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기차를 타고 집에 내려가는 길,
아이 둘을 데리고 탄 남자가 있었다.
그가 의자를 돌려앉았기때문에, 나는 그의 얼굴을 어쩔 수 없이 보고 있었다.
그다지 젊어보이지 않은 외모인 그는 몸이 작고,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상한 아버지의 역할을 정말 열심히 해내고 있었다.
의자에 한 아이는 누이고, 앉아있는 한 아이에게는 얼굴도 쓰다듬어 주고, 먹을 것도 주면서 미소를 은근히 띤 얼굴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결혼전부터 아니 연애할 때부터 자상한 아버지의 얼굴과 품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또다른 남자, 종착역에 다다른 그는 젊은 남자였다.
젖먹이 아이를 품에 안은 그의 얼굴은 잔뜩 찌뿌려져 있었다.
그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았음에도, 아버지가 되지 못한 사람일거라고.
(너무 짧은 시간이라 판단이 잘못됐을지도 모르지만, 이해심이나 세심한 사람같아 보이진 않았다.)
여자들이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는 이유중의 하나는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유부남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상하고, 아내를 끔찍히 사랑하는 모습이
멋있어서 또, 그가 나에게도 똑같이 남편과 아빠의 역할을 수행해낼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까 유부남은 확인을 마친 사람인 것이다.
자라면서 아버지의 사랑이 부재한 사람이나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아온 사람에게는
가정에 충실한 유부남은 못받은 사랑을 보충하거나 받은 사랑을 계속 받고 싶어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귀고 싶은 남자를 만났을때나는 늘 상대방의 얼굴과 행동에서이런 모습들을 상상해본다.
자상한 아빠의 모습, 사랑스러운 남편의 모습, 듬직한 사위의 모습을....
설마 총각일까 싶을 정도로 아저씨가 가질 수 있는 악덕만을 몸에 지닌 총각들을 지칭하는 설총(설마 총각일까의 줄임말)만이 드글대고 좋은 남자다 싶으면 다 유부남인 주위환경을 한탄하는많은 여자들의하소연이 들리지 않는가.
은닉의 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