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도서관 희망의 인터뷰
하나, 정희진을 만나다
- 학생운동, 여성학, 그리고 탈식민주의
정희진을 만나다
- 학생운동, 여성학, 그리고 탈식민주의
2004년 10월/통권 2호
기획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
정희진(out67@chol.com)
서강대, 서울시립대 강사(여성학/여성주의 인식론, 섹슈얼리티 전공).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자문위원,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전문위원, 서울시 지정 여성학 전문 강사,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자문위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자문위원. 저서에『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가정폭력과 여성인권』,『성폭력을 다시 쓴다 - 객관성, 여성운동, 인권』(편저),『한국여성인권운동사』(편저),『탈영자들의 기념비 - 한국사회의 성과 속, 주류라는 신화』(공저)『월경 越境하는 지식의 모험자들』(공저) 등이 있다. 근대성과 젠더, 제도화와 여성운동, 사회운동의 성별성과 위계 구조, 국가폭력과 젠더, 고통의 언어화, 여성주의 심리 상담, 민족주의와 평화운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9월 12일 일요일 오후, 이대 앞 ‘가곡’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생활도서관(이하 생도) :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선생님의 근황이나 요즘 관심을 갖고 계신 문제들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정희진(이하 희진) : ‘이영훈 교수 사건’ 있잖아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그 사건을 보고 굉장히 절망했거든요. 어떤 사안들은 찬성/반대로 접근하면 곤란하잖아요. 사안 자체에 대해서 우리가 더 고민하거나 그 사안이 구성된 관점을 검토한다거나, 이런 게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냥 찬성 반대로 가면, 오히려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지거든요.
저는 이번 이영훈 교수 사건이 한국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준,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주변에는 이영훈 교수 ‘팬클럽’이 있을 정도인데, 그 프로 혹시 보셨어요? 저는 이영훈 교수가 한나라당 패널로 나온 게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이영훈 교수가 강조한 것은, 지금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친일 청산 담론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그의 입장에 100퍼센트 동의를 해요. 이영훈 교수의 요지는 정신대 문제가 한국과 일본 간의 민족 모순이라는 측면도 크지만, 한국 내부의 모순도 있다는 거잖아요. 한국인 내부에서도 주로 ‘가난한’ ‘여성’들이 끌려갔잖아요? 그러니까 조선 내부의 억압이 있는 거잖아요. 이 교수는 이 점을 강조한 건데, 이러한 지적이 곧바로 친일을 옹호하는 것처럼 간주되었죠.
그런 상황에서는 친일이냐 아니냐만 있지, 다른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사회에서 논쟁하는 방식을 보면 말이에요. 물론 저도 친일을 반대하죠. 제 이야기는 제 3의 시각이라든가 제 3의 정치적 전선이 형성되기 굉장히 어렵고, 다른 목소리를 낸 사람은 여론 재판 식으로 매장되기 쉽다는 겁니다. 저는 좌/우파, 진보/보수라는 기존의 정치적 전선 자체를 문제 제기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글은 지난 9월 17일(금) 한겨레신문에 실린 정희진씨의 칼럼 < ‘100분 토론’을 다시 생각한다 >를 참고하세요).
관념적 학생운동과 또 다른 파시즘
생도: 사회적으로 어수선했던 시기인 80년대 후반 대학에 들어가셨는데요, 우선 당시 대학가의 분위기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희진: 누구나 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과장되게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저는 서강대 종교학과 86학번이에요. 당시 종교학과, 철학과, 사학과 이런 데는 모두 다 ‘운동권’이었죠(웃음).
그러니까 그때 분위기가 어땠냐면, 서강대학교는 부전공 제도가 있어요. 부전공을 해야지 졸업을 해요. 그런데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이 부전공을 다 정외나 사회학과를 해야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 욕을 먹는 분위기 있잖아요.
그러니까 보통 화학과 친구들은 부전공을 화공학을 하는데, 화학과 애들이 다 정외를 하는 거예요.
자기가 다른 개인적인 관심사를 보이면 다 반동적이 되는 분위기 있잖아요. 그리고 학점이 좋은 것도 굉장히 반동적인 분위기... 저는 6년 만에 졸업했는데, 졸업한 것도 죄의식을 가졌거든요.
그 당시에는 그랬어요. 지금의 관점에서는 약간 이해하기 힘든 건데... 어떤 면에서, 학생운동을 빙자한 약간 자기 파괴적이랄까... 그런 식의 분위기가 되게 강했고... 러시아 혁명사를 줄줄 외우고 뭐... 그랬죠.
지금 저는 저의 20대를 굉장히 후회합니다. 당시 모든 대학생들이 그렇진 않았겠지만, 제 주변에서는 학생운동의 분위기가 굉장히 팽배했었고. 뭐, 여성문제나 이런 것은 말도 꺼내지 못하는... 파시즘에 반대하지만 또 다른 파시즘이 존재한 거죠.
저는 별로 대학 시절을 좋게 추억하지 않고, 학생운동을 하면서 굉장히 상처가 많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가 졸업한 이후로 10년 동안은 서강대 근처에 가질 않았어요.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일은, 제가 86년 9월 아시안 게임 반대 투쟁을 하다가 1학년 때 인천경찰서에 잡혀갔었거든요. 4일 동안 구류를 살고 나왔는데, 그때 저를 취조한 형사가 “권인숙이가 폭로를 했으니까 내가 너를 못 건드리는 것 뿐”이라며, “너는 권인숙이한테 고마워해야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해 8월, 권인숙씨의 성폭력 사건 폭로가 있었어요. 제가 그 때 19살이었는데, 그 형사의 눈빛을 잊지 못해요. 그러니까 권인숙 사건 이전에도 그런 일들이 굉장히 많았던 거죠. <한국여성인권운동사>?라는 책을 보면 그런 사례가 많이 나와요.
(주- 권인숙씨 성폭력 사건 폭로: 1986년 6월 위장취업을 위해 주민등록증을 위조했다는 혐의로 부천경찰서에 연행된 권인숙씨에게 가해진 성고문이 폭로된 사건. 당시 공권력에 의해 여성운동가들에게 일상적으로 자행되던 성고문 관행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여성인권운동사, 한국여성의전화연합,한울,1999
이 책은 한국여성인권운동의 이론적, 실천적 지평을 넒히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어 각 분야의 여성운동의 성과를 1980-90년대를 중심으로 기술하였다.
생도: 80년대는 NL/CA 라든지 NL/PD 논쟁등도 치열했었고 학생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였는데, 당시 대학생으로서 그것을 어떻게 보셨는지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주- NL/CA: 86년 들어 학생운동권에 새로이 등장한 ‘반제그룹’이 민족해방(NL)론을 내세우자, 기존의 학생운동 주류 세력이 당면 전술지침으로 ‘제헌의회’(Constituent Assembly: CA)소집 투쟁을 주장하면서 NL-CA 구도가 형성되었다.)
희진: 그 당시에는 제가 너무 학생운동에 푹 빠져 있었고, 그게 세상의 전부인줄 알았기 때문에, 학생운동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전혀 없었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운동을 안 하면 인간도 아니다“ 뭐 그런 식의 사고가 저도 굉장히 강했고... 지금은, 저의 80년대에 대해, 스스로 자조적일 만큼 굉장히 비판적입니다.
