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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닉의 산문

“저는 첫사랑과 결혼했어요”

by eunic 2005. 3. 1.

EBS 문학산책 <모텔 선인장>을 보고


“저는 첫사랑과 결혼했어요.”
주인공 여자가 한 말이다.
여자들이 이루기 힘들다는 그 소망을 이룬 그녀는 행운아이다.
사랑에서만큼은.
불같은 첫사랑의 연애엔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서툴러서인지 순수해서인지 육체의 사랑도 잘 허락한다.
그녀는 곧 공사장에 일하러 간 남편이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면서 행운과 불행은 같이 온다는 진리를 터득한다.
그녀는 식물인간 남편을 대신해 모텔 ‘선인장’의 청소원으로 일 나가게 된다.
그곳에서 원나잇스탠드 이든지 뭐든지간에 남들이 한 사랑의 흔적을 말끔히 치우는 일을 하는 그녀는 사랑이라는 것에 진저리쳐진다.
그토록 사랑해서 몸도 허락하고 눈에 콩꺼풀 덮여 결혼이란 것도 했으면서....
이제 그녀는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줬던 몸은 없고 정신밖에 없는 남편을 떠올리며 ‘첫사랑이 뭔 대수냐’고 읊조린다.
여기 한 사람. 그녀가 일하는 모텔의 사장은 밖에서는 ‘러브호텔 물러가라’는 동네주민의 데모에 안에서는 열악한 모텔환경에 항의하며 환불소동이 일어나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사장은 “우리집에서만 하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사랑은 어디가서 하라는 거냐”며 “사랑을 물레방앗간에서 하란 말이냐”를 습관적으로 내뱉는 사람이다.
그녀는 모텔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랑’이라 표현하는 사장도 웃음이 나지만 상황의 아이러니함에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열받은 사장앞에서 웃음보를 못참아 혼난 그녀는 사장을 피해 오랜만에 집에 들어간다.
여자는 육체는 없지만 사랑했던 기억, 정만 남아있는 남편방에 가서 갑자기 여러소리 말을 하며 남편에게 서운함을 전한다.
‘이제 편히 자’라며 고개를 돌려주던 그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남편의 눈에서 나오는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적신다.
몸은 없지만 어떻게든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해주고야만 남편을 그녀는 꼬옥 끌어안는다.
첫사랑, 젊은 나이에 육체로 하는 사랑을 잃어버린 그녀가 육체로만 ‘사랑(?)’을 하는 곳에서 일하는 아이러니.
육체를 갈구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저리쳐지는 그 상황속에서 그녀는 남편에게서 육체와는 다른 사랑을 받은 것이다.

교육방송에서 하는 문학산책에는 유명한 배우들이 연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을 토대로 해서 만드는 사실성에 한껏 다가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학산책을 보면 문장을 영상화하는 상상력을 느낄 수 있다. 한편으로는 소설을 읽다보면 어느 부분은 이 문장을 아무리 영상화한다 하여도 나레이션이나 대사로 표현한다해도 소설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게끔 하는 부분도 있다.
살아가는 동안 어떤날은 문학산책과 영화가 좋다가도 어느날은 소설이 주는 기쁨에 빠지는 날이 계속해서 교차될 것이다. 책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 마지막으로 난 문학산책을 보고 난 뒤 소설을 찾아 읽었는데 문학산책 말미에 작가가 말한 시어머니와 주인공 여자와의 애증관계, 죽이고 싶을만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그 관계에 대해서는 끝까지 느끼지 못했다. 이것이 나의 한계라고 인정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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