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스타일리스트' 대니 서를 보는 괴리감 | ||
[일다 2005-02-08 00:06] | ||
대니 서는 ‘에코 스타일리스트’가 됐다고 한다. 낯선 명함이다. 그러니까 맥락상 조합을 해보자면 ‘환경 친화적인 삶을 디자인하는 사람’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대니 서는 “더 이상 나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생활을 친환경적으로 꾸리는 것 역시 일상적으로 요구되는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화면을 계속 보고 있자니 내 예상과는 달리 뭔가 어색한 그림들이 튀어나왔다. 카메라는 으리으리한 저택에 살고 있는 대니 서의 집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사슴 뿔로 만들어진 듯 보이는 실내등 인테리어를 비춘다. “저건 사슴 뿔로 보이지만 플라스틱이에요.” 플라스틱으로 감쪽같이 사슴 뿔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놀라운 실험을 선보일 것처럼 한껏 긴장한 카메라를 향해 그는 중고가게에서 사온 LP판을 컵 위에 올려놓고 전자레인지에 녹이더니 다과를 놓을 수 있는 그릇이 됐다고 보여준다. 스웨터를 잘라 이어 붙여 세련된 느낌의 이불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이불 만들지 말고 그냥 입지’, ‘저 LP는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팔거나 주면 좋겠다’, ‘플라스틱도 환경오염의 주범인데’, ‘왜 꼭 사슴 뿔로 보여야 하지?’ 문득 대니 서가 하는 작업이 ‘특정 층’을 겨냥하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친환경적이라는 ‘의미’와 특이하고 새롭고 미적인 ‘스타일’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람들. 어찌 보면 그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환경에 다가서는 적절하고도 절충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가령 사슴 뿔을 전시해야 하는 욕구를 버리라고 타이르는 것이 아니라, 감쪽같이 사슴 뿔로 보이게 만드는 플라스틱 제품을 권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중고가게에서 LP판을 사다가 녹이는 것이 환경적으로 다가서지 못할 뿐 아니라 사치로 느껴질 수도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것’은 가진 자, 식자들의 자기만족 정도로 치부될 때가 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비싼 친환경 제품이며 웰빙 따질 때도 아니라는 식이다. 친환경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 도시에 염증을 느끼고 시골로 들어간 ‘식자들의 삶의 여유’ 정도로 왜곡되어 읽혀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는 흔히 환경문제는 멀리 있지 않다고, 모두의 삶과 직결된 전체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 모두의 문제여야 할 환경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왜 먹고 살기 바쁜 사람과는 거리가 있는 어떤 것으로 인식되어버린 것일까. ‘미래’와 ‘모두’를 생각하지 않고 눈앞의 특정인들의 이익에만 급급한 ‘개발 논리’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데 에코 스타일리스트로 변신한 대니 서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방식이 ‘환경문제 생각하는 건 사치’라는 고정관념을 더욱 공고화하는 여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가 들었다. 환경이슈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환경문제가 멀리 있다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나가는 것이 절실한 동시에, 그러한 관점과 접근이 환경운동가들의 실천에서 간과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일다'에 게재된 모든 저작물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옮기거나 표절해선 안 됩니다. ⓒ www.ildaro.com 여성주의 저널 '일다' 문이정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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