<글루미 썬데이>라는 영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주인공인 나치 장교가 열혈 나치인데, 너무나 지독한 나치이고 온갖 나쁜 짓을 하거든요. 그러면서도 이 주인공은 나치의 멸망을 믿는 거예요. 오래 못갈 거라는 걸. 그래서 어떤 레지스탕스 하나를 살려줘요. 보험을 드는 거예요. 나중에 해방이 된 후에 그 레지스탕스가 자기를 처벌하지 않도록. 그런 장면이 나와요. 저는 그 장면을 보고 너무 감동을 받아서 눈물이 줄줄 흘렀잖아요.
무슨 말이냐면요, 이 친구는 나치인데도 변증법을 믿잖아요. 변화를 믿잖아요. 그런데 당시 운동권들은 변화를 안 믿었죠. 자신이 믿는 것이 영원할 것처럼... 사회주의 몰락 이후에 제 친구들 중에 조금 정신이 이상하게 된 경우가 있어요. 아니면 더 자본주의적 인간이 되거나. 아니면 그 당시에 피라미드가 유행했어요. 다단계 판매 열풍이 불었거든요. 그리로 빠지거나. 그렇게 되어 버렸죠.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해요, 어떤 면에서는. 여성이라는 저의 소수자로서의 상황이, 저를 다른 남자친구들하고 다르게 그런 길로 안 빠지고 더 치열한 정치적인 현장으로, 페미니즘으로 인도를 한 거죠. 안 그랬으면 저도 남자 동료들처럼 그렇게 살았겠죠.
생도: 대학시절 선생님의 주요 관심사는 무엇이었나요?
희진: 대학시절에 사회과학과 문학책을 많이 읽었죠.
도서관에서 811. 37(도서관의 문학 분야 분류번호)로 시작되는 책은 거의 다 읽었죠. 저희 엄마가 국어 선생님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에는 <현대문학>, <문학사상>, <사상계> 이런 잡지들이 창간호부터 있었어요.
책을 많이 본 편이죠.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게 지금 여성학 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되고 있어요.
여성학은 근대 분과 학문의 경계를 해체, 재조직화 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여성학을 하려면, 생물학, 의학, 문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인류학, 교육학, 심리학, 철학, 역사학... 을 모두 알아야 하고... 한 마디로, 바닥이 넓은 학문이거든요. 여성학, 지역학, 북한학, 과학사, 미술사... 이런 학문들이 다 그런 거예요. 박학다식해야 하죠.
생도: 당시 사회과학 서적들이 대거 출판되던 시기인데, 학생들은 주로 어떤 주제들에 관한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그러한 책들이 학생들에게 끼친 영향은? 그리고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책과 그 이유는요?
희진: 당시 사회과학 책이라고 하면, 주로 맑스주의 계열의 책들이었죠. 맑스주의 철학이라거나, 맑스주의 경제사라거나, 그런 책들이었었는데. 한국 작가는 황태연이나 이진경, 사사방(<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한국사회 성격논쟁에 부쳐>)이 그 때 87년에 나왔거든요.
(주- 사사방: 한국사회구성체 혹은 한국사회성격 논쟁이 한창이던 87년 당시 대학원생이던 박태호가 ‘이진경’이라는 이름으로 펴낸 이 책은, NL과 북한의 남조선 혁명론의 근거가 된 ‘식민지반봉건(자본주의)론’을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입장에서 논파하여 화제가 되었을 뿐 아니라, PD가 유력한 정치 세력으로 등장하는데 기여하였다 (<인텔리겐차>, 푸른역사, 27p))
그런데 저는 주로 혁명사 계통의 책을 좋아했던 거 같아요. 중국혁명사나 니카라과 혁명사나 베트남 혁명사나, 그런 책들이 덜 추상적이고 생생하잖아요.
하지만 지금 와서 제가 그때 읽었던 책들을 평가해보면, 당시 많은 책들이나 논쟁들이 대단히 관념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 대한 고민은 아주 많았지만, 사회를 굉장히 추상적인 수준에서 봤다고 생각하거든요.
아까 말한 대로, 젠더나 장애 같은 일상의 정치가 전제되지 않은... NL/PD 논쟁이 대표적인 관념의 자랑 논쟁이지요(웃음). 민족 모순이 더 올바르다, 계급 모순이 더 먼저다... 지극히 근대적인, 환원주의 그 자체거든요. 어떤 사안은 계급 모순이 더 큰 사안이 있고, 어떤 사안은 민족 모순이 더 큰 사안이 있고, 어떤 사안은 젠더 모순이 더 큰 것도 있고, 모든 상황은 현실의 맥락에 따라 다른 거잖아요.
즉, 이런 논쟁은 맥락적 사유가 아니라 환원적 사유의 원단이었던 거죠. 사실 그런 지식은 전혀 현실 적용력이 없죠.
저는 개인적으로, 아무나 맑스주의자나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한국사회에서는 맑스주의나 페미니즘을, 그것이 가장 필요 없는 사람이 제일 많이 공부를 하잖아요? 매춘 여성한테 페미니즘이 제일 필요하죠. 그런데 그들이 페미니즘을 하나요?
비정규직 노동자들한테 맑스주의가 가장 필요한데, 그걸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 중산층지식인이잖아요.
그래서 맑시즘이나 페미니즘이, 어떤 면에서는 누구를 죽이는 수단이나 방식이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사실, 지식이나 세계관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정치적 사회적 의미가 없어요.
어떤 맥락에서 어떤 역할을 했느냐가 중요하지요. 당시에는 정말 지식을 위한 지식, 논쟁을 위한 논쟁이라고나 할까요? 상황(context)이 없고, 텍스트만 있었죠. 남성 지식인들이 정전(正典) 경쟁 게임을 한 거죠.
생도: 부정적 영향이 많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희진: 저는 그렇게 보죠.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결과론적 얘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맥락에서는 그게 또 굉장히 절실했다고 볼 수 있죠. 절실했지만, 지금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과학계를 망친 측면이 있었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당시 논쟁이 기반 했던 몸과 마음(mind)의 이분법, 실천과 이론/언어의 이분법 등등은 서구 근대 철학의 핵심 기반이죠.
당시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리가 정책기획실장 이런 거였어요. 여성들은 명예 남성이 아닌 바에야, 대개 매직으로 대자보 쓰는 이런 실무를 하게 되고. 저는 당시 운동 문화와 유교 문화가 비슷했다고 보거든요. 조선시대의 유교문화는 선비를 숭상하는 문화잖아요. 그러니까 학생운동가의 자기 혼자 지사적인 결단이라든가, 자기 혼자 책을 많이 읽어서 민중을 구한다는 식의 이데올로기가 있었죠.
근데 사실 80년대 민중의 개념은 최정무 선생님이 지적하듯이, 거의 환타지였거든요. 민중이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의 관념과 욕망에서 민중을 설정한 거죠.
근데 실제 우리가 만나본 민중은 그런 민중이 아니거든요. 트로트 부르고 막... 민중은 트로트를 부르고 운동권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웃음)... 그런 식이었죠...
당시 민중은 중산층이 바라는 민중이었던 거예요. 남자가 바라는 여자가 있듯이, 중산층이 바라는 민중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다가 민중의 젠더는 철저히 남성이었기 때문에, 여성은 운동 문화 전반에서 완전히 배제, 대상화 됐죠.
모든 상황에서. 권인숙 선생님 책에도 잘 나와요. 지하 서클에 여자들은 무조건 가입하지 못하게 한다든가...
그런 것 중에서 80년대 운동사회 내의 여성에 대한 타자화, 성애화, 이런 거를 기가 막히게 보여 준 것이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거든요.
