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결에 빼어든 책이 읽어보니 너무 괜찮았던 경우가 여러번 있었는데 만화책에서는 키리코 나나난의 <호박과 마요네즈>, 그리고 <춘몽>이 있었다.
나는 만화방 라면이 분식점 라면보다 맛있고 좋아 만화방을 자주 간다. 대전은 물가가 아주 싸서 1500원으로 맛있는 깍두기에 밥에 환상적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라면삶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 있다.
그곳을 좋아해서 그 집에서 내가 읽을만한 책을 다 읽어서 다시 라면에 만두를 넣어 끓여주고는 1500원을 받는 집을 뚫었다. 그곳도 이제 읽을 것이 바닥이 나서 냄비라면을 끓여주는 곳을 가게 됐는데 이제 더이상 읽을 책도없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다 붓을 꺽었는지 신간이 나오지 않는 때였다.
그래서 라면을 시키기 위해 책은 읽어야 하겠고 해서한 30분을고른끝에 배수아의 소설을 만화로 옮긴 '안나'와 일본소설을 만화로
옮긴 <춘몽>을 선택했다. 그때 한창 다모폐인인지라 아저씨에게<다모>랑 <올드보이>나왔냐고 칭얼댔던 기억이 난다.
<춘몽>에 나오는 한 인물은 아버지는불의의 사고로, 어머니는 병으로, 자신은 심장판막증을 앓고 있어 어느 순간 죽을지 알 수 없는재수 옴붙은사람이다.
그는 주인공에게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불평등하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고는 갑자기 주인공에게 담배갑을 던진다.
당황한 얼굴의 주인공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왜 담뱃갑이 너에게 날아들었겠니? 내가 던졌으니까 그렇지.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가 있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태어나기 전의 어떤 일이 원인이 되어 우리는 이런 삶을 사는거야. 다만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그는 이어 "이 생의 고통이 다음 생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 이 생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거지."
그 말이 처음엔 아주 그럴듯해 보여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사람의 말은 그러니까 현세에 덕을 쌓으면, 내세에는, 다음 생에는 복을 얻어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현세의 삶을 긍정적이고 희망차게 살아가자는 거 아닌가.
그리고 현재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 말인가?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런 말도 된다. 계급사회와 사회적 불평등을 인정하게 하는 고도의 논리일 수도 있다.
천국에 가기 보다 지금 사는 세상이 천국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투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들릴까?
이문열이 쓴 <사람의 아들>에서 민요섭은 "저 먼 미래를 기다리기보다는 한사람이라도 구제하는 게 더 나을것 같다"며 부모의 돈을, 부자의 돈을 훔쳐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었다.
전생의 업보로 인한 이 생의 고달픔을 인정하고 다음생에 반전을 꾀하자는 <춘몽>의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