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을 태워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녀에게 무등이란 걸어가기 싫은 길을 누가 대신 걸어는 것이 아니라
별로 인연이 없는 아버지의 모습같기도 하고,
집안일에서 벗어나 공부하던 시절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그녀에겐 공부를 잘한다고 학교 언니가 무등을 태워서 집에다 데려다 준 기억이 있다고 한다.
그녀
이제 쉰 살이 조금 넘었다.
그 지긋지긋한 가난과 전쟁의 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가끔씩 지금이라도 죽었으면 좋겠다 한다.
이제는 그녀의 한 부분같은 가난이 무척이나 견딜 수 없나보다.
그녀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총각김치를 이젠 칼같이 맛있게 담을 수 있는 자신감뿐이지,
삶의 여유로움이나 편안함을 주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한참은 내야하는 자식들의 학비, 생활비의 중압감,
고된 농사일속의 나날들은 그녀를 버겁게만 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고,
나에게라도 행복을 느꼈으면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그녀에게 착하고 말 잘듣는 딸도 못 되었지만
매일 무슨 사고라도 낼가봐 조바심 생기게 하는 딸이었다.
그러나 난 21살의 나이가 되어서도 매일 대들면서도
그녀가 기댈 수 있는 듬직한 자식이 되는 꿈은 버리지 않았다.
어느날이었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가 나에게 집안일을 얘기했다.
울먹이면서 말이다.
꼭 첫째딸을 시집보내야 하는 나이 지긋한 어머니가 아니라 12 살 꼬마 계집애가 되어서 말이다.
나는 이제 어쨌든 그녀에게 힘들면 하소연하는 대상이 된 것을 기뻐했다.
그녀의 전화가 대개는 슬픈 소식을 갖고 있어도
나는 그녀에게 힘이 되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언제나 긍정적으로 거짓말이라도 쳐가면서 암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내 존재가
비록 너무나도 진지하고 심각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언니들을
생각해서 얻어진 자리라 해도 행복하다.
내 과외비에서 그녀에게 떼어준 생활비로
나는 밥을 굶어야 하는데도 감사하고 뿌듯하다.
언제나 나에게 전화를 줌으로서 걱정을 나에게 주었으면 한다.
나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녀는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녀가 더 이상 죽는다는 말을 되뇌여서는 안되겠기에.
나는 분명히 느낀다.
그녀가 나보다도 이 세상에 남기를 원하고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
일요일이면 "사랑의 스튜디오"를 시청하고
컴퓨터로 자판 연습을 하고
무료 강좌가 있으면 뭐라도 배워놓고 싶은 마음에
가서 배우는 열렬한 삶의 신봉자의 모습을 나는 본다.
반면 21살의 나는 뭐 배우는 걸 싫어한다.
콤플렉스가 많기도 하지만 별별 이유를 들어서
특히 새로운 것을 적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알려고 하질 않는다.
그녀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가난과 전쟁이 다 채워놓았다고 말하곤 있지만
어쨋든 나보다도 삶에 의욕적이지 않은가.
곰곰히 생각하고 이번 추석에 달님께 빌었다.
나의 생을 그녀와 바꾸어 달라고.
내 생이 그리 좋은 것이라서, 행복한 것이라서는 아니지만,
사랑이 줄 수 있는 선물이 생명은 아니라했건만
시건방지게 나의 시간을 그녀에게 붙여주고 싶다.
지금도 그렇냐고 물어보신다면 .......
아 물론 지금도.
정말이냐고 묻는다면 ......
정말이예요. 달님.
그녀에게 무등이란 걸어가기 싫은 길을 누가 대신 걸어는 것이 아니라
별로 인연이 없는 아버지의 모습같기도 하고,
집안일에서 벗어나 공부하던 시절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그녀에겐 공부를 잘한다고 학교 언니가 무등을 태워서 집에다 데려다 준 기억이 있다고 한다.
그녀
이제 쉰 살이 조금 넘었다.
그 지긋지긋한 가난과 전쟁의 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가끔씩 지금이라도 죽었으면 좋겠다 한다.
이제는 그녀의 한 부분같은 가난이 무척이나 견딜 수 없나보다.
그녀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총각김치를 이젠 칼같이 맛있게 담을 수 있는 자신감뿐이지,
삶의 여유로움이나 편안함을 주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한참은 내야하는 자식들의 학비, 생활비의 중압감,
고된 농사일속의 나날들은 그녀를 버겁게만 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고,
나에게라도 행복을 느꼈으면 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그녀에게 착하고 말 잘듣는 딸도 못 되었지만
매일 무슨 사고라도 낼가봐 조바심 생기게 하는 딸이었다.
그러나 난 21살의 나이가 되어서도 매일 대들면서도
그녀가 기댈 수 있는 듬직한 자식이 되는 꿈은 버리지 않았다.
어느날이었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가 나에게 집안일을 얘기했다.
울먹이면서 말이다.
꼭 첫째딸을 시집보내야 하는 나이 지긋한 어머니가 아니라 12 살 꼬마 계집애가 되어서 말이다.
나는 이제 어쨌든 그녀에게 힘들면 하소연하는 대상이 된 것을 기뻐했다.
그녀의 전화가 대개는 슬픈 소식을 갖고 있어도
나는 그녀에게 힘이 되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언제나 긍정적으로 거짓말이라도 쳐가면서 암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내 존재가
비록 너무나도 진지하고 심각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언니들을
생각해서 얻어진 자리라 해도 행복하다.
내 과외비에서 그녀에게 떼어준 생활비로
나는 밥을 굶어야 하는데도 감사하고 뿌듯하다.
언제나 나에게 전화를 줌으로서 걱정을 나에게 주었으면 한다.
나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녀는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녀가 더 이상 죽는다는 말을 되뇌여서는 안되겠기에.
나는 분명히 느낀다.
그녀가 나보다도 이 세상에 남기를 원하고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
일요일이면 "사랑의 스튜디오"를 시청하고
컴퓨터로 자판 연습을 하고
무료 강좌가 있으면 뭐라도 배워놓고 싶은 마음에
가서 배우는 열렬한 삶의 신봉자의 모습을 나는 본다.
반면 21살의 나는 뭐 배우는 걸 싫어한다.
콤플렉스가 많기도 하지만 별별 이유를 들어서
특히 새로운 것을 적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알려고 하질 않는다.
그녀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가난과 전쟁이 다 채워놓았다고 말하곤 있지만
어쨋든 나보다도 삶에 의욕적이지 않은가.
곰곰히 생각하고 이번 추석에 달님께 빌었다.
나의 생을 그녀와 바꾸어 달라고.
내 생이 그리 좋은 것이라서, 행복한 것이라서는 아니지만,
사랑이 줄 수 있는 선물이 생명은 아니라했건만
시건방지게 나의 시간을 그녀에게 붙여주고 싶다.
지금도 그렇냐고 물어보신다면 .......
아 물론 지금도.
정말이냐고 묻는다면 ......
정말이예요. 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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