근데 이 책이 왜 그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냐, 그것은 남자가 보고 싶은 운동사회의 여자를 여자 자신이 스스로 재현한 거거든.
그러니까 남자들은 박수를 치고 너무 좋아하지, 열광하지. 그러니까 어떤 부분에서 지배 세력이 운동권 남자든, 파시즘이든 간에, 지배 세력이 원하는 타자의 모습이 있다면, 거기에 부응하는 타자, 더 열성적으로 스스로를 타자화하는, 그런 타자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죠.
예를 들면, 미국에서 오리엔탈리즘을 재현하는 배우들이 있잖아요? 루시 리우 같은.
우리가 보기에는 루시 리우보다 심은하가 훨씬 ‘예쁘잖아요’? 그런데, 심은하는 그레이스 켈리하고 비슷하거든. 그러니까 서구 백인하고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 거죠. 가장 차이가 발생하는 루시 리우가 더욱 더 동양적인 여자가 될 때, 서구인들로부터 열광적인 대우를 받는 거죠.
■《하나의 벽을 넘어서-부천서 성고문 사건 주인공의 자필수기》, 권인숙, 거름,1989
■《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 창작과비평사, 1994
■《불쌍한 사랑 기계》, 김혜순, 문학과지성사, 1997
: 자기 시의 발생론적 근거를 ‘여성’과 ‘여성의 몸’에서 찾아 작업해 온 김혜순 시인은 이 시집으로 1998년에 제 16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생도: 당시 동아리나 학회의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희진: 학회와 동아리가 무지 많았죠. 일주일에 세미나를 아홉 번 한 적도 있어요.
저는 문학 써클에 있었는데요. 실은 문학을 가장한 사회과학 써클이죠.
그리고 그때는 문학이라든가 예술이라든가 이런 독자성이 하나도 인정이 안 되었던 거죠.
모두 사회과학으로 환원되는... 이게 뭐하고 연결 되냐면, 저는 사실 모든 인류의 지성사가 형식과 내용의 투쟁이라고 보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말인데요, 여러분 그거 아시죠? 김혜순님 시집 <불쌍한 사랑 기계>? 첫 장에 나오는... “시는 말씀이 아니다. 시는 말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장르는 운명이다...” 형식을 벗어나면서도 또한 한사코 시 안에 있으려는...
쉽게 얘기하면, 우리는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정치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사실 모든 문학이나 지식은, 정치학이 중요한 만큼 형식도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형식이 있어야 또 지식의 내용이 발생하기도 해요.
제가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가정폭력과 여성인권> 을 썼잖아요.
내용만 중요시하면, 그 책을 쓸 필요가 없는 거죠. 내용만 중요하면, “여자들이 억압받고 있다” 이렇게만 쓰면 되는 거죠.
하지만 모든 스토리는 형식이 필요하죠. 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잘못된 건데, 그때는 모든 형식을 내용으로 환원했던 거예요.
아무리 훌륭한 책보다도 유인물 한 장이 훨씬 나은 거죠. 어떤 면에서는... 이건 굉장히 위험한 사고방식이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현재 한국 사회의 모든 나쁜 것은, 80년대와 일제시대의 짬뽕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생도: 그 당시에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지식인들에는 누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에 관한 선생님의 짧은 생각들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희진: 과거로의 여행이군요.
생도: 예, 일단 그 당시 상황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
희진: 여러분들, 참 훌륭하다~ 나는 80년대에 대학 다닐 때 60년대 지식인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는데~ 하하하~
생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학생문화가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려는 것이 저희의 목적이거든요.
희진: 하기야 80년대의 의미와 60년대의 의미가 다르니까... 이거는 김동춘 선생님한테 물어본 거랑 똑같을 걸요? 그때 가장 유명한 지식인은 문익환, 백기완, 또 리영희.. 뭐 그런 사람들이죠. 저도 그 당시 김남주에 열광했죠. 김남주 시를 거의 외웠죠.
생도: 선생님이 당시 존경했던 인물은 있었나요?
희진: 사실 제가 드러내 놓고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어요. 사실은 마음에 들었는데,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한 사람이 한수산이에요. 한수산의 <부초>를 읽어 보세요.
전 친구들한테 참 권하고 싶거든요.
굉장히 서정적이면서도 처절하고, 삶의 어떤 부분을 말해 주는 건데, 당시에는 서정이나 감수성... 뭐 이런 건 얘기할 수도 없었던 시대니까... 제가 이상한 애들하고만 놀았나 봐요(웃음).
생도: 85년에 <말>지가 창간되고 88년에 <한겨레 신문>이 창간 됐는데, 그 당시 학생들의 그에 대한 반응이나, 또 그 당시 많이 읽었던 정기간행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희진: 사람마다 달랐을 텐데요, 저는 당시에 주로 CA나 PD계열의 사람들하고 같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그런 걸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요. 지하 간행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진보’, ‘선봉’이라든가... 뭐 이런 지하 간행물이 많았죠. 그래서 한겨레신문에 대해서 굳이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무관심 했던 것 같아요. 제도권 매체나 대중적인 매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어요. 제 주변에서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어떤 극좌 그룹에 속해 있었던 것 같애(웃음).
생도: 사회과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현대사 공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학생시절 현대사를 어떻게 공부하셨나요?
희진: 80년대에는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없었어요. 그때는 모든 것이 서구사죠. 서구 맑스... 최근 사회과학계에 탈식민 바람이 불면서부터, 현대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지요. 저는 사실 그게 97년 DJ 정권 성립 이후라고 보거든요. 광주항쟁이 합법화, 제도화, 법제화되면서... 그 보상법 같은 거라든지... DJ 출범 이후지요. 96년 그때만 해도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높지 않았어요. 우리나라 진보 세력 역시, 서구가 모델이라고 생각했고,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저는.
‘명예남성’에서 여성주의자로
생도: 80년대에 대학 내에 여성학을 공부하려는 흐름 같은 것은 있었는지...
희진: 별로 없었죠. 있다고해도 남자들의 NL/PD 논쟁을 따라갔죠. 그 때 논쟁은 뭐였냐면 MF냐 SF냐, 그런 논쟁이 있었죠. 맑스주의 페미니즘이냐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냐, 제가 보기에는 둘 다 똑같은데. 그런 식의 논쟁이 있었고.
80년대 여성주의 관련 인식을 알 수 있는 것이 뭐냐면 <아름다운 성과 사랑을 위하여>? 그런 책들이에요. 그 책 몰라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책인데, '아다성'이라고... 백산서당에서 나온 유명한 책인데, 그게 여성학 세미나 주요 교재 중 하나였죠. 여성 노동자의 문제라든가, <산디니스타의 딸들>, <사이공의 흰 옷>같은 혁명운동에 참가한 여성들의 얘기, 그러니까 여성주의적 시각이 아니라 여성이 운동을 한 경우를 다뤘어요.‘혁명적 동지의 결합’ 뭐, 이런 거 있잖아요. 부르주아의 사랑과 자기를 구별하면서(웃음). 너무나 보수적인, 너무나 이성애 중심적인,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데, 그런 책들이 있었죠.
그리고 성을 굉장히 보수적으로 바라보고, 문란한 성을 제국주의의 하수구라든가 자본주의의 산물로 보는 그런 거 있잖아요. 성폭력이나 성매매는 제국주의의 나쁜 문화가 유입됐기 때문이라는, 뭐 그런 시각이었죠.
