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해볼까요?
논산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저희 아빠는 경력 수십년의 베테랑 (?)농사꾼입니다. 베테랑 농사꾼이라 하기엔 빚만 얹는 농사만 해오신지 오래이고 해마다 작목법을 바꿔보는 게 취미인 실험가 기질을 가지신 분이시죠.
실험가 기질이라기보다는 귀가 얇아 남의 조언을 다 실행해보시는 분이 더 맞을 겝니다.
아버진 어렸을 때부터 딸 다섯과 당신의 하나뿐인 막내아들을 주말이면 밭으로, 과수원으로 데리고 가 열매 솎아주기, 호박 줄 맞추기를 시키시곤 하셨죠.
저희들은 무척 투덜댔고요. 부지런하고 거짓을 몰랐던 저의 아버지가 할 있었던 일은 아마 농사밖에 없을 것이라고 모진 생각도 했었지요.
'떼돈도 벌지 못하는 농사하면서 식구들 죄다 부려먹네'하는 악한 마음도 욱하던 청소년기에는 치밀어오르기 일쑤였지요.
아빠는 할 수 있는게 농사밖에 없다는 생각도 했지만 어느새 저는 알았어요.
농사만큼멋진 일이 없다는 걸 말이죠. 그리고 저희 아빠는 농사를 사랑하고 있음을 말이죠.
저희 아빠는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나 몇년간의 회사생활을빼면 쉰여덟의 삶중에서 거의 대부분을 자연과 함께 농부로서 살아오신 분이었다는 사실을 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왔었습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오셨을때 저희 형제들은 작당모의를 하고 모진 소리를 좀 했습니다.
엄마, 아빠 몸 좀 살펴가시면서 사시라구 그러니 농사 그만 좀 지으시라구요.
아버지는 일전에 과수원 판 돈으로 씨앗값과 비닐을 사겠다는데 엄마가 돈을 주지 않는다며 저희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신 것이었는데 말이죠.
영화 '선택'에서 장기수 아버지의 맘을 돌리려 딸아이의 편지를 낭독하는 목소리가 감방안으로 들려오는 장면에서 그러죠.
"아버지, 당신을 이해할 순 없지만 사랑합니다"라는 대사 말입니다.저도 그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씨앗의 원천적인 문제에, 병해에, 가격폭락에 번번이 실패해 빚만 지는데도 무슨 신념마냥 농사를 짓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농사지만 번번이 빚만 안겨주는 농사가 아버지에겐 그 일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고, 살아가게 함을 몰랐으니까요.
농사를 짓는 이런 마음을 모르는 사람중에는 중국에 핸드폰 팔아 유럽에 차 팔아 남는 이익으로 보조해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간단히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농사, 아버지를 아버지로서 존재하게 해줬던 그 농사를 그만두고 정부가 주는 보조금으로 땅을 놀리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누군가의 꿈을. 행복을 빼앗는 생각이라는 것을 모르셨겠지요.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일년도 안되는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자신이 해서 결실을 맺어야 하는 농사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큰 현대사회속에서 작은 나사 따위의 부속품이 돼 닳아간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어쩔 수 없는 그 아버지의 그 딸인가 싶습니다.
아버진 우리의 모진 말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딱 한번만 기회를 줬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침 7시면 밭에 가서 껌껌해지면 들어오는 그 부지런함과 정성에도 불구하고 저희에게 아버지는 도박으로 돈을 날린 사람만틈 추궁당해야만 했습니다.
아니 그 노력에 따른 결과가 너무 초라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변해버린 것이라고 해야겠지요.
FTA안건이 국회에7:8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상정된 날,
그야말로 성난 농민들의 모습속에서 생각나는 사람 하나가 있었습니다. 나의 아버지....
제도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고 정말 좋아서 하는 농사 짓고 싶어했던 그 사람이 왜 이렇게 생각나던지... 그를 대신해서 경운기에 기름 끼얹고 국회로 돌진하고싶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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