버스’로 간주된다. 누가 상처받을까? “만약 내게 사랑을 고백하는 익명의 카드가 온다면, 이걸 애인이나 남편에게 말하겠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여성과 남성의 반응은 다르다. 여성들은 대개 익명의 카드를 파트너가 보낸 깜짝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남성은 모르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고 여긴다. 여성은 남성에게 “언제 이런 로맨틱한 카드를 보냈어?”라고 묻고, 남자는 행여나 여자가 그 카드를 볼까 몰래 숨긴다. 그 뿐일까? 남자는 익명의 여인에게서 다시 연락이 오면 반드시 만날 것이다. 물론, 새로운 사랑을 위해서. 그렇다면, 여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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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성에게 섹스는 (당연히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하거나 못하는 것이지만, 여성에게 섹스는 좋거나 싫은 것이다. 여성에게는 남성과 다른(차별적인) 규범이 적용된다. 여성이 섹스를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섹스를 잘 하거나 못할 때, 그녀에게는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자, ‘걸레’라는 낙인과 추방이 기다린다. 남성이 ‘더럽다’고 간주되는 경우는 그야말로, 몸을 씻지 않아서거나 돈이나 권력 투쟁에서의 부정부패 때문이지, 섹스로 인한 규정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에게 ‘더럽다’는 의미는, 대개 성적인 측면이 연상된다. 남성 권력의 징표 중 하나는 성이다. 남성에게 섹스는 그의 사회적 능력의 검증대로서 ‘다다익선’이지만, 여성에게 섹스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권력과 자원을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은 여성과 섹스를 한다(‘가질 수 있다’). 반면, 가난하고 권력 이 없는 남성들은 한 여성을 다른 남성과 공유한다. 계급과 섹스의 관계는 성별에 따라 정반대로 나타난다. 여성은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한 명의 남성하고만 섹스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많은 남성을 상대해야 한다. 성매매와 성폭력은 이처럼 성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른 상황으로부터 생기는 성차별적 현상들이다. 성폭력 상담을 하다보면, 남성과 여성이 얼마나 다른 언어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절감하게 된다. 남성은 여성의 ‘No’를 ‘No’로 받아들이지 않고, 여성은 남성이 자기 말을 알아들을 것이라 기대한다. 남성들에게 성과 폭력(‘박진감’, ‘거친’, ‘짜릿한’…)은 분리되지 않는다. 남성은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성욕이 생기지만, 분노했을 때 성욕구가 일어나는 여성은 거의 없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가 남성의 입장에서 해석된다는 데 있다. 남성은 성폭력 상황에서 여성의 목숨을 건 격렬한 저항을 자극으로 이해하고 수용한다. 가정폭력의 경우,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들은 자기가 아내를 ‘힘들게 가르쳤다’고 생각하고, 아내에 대한 폭력을 남편의 성역할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가해자인 남편은 ‘부부 싸움 후 섹스로 화해’했다고 만족하지만, 피해자인 아내는 ‘구타 후 강간’당했다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여학교 근처에는 소위 ‘슈퍼맨’(남성 성기 노출자를 가리키는 여성들 사이의 은어)들이 상주한다. ‘슈퍼맨’들은 자신의 성기가 여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여성은 남성의 벗은 몸을 보고 공포를 느끼지만, 남성에게 여성의 벗은 몸은 쾌락의 대상이다. 남성은 돈을 지불하면서 여성의 몸을 즐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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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성기 노출(flashing)과 스트립쇼의 차이다. 물론, 극소수 여성들도 ‘호스트 바’ 등지에서 남성의 벗은 몸을 즐기고 산다. 그러나 산업 규모에서 볼 때 그것은 비교할 바가 못 되며, 가장 중요한 차이는 여성이 ‘호스트 바’에 갈 때는 혼자 가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여성이 돈을 지불하면서 남성의 몸을 볼 때, 구매자인 여성은 판매자인 남성과의 개인적 성별 위계를 상쇄하기 위해 집단을 이루어 가는 경우가 많다. 여성과 남성의 이같은 ‘차이’에 좌절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여성의 경험과 인식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남성의 생각이 곧 인간의 생각으로 간주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가해자가 되기를 바라는 남성은 없을 것이다. 여성들에 의해 잠재적인 성폭력 범죄자로 취급받고 싶은 남성도 없을 것이다. 남성 문화와 여성 문화가 동일하게 학습되고 상호 존중되어야 여성들은 남성과의 차이로부터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지금처럼 남성의 목소리가 일방적이고 유일한 것일 때 즉,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가시화되지 않을 때 남녀 모두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실패하기 쉽다. 남성 문화와 여성 문화가 동일하게 학습되고 상호 존중되어야 여성들은 남성과의 차이로부터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지금처럼, 남성의 목소리가 일방적이고 유일한 것일 때 즉,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가시화되지 않을 때 남녀 모두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실패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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