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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닉의 산문

늑돌이와 반돌이를 사유하다

by eunic 2005. 3. 1.
어느날 운송도중 늑대 한마리가 나무로 된 상자를 뚫고 산으로 도망쳤다.
기자는 나무가 뚫린 모습을 손으로 가리키며
주저리주저리 늑대가 언능 돌아와야 할 터인데 하면서 걱정스런 표정을 전한다.

늑대가 조금 후 무사히(?) 인간들의 손에 잡혔다.
해프닝으로 끝난 늑대에게 인간들은 고맙다는 듯이 '늑돌이'란 이름을 선사해준다.

인간들은 뭔가와 친해지면 (무생물이든 생물이든 )인간들의 방식과 언어로 이름을 부여한다.

반돌이
태어날 때 다른 동물과는 남다른 사명을 갖고 태어났기에
이름이 아주 빨리 부여됐다.
반돌이는 어느 정도 크면 숲에 방사해 동물의 특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하는 여느 동물원의 동물과는 다른 운명이었다.
그런 반돌이가 신호기를 떼고 도망쳐
사람들이 잡으러 오면 어떻게 도망쳐야 하는지 아는
날쌔고 똘똘한 야생의 곰의 모습을 비춰간다.
엄기영 앵커가 지리산 양봉농장에서 꿀을 훔쳐먹은 반돌이 소식을 전할때는
곰이 한 짓이 귀여운지 엷은 미소와 함께 전해준 기억이 난다.
그 후 반돌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사람들이 의견이 분분할때까지도
반돌이는 반돌이로 존재했었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반돌이가 그후 잡혔고 신호기를 달고 나서야사람들은 안전해짐을 느꼈다.
어떤 신문이 드디어 반돌이가 민가에 인간들에게 끼치는 피해에 대해서
'횡포' 점입가경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거기엔 반돌이란 이름이 사라져 있었다.
곰이란 이름으로.

인간에게 해를 줄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들면 언론은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다.
아니면 있는 이름표를 떼어버린다.
이제 친근했던 반돌이가 아닌 곰이 된 것을 슬퍼해야 할까?
아니다.
누구는 이름을 얻고, 누구는 이름을 잃는다.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들의 과도한 사랑, 관심을
독이 될수도 있고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고, 신경질나게 할 수도 있다.
내가 아주 먼 훗날
지리산 숲속에서 반돌이를 만났을 때

"반돌아"하고 부르면
뭔 소리지 하면서 자신의 한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정말 야생의 곰이 됐으면 좋겠다.
설령 인간인 날 본 순간 큼직한 덩치로 날 쫓아오며 위협하더라도.

내가 좀 더 어른이 된 세상에는 누구도 행복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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