■《아름다운 성과 사랑을 위하여》, 편집부, 백산서당,1985 : 억압받는 여성이 사회에서 진정한 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과학적 세계관과 진정한 민주주의 이념, 올바른 도덕을 가져야 한다는 요지의 책.
■《산디노의 딸들》, 마가렛 랜들 지음, 편집부 옮김, 우리, 1986 : 니카라과 혁명과정에 참여했던 여성들의 체험담이다.
■《사이공의 흰 옷-베트남 여학생의 이야기》, 구엔 반 봉 지음, 편집실 옮김, 친구, 1986 :1960년대 사이공에서 베트남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한 여학생의 이야기.
생도: 대학에 다니면서 여성 문제를 고민 했던 경험이 있으셨는지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여성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희진: 전혀 없었어요. 요즘은 고등학생들도 여성운동이라든가 레즈비언 운동하는 하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게 없었죠. 제가 페미니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제가 지금 서른일곱 살 인데, 서른 살 때 부터였어요.
얼마 되지 않았죠. 대학 시절 물론 성차별의 경험은 많았지만, 그것이 차별이라고 생각은 안 했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였어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남자애가 있었어요. 근데 그 남자애가 나를 만나자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기분이 좋았겠죠.
그 남자애가 저를 학생회관 식당 뒤로 불렀어요. 저는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저한테 뭐라고 했냐면, 그 친구가 시골에서 온 앤데, 저한테 “여자는 대학 안 나와도 살 수 있지 않냐”는 거예요. “어차피 넌 시집갈 애인데, 대학을 오지 않아도 살 수 있는데, 왜 대학을 왔냐”면서, “너 같은 애가 있기 때문에, 내 (시골) 친구가 재수를 한다"는 겁니다. 저더러 책임을 지라고 하더라구요(웃음). 그때 저는 막 울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분하거나 억울해서 운 게 아니라, 걔가 왜 나한테 그렇게 나쁜 말을 했을까, 그것 때문에 울었던 것 같애(웃음).
그 때 1학년 때...(웃음)
성차별은 뭐, 무지무지 많았죠. 성폭력도 많았고. 진짜 많았죠. 이건 우리학교 사례는 아닌데, 어떤 친구가 저한테 상담을 한 적이 있어요. 걔네 학교의 유명한 총학생회장이 학교를 마치고 노동운동 현장에 갔어요.
그 때는 ‘현장’으로 가는 게, 좀 영웅시 됐잖아요. 근데 이 남자가 프레스에 손목을 절단 당했어요. 슬픈 사건이죠. 완전히 절단 됐으니까. 그런데 그 총학생회장이 다녔던 학교의 학생이 저를 찾아왔는데, 저한테 괴로움을 얘기하는 거예요. 자기가 자신을 운동권으로 정체화하면 그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지만, 자기를 여자로 정체화하면 자기는 솔직히 너무 통쾌하다는 거야...
그 ‘더러운’ 손이 잘 잘렸다는 거죠.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 남자가 엠티 가면 여자애들 주무르고 몸을 만지고 벗기고 그런 일을 정말 많이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피해자들이 다 침묵했고... 여자 동료들은 그 산재 사건이 일어난 후로 너무나 괴로워하면서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남성들은 느낄 수 없는, 분열적인 감정을 느꼈던 거예요.
남성은 운동권으로서의 정체성과 남성으로의 정체성이 갈등할 일이 없죠. 반면에 여성들은 그 갈등을 격렬하게 겪죠. 그게 학교 다닐 적에 매우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던 사건이에요.
그리고 민중연대 사업 하면서 농민이나 노동자한테 여학생들이 강간당하는 경우도 있었죠. 그런데 그런 일들을 겪은 피해여성이 스스로 혼자 가해자를 용서를 하는 거예요. 그건 민중의 짓이기 때문에, 민중의 행동이기 때문에 자기가 그걸 감수를 해야 된다... 여성들이 도구화 되는 그런 경우가 많았죠...
그러다가 제가 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주 우연한 기회에, ‘여성의 전화’라는 여성운동단체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저는 그때 여성단체에서 일을 하면서도 제가 ‘여성’이라고 생각을 안했어요. 전체 운동은 따로 있고, 여성운동은 부분운동이라고 생각했어요. 여성운동으로서 독자적인 정체성 보다는 전체 민주화 운동에 동원해야 한다는 논리가 강했던 거예요. 그게 서서히 변화하긴 했었죠. 여성주의자로의 본격적인 변화는 여성학 대학원을 가면서부터 시작된 거예요. 사실, 대학 때 제 친구들은 제가 여성주의 관련한 일을 하는 걸 보고 많이 놀라워하죠. 대학 때는 ‘명예 남성’이었으니까. 저는 누구나 다 여성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저 같은 경우를 봐도...(웃음)
(주- 한국여성의전화연합: 1983년도에 창립된 여성인권운동단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아내구타, 성폭력 등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사회문제화 하였고, 지금까지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과 차별을 추방하고 이를 여성인권의 문제로 발전시키기 위해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생도: ‘여성의 전화’ 에서의 경험이 선생님의 활동이나 여성학 연구 혹은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나요?
희진: 굉장하지요. 저는 대학생들한테 NGO활동을 정말 권하고 싶어요. 울리히 벡이 이야기하는 ‘시민노동’있잖아요. 자본주의 체제가 더 이상 고용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의 노동 분야와 다른 틈새를 찾아서, 환경이라든가 복지 차원의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기존의 제도화된 공부 체계에서는, 상식적으로 보이는 것만 보이는 거죠. 영어로 통찰이라는 뜻인 insight는 눈을 감아야 보인다는 의미거든요. 보지 않아야 보이는 겁니다.
NGO 활동을 하다보면 기존에는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삶이 가시화되기 시작하거든요. 대표적으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억압, 장애인의 삶이라든가, 여성의 삶이라든가, 동성애자의 삶이라든가, 이런 것들... 여성의 전화에서의 활동은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여성을 돕는 것인데, 저의 그 당시 느낌은요, 일종의 그런 것이었죠.
저의 머릿속 이데올로기는 너무나도 남성 중심적인 사회과학으로 꽉 차 있었지만, 현실에서 제가 그 여성들을 직접 만나면 당연히 그게 부서질 수밖에 없죠. 기존의 사고 방식이... 무너질수 밖에 없고, 맑스의 다른 면을 보게 되는 겁니다. 맑스의 사생활이, 사생활이 아니라 정치학이었던 거죠.
어떤 느낌이었냐면, 현실이 여러 개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현실과 세상이 여러 개라는 걸 알았죠.
그 여성들 상담 받으면서... 우리는 뉴스에 나오는 현실만이 현실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렇지만, 그런 현실 말고 다른 현실이 너무나 치열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동성애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그런 다름을, 문화의 다름이라든가 전제의 다름이라든가 그런 것을 굉장히 많이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런 것이 저에게 가시화 됐을 때 제가 인식론적 충격을 받았죠. 그리고 남자들의 그동안의 이론과 시각이 얼마나 표피적인가... 굉장한 지적 호기심이 생겨났고 인생을 근본적으로 다시 질문하게 됐죠.
생도: 여성의 전화에 먼저 들어가신건가요, 아니면 대학원에 먼저?
희진: 제가 학교를 6년 다녔어요. 제 동생이 학생운동 관련해서 제적을 당했어요.
당시에 저는 학교 졸업할 생각이 없었는데, 동생이 제적이 되는 바람에... 대학을 졸업한 다음 날부터 여성의 전화에서 일을 한 거고, 여성학 대학원은 6년인가 활동을 하다가 들어간 거죠.
