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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일상속에 스며든 '악'의 꽃

by eunic 2005. 3. 2.

일상속에 스며든 '악'의 꽃

'유태인 말살정책 입안자' 아이히만
사형선고 37주년... 5·18, IMF '무책임' 에 경종

<홍윤기 이화여대 철학강사>

「범속」(Banal)하다는 사실, 즉 「아주 일상적이라 별다른 관심을 끌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편한 일이다. 적당히 고개를 돌리면 내 인생에 득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될 것도 없다. 히브리어로 정의관(正義館)이라는 뜻의 (베트 하미쉬파트)라는 건물에서 개정돼
지금으로부터 꼭 37년전인 1961년 12월 15일 사형선고로 결말이 난 예루살렘 지방법원 합의심에서 방탄유리로 둘러싸인 피고석에 앉은 사람은 바로 이런 범속한 인간 중의 한 명, 아돌프 아이히만이었다.
20세기 초의 대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 칼 야스퍼스에게서 동시에 애제자로 인정받은 여류철학자이자 그 자신 유태인이던 한나 아렌트(1906~75)는 직접 예루살렘으로 내려가 이 「아이히만 재판」을 방청하며 정교하게 재판의 전말과 피고의 인생을 추적한다. 63년 아이히만의 처형 직후 발간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치밀한 철학적 훈련과 고도의 감수성으로 포착한 문제의식으로 가득차 있다.
재판이란 통상 법적 기준에 비추어 「비상한 악행」을 저지른 인간을 상대로 한다. 여기서 피고석의 인간은 「혐의를 받은 만큼 악한」 인간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260쪽에 달하는 이 재판 방청기의 첫 두장은 양질의 칼제품 생산지로 유명한 졸링겐에서 출생한 이 평범한 독일인이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극악한 인간으로서 이 재판의 피고가 되리라고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던 「범속한」 인생기를 묘사한다.

직접 살인 안해도 범행 책임있을 땐 大罪

그야말로 평범한 가정의 4남 1녀 가운데 장남. 학교 성적이 형편없어 일찌감치 실업학교로 보내진 열등생. 일생동안 상관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 외엔 전혀 특출난 재능이 없던 소시민. 일하던 석유회사가 문을 닫은 뒤 독일 국적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살던 오스트리아를 떠나야 했던 실업자. 독일 국경 파사우에 발이 묶였을 때 엉겁결에 입대해 33년 8월부터 1년이상 지겨운 훈련을 받았던 평범한 독일 병사. 그러나 지루한 병영생활을 못견뎌 나치 보안대 자리가 나자 계모쪽에 유태계 인척이 있음에도 바로 그 때문에 유태인 전문가로 발탁된 행정가. 그러면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전혀 읽지 않은 나치 고위 공무원.
한나 아렌트는 자문한다. 죄책감은 전혀 없이 충실히 공무를 수행하고 아내를 사랑했으며,자신의 딸을 끔찍히 여긴 이 범속한 인간이 어떻게 「유태인 말살 정책의 기안자 및 실무책임자」로서 600만명의 유럽거주 유태인들을 한 줌의 재로 만든 악마가 될 수 있었는가.
1945년 5월 8일 독일이 패전하던 날 그가 받은 충격 역시 패전국의 고위관리로서 비장하기는커녕 평범하기 짝이 없다. 『이제 다시는 내게 지시하거나 명령할 상관도 없이 그저 개인으로서 어렵게 살아가야 하다니...』
1960년 5월 11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원에 납치돼 예루살렘 법정에 선 이 범속한 인간에게 『유태인민에 대한 범죄』『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등과 같은 거창한 죄목을 걸 근거나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
아이히만은 항변한다. 『그런 죄목이라면 나는 무죄다.』그 이유는? 『나는 내 손으로는 어떤 인간도 직접 죽인 적이 없으며 죽일 의도도 없었다.또 행정집행자로서 그 어떤 인간도 죽이라고 지목하거나 지목할 의도가 없었다.』이스라엘 검찰이 선임한 그의 변호사도 정교한 법률 이론으로 방어한다. 『살인죄라면 피고가 구체적으로 죽일 개인이 있어야 하고, 살인교사죄라면 구체적으로 죽일 개인이 지명되거나 그럴 의도가 입증되어야 한다. 단지 포괄적인 정책을 입안했다고 해서 그에게 범죄혐의를 들 수 있는가』
「개인」을 법주체로 명시한 계몽주의 이래의 근대법 원칙이 일순간에 흔들리다. 아이히만의 지휘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나치 비밀 경찰이 수백만명의 유태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집결시키고 처형한 것이 분명한데도.
아이히만은 말한다. 『내가 살인행위를 방조한 것은 인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신에게 죄를 지었다. 그러나 인간에게 죄를 지은 적은 없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직책에 있었다고 해도 유태인들의 운명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증거도 없지 않은가』이 말이 의미는 분명하다. 나를 재판하는 너희 유태교도 재판관들은 신인가. 그리고 내가 직접 하지도 않은 살인에 대해 나에게 사형을 인도할 것인가!

범속 그 자체가 악에 대한 감각 말살시켜

법정은 고심 끝에 이 죄책감 없는 인간에 대한 대항논리를 발견했다. 범죄에 대한 처벌에서 본질적인 것은 범행의 사실성이 아니라 그 범행에 대한 「책임성」이라는 것.
따라서 『책임성의 정도는 자신의 손으로 치명적인 도구를 사용한 이로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증가한다』
아이히만이 아니더라도 유태인에게 더 나은 운명은 없었을 것이라는 논변에 대해서도 대답은 단호했다.

『그가 기안한 유태인 말살 정책보다 더 극악한 발상은 있을 수 없다』항변력을 잃은 아이히만에겐 61년 12월 15일 사형이 언도됐다.
그것으로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범속한 인간이 악인으로 변모한 것일까.
그의 취조기록을 면밀히 검토하던 한나 아렌트에게 섬광같은 깨달음이 왔다.
아이히만이 자주 쓰던 말들은 자신의 깊은 심경토로까지 포함해 하나같이 독일 관청의 언어였다.
그는 자신에게 무한한 권위를 부여하던 이 언어에서 벗어난 어휘로 자신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여기에서 아렌트는 현대인이 극도의 사회적 분화속에서 어떤 한 영역에 갇혀 있을 때 빠지기 쉬운 운명적인 상황을 읽어냈다. 『말함에 있어서 드러난 아이히만의 무능력은 생각함의 무능력,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는 사고의 무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와는 어떤 의사소통도 불가능했다. 그가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존재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되고, 따라서 현실 그 자체로부터도 완전히 차단당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산다는 것, 즉 범속하다는 것 자체가 악에 대한 감각을 말살시켰다. 악행은 악의뿐 아니라 현대인의 삶의 양식 자체를 구조적인 원천으로 갖게 되었던 것이다.
작가 한수산씨는 여성동아 98년 12월호에서 그런 악의 범속성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자신이 격은 고문과정에서 발견했다. 『취조실이 여러 개 있는데 서로 왔다갔다 하면서 때려요... 한참 때리다가 「야, 나 오늘 결혼식장에 가야 하는데 요새 부주는 얼마나 해야되냐」하며 결혼식장에 갔다와요』
광주에서는 날아간 총알은 있는데 총을 쏘거나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사람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민주화됐다던 문민정부에서도, 국민은 IMF사태로 길거리에 나자빠지는데 누구도 잘못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산다고 한다. 외면하면 된다고 한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다는데도, 괜찮다는데도, 왜 우리에게 불편함이나 불쾌함은 커져만 가는걸까.
<출처 News +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