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주관으로 7월 한달간 서울 하월곡동에서 진행된 ‘최저생계비로 한달 나기’행사는 ‘실패’로 끝난 모양이다. 36만원을 받은 1인가구부터 105만원이 책정된 4인가구에 이르기까지, 행사에 참가한 다섯가구의 한달 살림은 한결같이 적자였다. 식비를 아끼려고 매일같이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장을 볼 때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손에 쥐었다 놓았다 하면서 보낸 알뜰한 한달이었다는데 결과는 그랬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이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신문·방송·인터넷 매체들이 행사 시작전부터 끝날 때까지 생중계하듯 참가자들에게 매달려 그들의 세세한 일상을 소개했다. 국회의원과 교수등 사회 유력인사들이 릴레이식으로 하루체험 일정에 참여했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도 다녀갔다.
추상적인 논의에 머물던 최저생계비 문제를 생동감있게 실제상황으로 접근한 방식은 참신해 보였다. 거기에 엿보기 심리까지 유발해 일반시민들도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금의 최저생계비로는 적자살림이 불가피하다는 ‘결론’도 이끌어 냈다. 그렇다면 주최측으로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인터넷에는 참가자의 눈물겨운 고투를 격려하는 의견 못지않게 냉소적인 반응들이 적지않게 쏟아졌다. “아이 몸이 불편하다고 차 끌고다니고, 그것도 부족해 외식까지….” “놀고먹는 처지에 남 하는 것 다하면서 살려고 하나?”
특히 매일 공개되는 가계부에 3000원짜리 헤어젤이 구입품목으로 올랐을 때, 4인가족이 처음으로 1만원 어치 삼겹살을 사다먹은 얘기를 썼을 때, 할인점에서 9000원짜리 아이용 퍼즐을 만지작거리다 왔다고 했을 때는 “사치스럽다”는 반응들이 터져나왔다. 참가자들은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최저생계비에 대해서는 몇가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행사 참가자들에게 지급된 최저생계비는 실 지출금액이 아니다. 실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에게는 이런저런 명목으로 일부를 떼고 준다. 1인가구는 31만원, 4인가구는 93만원 정도만이 현금으로 전달될 뿐이다. 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달이니까 버텼다”고 했다. 더 적은 돈으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벗어날 ‘시한’도 없다.
최저생계비는 가외로 주는 ‘용돈’이 아니다. 수급자라도 노동능력이 있으면 자활사업 등에 나가 일을 해야 한다. 거기서 받은 임금과 최저생계비의 차액만을 받게 된다. 놀고 먹으면서 받을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그렇다면 최저생계비는 적정한가. 이번 행사 결과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이라도 받았으면…”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최저생계비를 못받는 차상위 빈곤층,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대상에서 제외되는 노인들, 그리고 신용불량자와 실업자들이다. 현재 수급자는 140만명 정도지만 광의의 빈곤층은 800만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이들 눈에는 행사 참가자들의 씀씀이가 커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저생계비는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생활하는’ 기준이 아니다. 근거법인 국민기초생활보호법에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돼있다. 말하자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최저선에 대한 사회적 합의인 것이다.
그러나 하위계층의 삶을 보는 사회 일부의 시각은 뒤틀려 있다.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는 사람은 밥만 먹고 살라는 투로 얘기한다. 판단기준은 70, 80년대의 판자촌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도 가끔은 삼겹살도 먹고, 젤도 바르고, 아이들 장난감도 사주고, 휴대전화를 쓰면서 살아가는 이웃이다. 우리사회의 소득 하위 30%의 절반 가량은 이미 전자레인지, 침대, 컴퓨터,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
이번에 하루 체험행사에 동참했던 어느 인사는 하월곡동의 힘겨운 일상을 ‘시간이 정지된 삶’이라고 표현했다. 그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어려운 이웃을 보는 우리의 관점과 포용력도 30년전에서 꼼짝않고 정지 되어 있다.
김회평 / 논설위원/ 문화일보
농활을 갔을 때였다.
오전과 오후의 근로를 마치면 우리들은 마을의 집들을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쌀 개방이나 농촌생활의 힘든 점을 함께 나누기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농가방문을 끝내고 돌아온 농활대는 빚이 많다는 농민들의 집이 하나같이 새로 지은 집에 큰 텔레비젼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몇 명이 실망했다는 소리를 털어놨다.
나는 그때 "농사를 짓는 사람의 집은 깨끗하면 안되고 큰 텔레비젼이 있으면 안 되는거냐"고 말했다.
그러자 한 아이가 "돈 빌려다가 농사짓는데 안 쓰고, 다 이런 데에 쓰고 탕감해 달라고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나는 "너희 아빠는 회사 다녀서 너희 옷 사주고, 먹을 것 사고, 텔레비젼 사지 않느냐?" 며 "농사를 짓는 농부도 농사 지어서 번 돈으로 애들 옷도 사주고 그래야 하는데, 매번 빚만 지는 농사때문에 농사자금으로 생활비를 써야 하는 농촌의 현실도 고려해 주면 안되겠느냐"고 말했다.
농사를 지어 돈을 벌으면 다음 농사를 위한 씨앗 사고 비닐 사는데 다 들어가는 농사를 지어오신 우리 아빠를 보아왔기 때문일까.
살아온 환경 때문에 나는 그냥 쉽게 이해했다.
몇몇 꼼수를 쓰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그 몇사람 때문에 농촌의 현실이 잘못 인식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는 우리 아빠가 다른 농부들보다 재주도 없고, 집안 살림을 윤택하게 하는데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 서운함이 컸다.
아빠에게 '집'은 일이 끝나고 난 후 다음 체력을 위해 잠을 자는 공간이었을 뿐이었다.
국가의 보조를 받는 사람들은 깨끗하게 살고, 문화생활도 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농사꾼의 집이 지저분하고, 아궁이 불 때고, 푸세식 화장실에 개들이 이리저리 뛰놀지 않으면 이상한 풍경으로 생각되는 것일까?
아이들은 하염없이 아빠 주머니 생각않고 뭐 사달라고 조르는데 빚 갚을 생각에 하나도 사주지 못한 생활을 강요당해야 하는 것일까?
빚부터 갚아야 하고, 자립한 후에야 우리의 인간다움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일까?
국가보조를 받아도, 농사를 지어도 저소득계층, 농사꾼 이전에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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