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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

''착한 여자는 천당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by eunic 2005.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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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국의 가구 구성 ‘현실’을 보자. 1인 가구가 15.5%, 부부 가구 14.8%, 어머니나 아버지 한 명과 자녀로 이루어진 ‘한(single) 부모’ 가구가 9.4%이다. 결혼하는 사람 100명 가운데 8명은 국제결혼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이혼율 3위국이다. 지난 34년 동안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는 일곱 배 증가했지만, 혼인 건수는 30% 이상 줄었다. 작년에 이혼한 부부 가운데 동거 기간이 20년 이상인 황혼 이혼 비중은 18.3%로, 23년 사이에 네 배나 증가했다. 여성 1인당 출산율은 1.15~1.17명으로 전 세계적으로 당대 최저이자, 근대 국민 국가 역사상 최저이다. 현재의 출산율이 지속될 경우, 2100년 한국의 인구는 1621만 명으로 감소된다. 한국은 2004년 말 현재 42만 명의 외국인이 취업하고 있는 유엔이 정한 이민 국가다. 그러나 위의 모든 수치는 ‘공식’ 통계이기 때문에, 실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특히, 이주 노동자는 100만 명을 훨씬 넘는다는 게 정설이다.
잘 살펴보면, 이 모든 변화의 ‘주범’은 여성들의 의식 변화이다. 이제 여성들은 더 이상, “엄마처럼 참고 살지 않는다.” ‘집안’ 일과 ‘바깥’ 일, 육아의 삼중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며, ‘현모양처 겸 커리어우먼’이 되라는 이중 메시지 사이에서 분열과 고통을 감수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이혼율이 가장 낮은 국가는 인도인데, 대신 인도는 기혼 여성의 자살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한국 여성들은 자살하느니 이혼을 선택하는,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 앞에서 가장 현실적이어야 할 국가 정책은, 여성들의 현실 인식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 대책이랍시고 정부가 내놓은 캠페인이 ‘1. 2. 3 운동’인데, 결혼 후 1년 이내에 임신해서 2명의 자녀를 30세 이전에 낳아 잘 기르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비현실적이기 그지없는 대책 없는 대책에, 결혼 후 1년 내 임신해서 2명의 자녀를 30살 이전에 낳아 기르면, 40세에는 파산한다며 모두들 비웃고 있다. 현실적으로 남녀 모두 30살 전후가 결혼 적령기로 자리를 잡고 있는 마당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운동을 하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박예랑, ‘드라마는 현실이다,’ 한겨레, 2005년 6월 16일)



대학과 시민단체 등지에서 여성학을 강의하다 보니 나를 ‘국가대표 페미니스트’로 생각하는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여성운동가, ‘꼴통 페미’에 대해 자신들이 평소 가졌던 모든 호기심과 ‘불만’을 펼쳐놓는 경우가 많다. 물론,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대부분이다. 내 주변만 봐도 실제로 그런 페미니스트는 그리 많지 않은데,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는 무조건 ‘말술에 줄담배’라고 생각한다(이는 개인의 기호일 뿐, 편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술, 담배를 전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실망’하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왜 안 하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음주·흡연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의료보험료를 두 배로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캐나다에서는 평등 정책의 일환으로 흡연·음주자는 보험료를 더 낸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평범한 주부이기도 한데, “당연히 싱글인 줄 알았다”며 또 놀란다. 한 마디로, ‘너도 사람이었냐’는 투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 호기심보다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경우는 “페미니즘이 옳긴 하지만, 시기상조다”라거나 “현실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 반대로 생각한다. 누가 나더러 여성주의를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착한 여자는 천당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는 말을 소개한다. “착한 여자만이 천당 갈 수 있다”가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생각이라면, 여성주의는 “나쁜 여자가 천당 간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주의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유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여성주의는 현모양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왜 현부양부(賢父良夫)라는 말은 없지?”라고 질문하는 사유 방식이다. 여성주의는 남성을 미워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이든 증오든 이제까지 남성에게 쏟았던 기운을 여성 자신에게 돌릴 것을 제안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우리나라 부모나 교사들 중에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리 보수적인 사람이라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기 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천당에 가기 위해 남자에게 순종하며 ‘착한 여자’로 살기보다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 있는 ‘나쁜 여자’로 살면서 어디든 가길 바란다.


페미니즘은 그렇게 거창하거나 ‘무서운’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잘 들리지 않았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는 것이다. ‘다른 목소리’는 혼란이 아니라 다양성과 창의성의 원천이다. 사람들도 소품종 대량 생산 사회보다 다품종 소량 생산 사회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은가. 초등학교 교실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5학년 남자 어린이가 별 악의 없이, 또래 여자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하느님이 나는 진흙으로 직접 만드시고, 여자는 내 갈비뼈로 만든 거 알아?” 그러자 두 명의 여자 어린이 말이 걸작이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근데 누가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니?”, “그러니까, 너는 질그릇이고 나는 본 차이나(bone china)네!” 여성주의는 남자 어린이의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 어린이들의 재치 있는 대응대로,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그러한 ‘다른 목소리’가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여성도 남성도 성장시킨다고 믿는다.
예전에는 똑똑한 여자, 자기 뜻대로 산 여자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한 사회 심리를 ‘나혜석 콤플렉스’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알려진 나혜석의 삶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 ‘현모양처 신사임당’도 같은 경우이다. 나이팅게일과 신사임당은 재능과 열정으로 뭉친 ‘권력 지향적’인 여성이었다. 그들은 당시 남성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협상했을 뿐이다. 나이팅게일은 크림 전투에 직접 참가하고 싶었지만, 사회의 성역할 고정관념 때문에 좌절되자 대신 간호 장교가 되었던 것 뿐이다. 신사임당은 자신의 학식과 예술성이 여성이라는 장벽에 막혀 빛을 보지 못하는 현실에 매우 분개했고, 그 ‘분풀이’로 임종 직전 남편에게 “내가 죽은 후 재혼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들 모두 ‘천사’와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멀다.
나혜석과 동시대에 삶을 마감한 화가 이중섭 역시, 말년에 가족과 헤어져 정신분열로 자해를 거듭하다 정신병원에서 홀로 죽었다. 그러나 이중섭의 죽음은 나혜석처럼 ‘시대를 앞서간 자의 당연한 말로’가 아니라, ‘위대한 화가의 치열한 예술혼’으로 여겨진다.

나혜석의 삶은 죽음으로 환원되었지만, 이중섭의 죽음은 삶으로 환원된다. 나는 나혜석의 삶이 행복했다고 본다. 그녀 자신도 그렇게 평가할 것이라 생각한다. 자기 시대의 지배 규범에 삶을 일치시키기를 거부한 여성은 가족에게 버림받고 노숙자가 되거나 정신병원에서 죽는다는 신화 ‘나혜석 콤플렉스’는, 잘못은 사회가 아니라 ‘똑똑한 여성’에게 있다는 가부장제 사회의 협박일 뿐이다. 여성들을 겁먹게 하는 것은 나혜석이 아니라 그녀에 대한 남성 사회의 해석이다. 대개 ‘위대한 여성들’에 대한 기존의 해석은 여성의 삶을 전유하고 싶은 남성의 시선, 욕망일 뿐, ‘역사적 실제’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살기 위해서, 현실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여성주의가 필요하다.



정희진

종교학과 여성학을 전공했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탈식민주의, 폭력, 인권,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연구하면서 여성학 강사,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