본격적인 페미니즘 인식은 여성학 대학원에서였어요. 그러니까 여성단체만 해도 그런 페미니즘 지식과는 거리가 있는 거예요.
여성단체까지 닿지를 못하는 거죠. 지금은 좀 다르지만 그때는 여성운동이 시민운동의 분위기로 활동을 했죠.
그때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총학생회 집행부로 일했는데, 총학생회 집행부가 17명이었어요.
그 중에 세 명만 졸업 후 소위 말하는 사회 운동권으로 투신을 했거든요.
나머지는 회사원이 되거나 유학을 갔는데, 한명은 언론노조, 한명은 농민운동, 저는 여성의 전화에. 총학생회 집행부 동창회 모임을 하는데, 농민운동이나 언론노조에 간 사람은 다 사회운동을 한다고 인정을 하는데, 저는 운동을 한다고 인정을 하지 않더라고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여성운동은 여자들끼리 노닥거리기나 한다는 거죠. 그때 여성의 전화가 영어로 'HOT LINE' 이거든요, WOMAN'S HOT LINE. 그런데 동창들이 제게, “여자들 수다 떠는 게 무슨 ‘핫 라인’ 이냐, 응급 전화는 무슨 얼어 죽을 응급전화냐”, 그랬던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가 없는데, 그 당시에는 그런 인식이 너무나 일반적이었죠. 친구들 중에 여대 나온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에 투신하는 것은 굉장한 건데, 여성운동에 투신하는 것은 여대 내부에서도, 이대만 해도 아주 시선이 나빴다고 해요.
따로 떨어질 수 없는 ‘여성학’과 ‘여성운동’
생도: 여성학이라는 학문의 독특한 어려움이 있다면요?
희진: 대학에서 맑스주의 지식인은요, 별로 갈등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나쁘게 보지 않아요.
왜냐면 대학의 맑스주의자는 대학 문제를 거론하지 않거든요. 맑스주의 교수가 대학 내 비정규직 문제, 즉, 시간 강사 문제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모두 밖에서 ‘실천’하지요. 민주노총 가서 자문위원 해주고... 그러니까 맑시스트 대학 교수는 학교의 기존 시스템을 위협하지 않아요.
그러나 여성학과 교수나 여성학과 대학원생은 삼중, 사중의 노동을 해야 되요. 공부해야지, 여성운동 해야지, 여성 정책 해야지, 교수라면 학생 지도도 해야지, 학내 성차별 문제와도 싸워야죠.
그러니까 어떤 부분에서는, 소위 말하는 ‘한국적 페미니즘’, 이런 걸 할 시간이 없다고 보는 게 맞아요. 다른 지식인한테는 그런 이중 삼중의 요구를 하지 않지요.
현재 한국 여성학은 아시아 페미니즘이라던가, 탈식민지라든가, 이런 것에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의 그 어떤 지식인 집단보다 가장 서구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탈식민적 시각을 갖고 있어요. 조한혜정 선생님이 처음 시작하셨죠. 제가 보기에 탈식민주의는 공부의 데이터를 한국 사람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경우에 한국이 학문의 소재인 것을 탈식민이라고 착각을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의 소재를 다루더라도, 혹은 외국의 소재를 다루더라도, 그것을 한국인들의 시각이라던가, 제 3세계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 연구 대상이 한국 사람인 것이 중요한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외국의 이론을 수입하면 서구적인 거고, 한국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은 민족적이라고 보는데, 나는 그게 아니라고 보는 거죠.
외국의 이론을 수입해 오더라도 어떤 관점에서 왜 갖고 오느냐에 따라서, 결국 탈식민적일 수도 있고 서구 중심적일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문제는 관점, 시각, 가치관인데 자기가 한국 사람이라는 정체성이나 자각이 없이 무슨 다른 시각이 생기겠어요?
여성이라는 자각이 생겨야 페미니즘 시각에서 보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 그리고 많은 지식인들이 미국하고 훨씬 가깝잖아요? 정말 미국의 한 주죠. 뭐, 거의 심리적으로.
생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강조하다보면, 민족주의적인 시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요?
희진: 그런 것은 아니죠. (웃음) 제가 얘기하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자각이라는 것은, 일종의 맵핑(mapping)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지도를 그린다, 맵핑. 즉, 자기가 어디 서있는가를 아는 거죠.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은 한국적 정체성, 민족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질문이지만, “내가 어디 서있는가”라는 질문, 그러니까 지금의 글로벌 상황이라든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한국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아는 것은 굉장히 다른 거죠.
민족주의는 ‘진짜(authentic) 우리’ 같은 것이 있다고 보는 거예요. 근데 진짜 우리도, 진짜 서구도 없습니다. 이건 담론의 산물이지 현실이 아니에요. 또한 서구냐, 우리냐는 사고방식은 서로에게 의존적인, 서로를 욕망하는, 서로에게 인질인. 그런 관계입니다.
생도: 벨 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 (박정애 옮김, 백년글사랑, 2002) 을 보면 미국의 경우 활발했던 자생적 여성운동이 제도권에 여성학이 자리 잡으면서 아카데미즘으로 흐른 경향이 있어서, 오히려 자생적인, 현장의 여성운동과 그 대중화를 축소, 방해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이와는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 80년대에 생겨난 한국의 제도권 여성학과 여성운동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희진: 우리나라는 반대죠. 아주 좋은 지적인데요.
미국하고 우리는 굉장히 다르죠. 미국도 그렇지만, 우리도 운동의 결과로 여성학과가 생긴 거죠.
처음에 여성학과 교수가 된 장필화 선생님... 이런 분들은 70년대 크리스찬 아카데미... 이런 데에서 운동을 열심히 했던 분들이죠.
전 세계적으로 한국은 아주 모범적인 경우에요. 한국은 여성학과 여성운동이 비교적 행복하게 만난, 그리고 상호 교류라든가 상호 발전을 강제하는, 그러한 것들이 굉장히 잘된 케이스라고 평가를 받죠.
여성학은 여성운동과 따로 떨어 질 수 없고, 또 여성학 자체가 여성운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카데미즘 내부에서의 여성운동이죠.
여성부가 정부기구 내에서 여성운동이듯이. 저는 운동과 학문, 둘 중의 하나로는 독자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고 봐요. 여성학이 없는 여성운동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고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생도: 현재의 한국 여성학계에 어떤 한 가지 흐름만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어떤 주요한 흐름들이 있는지, 맥을 좀 짚어주셨으면 합니다.
희진: 굉장히 어려운 건데... 그게 얘기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뭐냐면, <한국여성학>이라는 공식 학회지가 있는데, 거기에 실리는 논문으로 이걸 판단해야 될 지, 경향을 판단해야 할 지, 아니면 요즘 출판되는 여성 관련 책들을 중심으로 봐야 될지 어렵거든요.
또 이대 여성학과 석사 논문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사람들도 있긴 해요. 이렇게 여러 가지로 매우 다르고, 레즈비언의 시각에서는 또 굉장히 다르게 그걸 보겠죠. 지방과 서울의 차이도 있고요. 그래서 한국 여성학계의 동향을 일상적으로 요약하기가 너무 어렵네요.
