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털어놓는 것이 범죄행위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의 구조는 불평등하고 부당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죄가 되어 감옥을 가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모두가 공평하지 않겠느냐고, 무엇인가 새로운 아이템을 들고 나오는 것 자체가 불법이던 시절이 있었다. 오직 주는 것만 받아먹고, 주지 않으면 굶어서 죽거나 몰래몰래 도둑질이나 사기로 목숨을 부지해야 했던, 스스로 당당하게 무엇인가를 만들려 하거나 요구하면 절대로 안 되던, 대통령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기만 해도 끌려가서 얻어맞고 간첩이 되거나 최소한 벌금 몇푼의 즉심이라도 받아야만 했던, 그리하여 술자리에서조차도 스스로 혓바닥을 검열해야만 했던 처절하고도 비굴한 시절이 있었다.
이제 그 시절이 우리의 기억에서도 어지간히 잊혀져 가는 이즈음, 다음 번 대통령을 꿈꾸는 박근혜씨의 행보를 지켜보노라면 어이가 없다 못해 두렵다. 공포스럽다.
일제에 빌붙어 개인의 영달이나 취하던 세력과 자민족간의 이념대립으로 인한 갈등을 동일선상에 놓고 파악하는 그 사고력이, 그 사상이, 그 파시즘의 징후가 두렵다. 공포스럽다. 아니다. 사실은 박씨로 하여금 그런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놓게 하는 배후의 추종세력들이, 그들과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야만 하는 이 시대가 두렵다. 공포스럽다.
연세대의 유종호 교수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친일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그렇게 해서라도 민족의 생존을 끌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소위 친일파로 지목받는 사람들이 했을 수도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한다. 이것은 사실 유종호씨 개인의 독창적인 화법은 아니다. 생전의미당 서정주가 노래처럼 반복해온 말을 받아쓰기한 것일 뿐이다.
배가 고파 빵 하나를 훔쳐먹은 장발장의 선택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말할 수 있다. 그러나개인의 원한 때문에 살인을 취미로 삼아버린 유영철의 선택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지금, 이 세상 모든 살인행위와 부역행위를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면죄부를 주고자 한다. 만약 이 사람들의 주장이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지지를 받게 되면, 그 뒤에 오는 것은 뭐가 될려나?
오호라, 역사는 반복된다는 토인비의 견해가 하필이면 이런 방식으로 맞아떨어져야만 하는구나. 맞아떨어질 징후를 보이는구나.
경향블로그 papy555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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