제 생각에 최근에는 소수자에 대한 관심과 여성 내부의 타자들, 탈북여성, 장애여성, 이주노동자, 레즈비언... 이런 문제. 그 다음에 탈식민적인 문제, 동시에 글로벌에 대한 관심,
그리고 세 번째는 여성 정책. 지금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젠더가 주류화, 법제화, 정책화된 나라거든요. 저는 이렇게 세 가지 정도가 주요 흐름이 아닐까, 아니, 이런 주제들이 연구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생도: 최근 들어 대학에 여성학 관련 수업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그 수업들의 대체적인 수준이나 방향에 대해서...
희진: 굉장히 중요한 질문인데, 어제 제가 '나의문화'에서 개최한 저출산 패러다임 토론회에 갔었어요.
거기서 어떤 얘기가 나왔냐면, 모 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치는 어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내 강간을 문제화하다니, 진짜 여성 단체 한심하다, 그렇게 사소한 것 갖고 운동을 하냐"고 말한 거예요.
그래서 그 수업을 듣는 페미니즘 시각을 가진 남학생이 너무나 괴로워서 총여학생회를 찾아갔대요.
그러니까 여성학 수업이 많아진 건 좋은데, 이런 식의 여성학 강사들이 강의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죠. 근데 이걸 막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여성학은 굉장히 정치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지식하고 상관이 없어요. 학력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여성 의식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부작용들이 있죠. 그리고 또 그런 사람들이 여성학으로 권위를 받기 시작하면 위험하지요.
그런 에피소드는 너무나 많아요.
모 대학 사회학과를 중심으로 한 어느 사회과학 그룹에서 페미니즘 강좌를 열었는데, 저는 정말 뒤로 넘어갈 뻔했어요. 제목이 ‘올바른 페미니즘, 과학적 페미니즘을 위하여’인 거예요. 그러니까 그들이 보기에, 저 같은 사람은 ‘올바르지’ 않을 수 있는 거죠.
‘페미니즘’하고 ‘올바른’ 이란 말은 양립할 수 없는 말이거든요. 그건 굉장히 권위적인 거잖아요. 그리고 과학적 페미니즘? 근대 과학하고 페미니즘은 양립할 수 없어요. 페미니즘의 출발이 근대 과학 비판인데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소위 학벌 위계 때문에, 이 대학 출신들의 이런 식의 이야기가 인정받는 부분이 있죠.
그리고 지금은 우리사회에서 가시화되기 시작하고 있는데요, 비장애여성의 페미니즘과 장애여성의 페미니즘이 다르잖아요.
비장애 여성들은 가해자죠. 그리고 레즈비언 여성과 헤테로 여성 페미니스트가 어떤 면에서 또 다르잖아요.
그런 전쟁이 오겠죠. 전 그런 식의 문제제기와 싸움은 여성운동의 발전이라고 생각해요. 남자들은 다 똑같지 않잖아요?
남자들은 좌파도 있고 우파도 있고 다 다르잖아요? 여자들, 페미니즘 하면 다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자 내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또 하나의 억압이죠. 저는 여성들 간의 차이의 가시화가, 여성 해방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여성을 여성으로만 환원하는 것이 가부장제니까요.
예를 들어 이효리씨는 가부장제에 의해서 억압을 받는 여성이 아니잖아요. 오히려 가부장제이기 때문에 자원을 갖는 여성이지요.
어떤 면에서 여성한테 섹스나 모성은 억압인 동시에 자원이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여성들에게는, 즉 저 같은 사람한테는 애 낳는 것이 억압이지만, 어떤 여성들은 계급이 높은 남자를 만나면 애부터 낳으려고 하죠.
이렇듯 여성의 처지가 너무 다양하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모든 여자가 억압받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여성들은 젠더를 활용하면서 살잖아요?
예를 들어 여성에게 결혼 생활이 억압적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또 그것이 여성들이 정상성을 획득하는 방법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주체라는 말이, subject라는 말이, 한편으로는 '되다'라는 말이잖아요? 내가 그 사회의 주체가 된다 - 그 사회의 주류적인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다, 주체가 된다 - 종속된다, 그 말이죠.
생도: 양은 늘어났지만 그 내용이나 수준이 빈약하다는 말씀이신가요?
희진: 그런 건 아니고요. 일단 제도화는 바람직합니다. 여성의 고통이 공적인 제도로 해결되는 것은 너무 중요하죠. 제도의 외연이 넓어지고, 다른 비주류가 더 많이 생겨나야겠죠. 지금 우리가 그 제도의 소프트웨어를 채우지 못하는 거죠. 그걸 채우기 위해서 나 같은 사람이 24시간 강의만 할 수는 없잖아요(웃음).
생도: 지금 선생님은 대학에서 어떤 강의를 하고 계세요?
희진: 지금은 서강대하고 서울시립대에서 강의하고 있는데요, 서울시립대는 ‘성과 사랑’이고, 서강대는 ‘현대사회와 여성’인데, 그게 말이 돼요? ‘현대사회와 여성'?(웃음) '현대사회와 남성'이라는 말은 없잖아.
'현대사회와 여성' 여성학 개론이구요, ' 성과 사랑' 정말 섹슈얼리티 이론, 학생들이 재밌어 하죠. (웃음)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가정폭력과 여성인권》, 정희진, 또하나의문화, 2001
: “아내폭력”을 여성 인권과 성 vudemjd 관점에서가 아니라 가족보호의 입장에서 논의하는 기존의 관점에 도전하였다.
생도: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가정폭력과 여성인권>에서 선생님은 ??질적 연구방법??으로 가정폭력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러한 질적 연구방법의 특징과 효용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희진: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여성학적 글쓰기의 모델이 되는 책이다. 그래서 주제와 상관없이 읽힌다." 저한테 이렇게 말하는 교수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여성주의적 글쓰기란 뭐냐?”. 여성주의적 글쓰기는 기존의 글쓰기와 다른가? 흔히 사회과학의 연구방법론은 질적 방법과 양적 방법으로 나뉩니다. 양적 방법은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통계 같은 거고, 질적 방법은 인류학에서 주로 많이 했죠. 현지조사, 심층면접 같은 것을 질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회과학이라는 말은, 근대 학문이 자연과학의 패러다임에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거든요.
그래서 다 ‘과학'이란 말을 붙이기 좋아하잖아요? ‘문화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 ‘체육과학’, ‘생활과학’... 근데 인간의 삶과 사회 현상을 과학화, 수량화 할 수 있나요? (웃음).
이렇게 사회과학계에서 양적 방법을 많이 하는데, 사실 양적 방법은 거기에 적합하지 않은 주제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마약 거래 문제 연구는 양적 방법으로 하기 어렵지요. 또 가시화가 안 되는 문제들... 에이즈 환자라던가 동성애 이슈... 이런 문제들은 통계에 안 잡히는 경우가 많잖아요?
내 친구인 어느 레즈비언은 25살 때부터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인정하고 운동하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레즈비언적 행위를 했는데도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지 않고 이성애자로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만약 이 친구를 25살 이후에 조사했으면, 레즈비언이고, 23살 때 조사를 했으면 레즈비언이 아닌 걸로 통계가 나올 거 아니에요(웃음).
그렇기 때문에 소위 말해서 비가시화된 문제들은 질적 연구방법이 굉장히 좋죠. 질적 연구 방법은 주제에 따라서 다를 수 있고, 두 번째는 주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죠. 그러니까 양적 방법으로는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가 어렵다는 거죠.
질적 방법은, 제가 생각할 때는, 연구자인 나의 스토리와 연구대상의 스토리의 갈등과 경합을 드러내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시 말하면, 질적 연구방법은 내 스토리만 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구 대상의 스토리를 내가 그대로 옮기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는 사실 연구 대상자의, 그러니까 구타 남편이라든가 피해 여성의 스토리를 제가 해석한 거죠.
질적 방법의 오해 중의 하나가 그들이 하는 얘기를 그대로 쓴다는 건데, 그런 건 아니거든요. 그들이 하는 얘기를 나의 정치적 입장에서 해석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그건 근본적으로 나의 스토리죠.
가장 핵심적인 것은, 양적 방법은 맨 처음에 결론이 있죠.
그래서 그 결론을 연구대상에 확인, 적용시키는 거거든요. 설문지를 미리 만들잖아요? 근데, 그 설문의 내용 자체가 특정한 대답을 유도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푸코가 한 말 있잖아요. "질문 방식 자체가 이미 대답을 전제하고 있는..." 근데, 질적 방법은 거꾸로 이죠. 예를 들면, 양적 방법은 우리가 아는 것을 쓰는 거라면, 질적 방법은 아는 것을 버리는 거죠. 일종의 과정의 학문이죠. 결론이 어떻게 날 지 모르는 거죠. 내가 맨 처음에 이런 가정을 갖고 인터뷰를 했는데, 그 가정이 현실과 다를 수 있는 거잖아요.
다시 말하면, 기존의 이론이나 지식 체계의 전제들이 여성의 고통을 비가시화하고, 여성의 삶과 굉장히 against 하므로, 여성의 경험을 통해서 기존의 이론에 도전해야겠죠. 여성의 경험을 기존의 틀 외부에서 드러내는데 질적 방법의 적합성이 있어요. 여성의 경험은 기존의 이론과 맞지 않기 때문에 여성의 경험에 근거해서 기존의 이론을 비판하거나 재해석하는 면에서, 질적 방법은 굉장히 소수자들의 입장을 드러내기가 쉬운 거죠. 동시에, 해석하는 나를 해석한다는 점에서, 연구자 자신이 연구 대상이 되는 거죠.
생도: 그러면 질적 연구방법의 어려운 점에는 무엇이 있나요?
희진: 많죠. 엄청나게 많고 엄청나게 재밌고 그런 거죠. 이 질적 방법은요, 연구 방법의 문제 자체 때문에, 연구를 못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러니까 내가 정말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데, 질적 방법으로는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거죠.
예를 들면, 저는 '제주 4.3' 연구를 하고 싶어요. 근데 지금 생존자가 다 죽었다면, 질적 방법으로는 못하는 거죠. 양적 방법은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죠.
가정폭력 문제가 너무 재밌고 아이러니한 것은, 여성학과가 생긴 지 20년 동안 가정폭력 논문이 한 번도 안 나왔다는 거예요.
다른 과에서는 많이 나왔는데.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연구자들이 구타 피해여성에 대한 접근권이 없었던 거죠.
그러니까 구타 피해여성을 어떻게 도와주면서 어떻게 인터뷰해야 되는지는 빠른 시일 안에는 모르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여성의 전화'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 여성들을 만나기가 가능했던 거죠.
한설아씨가 쓴《다이어트의 성 정치》라는 책도, 저자 스스로 다이어트 하다가 쓴 거거든요.
저자가 당사자인 거지. 그래서 자기의 다이어트 문제를 고민하다가, 그 문제로 고통 받다가 그걸 연구 주제로 삼은 거죠. 잘 쓸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 때는 연구대상하고 자기하고 별로 구분이 안 되잖아. 내가 지금 다이어트 하는 바로 그 당사자니까(웃음). 잘 쓸 수밖에 없죠.
연구 대상에 대한 접근권이 없는 경우가 많잖아요? 예를 들면 제 친구는 ‘10대 원조 교제’를 연구하는데, 저는 그런 연구를 못하죠. 10대 친구들이 저하고 얘기를 안 하려고 하니까, 아줌마라고.
근데 제 친구는 24살이라서 10대 매춘 여성이나 청소년 성매수의 대상인 여성들이랑 인터뷰하기가, 그 접근성이 훨씬 용이하죠. 제가 성폭력 가해자나 가정폭력 가해자들이랑 인터뷰를 많이 했거든요. 근데 어떤 문제가 발생 하냐면, 그들이 저를 연구자나 선생님으로 보는 게 아니라, 뭐 데이트 신청을 한다든가, 성희롱을 한다거나...
그런 경우에는 저도 그 사람하고 인터뷰를 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제 친구는 성매매 관련 여성을 인터뷰하다가 인신 매매 될 뻔 하기도 했어요.
■《다이어트의 성 정치》, 한서설아 지음, 책세상, 2000
생도: 이제 다시 또 과거 얘기로 돌아가는데요. 우리나라의 여성운동이 독자성을 띠기 시작하며 발전하게 된 것이 80년대부터라고 들었는데, 80년대 여성 운동을 보면,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에서도 "여성운동은 민족민중운동과 동일하다"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좀 민족민주운동에 포섭된 성격이 있는 것 같은데요...
(주- 한국여성단체연합: 87년 6월 항쟁 이후 여성운동단체도 활성화되어, 그간 각종 여성 폭력에 대한 대책위 활동을 해오면서 상설적인 공동투쟁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여성운동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1987년에 한국여성단체연합이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초창기 여연의 주목적은 군사독재에 대한 투쟁과 기층 민중여성의 생존권 투쟁에 있었다.)
희진: 80년대에 여성운동의 의미는, 여성이 하는 민족민주운동이었죠.
생도: 예. 근데 90년대가 되면 굉장히 많이 변화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희진: 변했죠.
생도: 그게 어떤 원인에 의해, 또 어떤 배경에서 변화했는지 궁금하거든요.
희진: 제 생각은요, 가장 큰 기제는 섹슈얼리티 문제인 것 거 같아요. 성폭력 문제. 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성폭력 운동이 나오게 됐잖아요.
그리고 그 성폭력은 남성과 화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잖아요, 어떤 면에서.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가 여성들에게 굉장한 인식론적 전환을 가져다 줬다고 봐요. 남성들, 기존의 남성 중심적 진보와 여성 시각에서의 진보가 구별되기 시작한 거죠. 그것이 폭발했던 계기가 운동사회 내부의 성폭력이었죠.
또, 80년대의 계급이나 민족 모순 중심의 사회 운동에서, 90년대 들어서 시민운동의 등장이라든가 사회가 다원화 되면서 젠더 문제의 가시화가 가능했던 부분이 있었죠.
생도: 사회주의권의 몰락과도...
희진: 뭐, 다 연관성이 있는 거죠. 모든 인간의 고통이나 사회적 문제는 어느 한 가지 모순 때문에 발생하지 않죠. 계급이든, 민족이든, 젠더 모순이든 모두 다른 사회문제와 관련을 가지면서 작동합니다. 계급 문제도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못하는데, 괜히 독자적인 것인 양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죠(웃음).
생도: 정현백 선생님이 석순( 스물세번째/2003가을, p.125 )에 인터뷰하신거 보니까...
희진: 여러분 공부를 너무 많이 했다, 너무 훌륭하다~
생도: 정현백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대학의 여성운동이 좀 서구 중심적이다" 라고 비판하셨는데, 선생님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희진: 저는 그러한 지적의 전제를 질문하고 싶습니다. 서구 중심적인 것의 내용이 무엇인가요?
레즈비언 운동이나 섹슈얼리티에 관련된 것은, 서구 중심적인가요? 저는 가끔, "외국에서 살다오셨어요?"그런 질문을 받거든요.
‘한국적’, ‘서구적’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규정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특정 계층의 남성들이 규정한 ‘한국적인 것’에 저 같은 사람은 포함이 안 되겠죠.
서구적이라는 것도 저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얘기 중에 하나가, 권혁범 선생님이 한 말 있잖아요.
"페미니즘이 서구적인 거라면, 너의 맑시즘은 안동 하회 마을에서 왔냐"
이런 말 있잖아요(웃음). 그러니까 서구적인 것이 무엇이고,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 그건 사실, 실체가 없는 거거든요. 경합하는 거지요. 그 내용을 말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사람은 서구적이다, 어떤 사람은 한국적이라고 하는 것은, 폭력이고 권위주의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제가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한테, 수업 첫날에 설문지를 쓰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90% 이상의 학생들이 뭐라고 쓰냐면, “온건한 페미니즘, 대중적 페미니즘, 조화로운 페미니즘은 오케이”인데, “극단적인 페미니즘은 싫다”는 겁니다.
저는 이런 말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말로서 의미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무엇이 극단적이라는 규정 없이, 그리고 그것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 없이, 그런 말은 의미가 없지요. 어떤 사람한테 극단인 것이, 어떤 사람한테는 상식일 수 있잖아요. 한국 남성들이 미국에 갔을 때, 제 3세계 사람으로서 당연한 문제제기를 했는데, 미국 사람들은 한국 남자들을 과격하다고 볼 수 있거든요.
저는 오히려 이런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한국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을 누가 규정하느냐, 누가 당신한테 그런 권한을 줬느냐... 많은 경우에 남성들은 자기들이 민족의 대표라고 생각하고, 여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레즈비언은 서구적인 거다, 한국에는 레즈비언이 없다, 이런 얘기들이 대표적인 사례죠.
이문열 식의 얘기하고 똑같은 거죠. 이문열씨가 《선택》에서 하는 얘기가, 옛날에 조선시대 여자들은 잘 살았다는 거죠,
근데 지금은 여자들이 서구적인 것을 듣고 와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거잖아요. 이런 식의 이야기는, 현실과 그것을 설명하는 담론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젠더 문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잖아요?
70년에도 성희롱이 있었죠.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성희롱이라고 부르지 못했을 뿐이죠. 그렇다고 해서, 그 현상이 없었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요. 저는 이문열 식의 사고방식하고, 한국적... 이런 질문 방식하고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모두가 타자이다
생도: 저는 ‘타자’라는 말이 어떤 폭력을 개념화하는 데 좋은 말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공부를 해 보고 싶기도 했었는데, 제가 본 것은 <차이와 타자> 정도뿐이거든요.
희진: 제 생각에, 타자성에 대한 가장 좋은 텍스트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예요. 보부아르의 《제 2의 성》보다 저는 더 좋았습니다. 사실 보부아르는 서구 중심적, 이성애 중심적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어요. 사르트르가 파농과 친한 것도 못마땅해 했고...
타자라는 말은 차이가 전제된 말이에요. 근데, 그 차이는 주체의 입장에서 구성된 거죠. 그래서 차이와 타자라는 말이 나왔는데. 오리엔탈리즘을 보시면 굉장히 잘 드러나요. 그리고 프란츠 파농 얘기도 다 타자에 대한 얘기고요.
(주- 프란츠 파농: 1925년 서인도 제도의 프랑스령 식민지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정신병리학을 공부한 뒤, 알제리 등지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며 식민지 사회의 억압적 체제가 피지배 민중에게 끼치는 정신적 영향을 분석하였다. 이후 알제리 독립전쟁에 헌신하였으며, <검은피부, 하얀가면>,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등 탈식민주의 담론의 원점이 되는 책들을 남김.)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W. 사이드 (Edward W. Said), 박홍규 옮김, 교보문고, 2000
: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학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대표작. 서양이 동양에 대해 ‘객관적’이라고 생각해온 방대한 지식들이, 서양의 동양지배와 더불어 생겨났으며, 그것과 밀접한 정치적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푸코의 담론분석을 빌어 날카롭게 밝혀낸 책.
■《제 2의 성》( Le Deuxime Sexe ),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을유문화사, 1993
: 1949년 발간된 이후 페미니즘 이론서의 고전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혔다. 여성을 ‘타자화’하는 기존의 인류문화사와 지성를 비판하고 여성의 신체구조가 타자화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을 역설했다. 20세기 후반, 서구 여성운동의 제2의 물결을 촉발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생도: 현대철학의 흐름 중에 타자에 대한 고민들이 진행된 것들이...
희진: 많죠.
생도: 선생님은 그런 흐름들을 어떻게 보시는지?
희진: 근대철학이 인간을 단일한 주체로 본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사람이 그렇게 단일한 주체가 아니라는 거잖아요.
예를 들면, 저 같은 사람은 모든 공간이 남성 중심적 공간이라고 보는데, 푸코는 그것을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이성애자의 공간으로 보잖아요.
그러니까 푸코 입장에서는 자신이 게이였기 때문에 이성애 중심사회에서 타자일 수밖에 없고, 이성애자로서의 주체 의식은 게이를 배제한 전제 위에서 형성된 거잖아요. 그런 고민을 푸코는 치열하게 한 사람이죠.
탈식민주의는 다 타자의 문제를 다루죠. 3대 탈식민주의 이론가 스타가 스피박, 호미 바바, 에드워드 사이드, 이렇게 얘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그 근대적 주체 개념이 전부 서구 백인의 주체 개념이잖아요. 그건 제 3세계라던가 흑인을 타자화한 상태에서 형성된 거기 때문에, 서구 백인 사람들이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타자를 알아야 되지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때문에 남성들이 자기를 알기 위해서는, 여성을 알아야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성문제는 곧 남성문제죠. 여자가 있어야지만 남자가 성립하는 거기 때문에 여성문제를 특수한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거죠. 모든 게 사실 여성문제죠. ‘주체는 타자의 영원한 인질이다’라는 레비나스의 말이 있잖아요.
(주-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Gayatri Chakravorty Spivak)은 제3세계(인도) 출신으로 제국의 메트로폴리스에서 활약하는 대표적인 탈식민 여성이론가로서, 해체론, 맑스주의, 페미니즘, 포스트식민주의, 문화론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내려고 애쓴다.《다른 세상에서》(1987) 가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호미 바바는 데리다의 해체주의적 인식을 식민 상황에 적용하여 스피박과 함께 탈식민주의의 새로운 담론을 이끌고 있다. 지배/피지배의 관계는 이원대립적인 것도, 일방적인 것도 아닌 양가적인 것임을 주장. <차이, 차별, 그리고 식민주의 담론>(1983) 등의 책이 있음.)
생도: 남성 페미니스트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남성페미니스트> (톰 디그비 엮음, 김고연주?이장원 옮김, 또하나의문화, 2004)라는 책의 서평도 쓰셨던데.
희진: 대개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남성 페미니스트를 싫어하죠. 저는 그렇지는 않아요. 페미니즘은 정체성의 정치를 벗어나야 하고, 실제로 정체성의 정치 그 이상의 사상입니다. 맑스주의는 노동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철학인데, 왜 페미니즘은 여자만 해야 하나요?
페미니스트들이 두려워하는 건 그런 거겠죠. 페미니스트 스토커. 이상한 남자들이 많으니까(웃음). 페미니스트는 아닌데, 자기가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특히 한국사회에 많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점잖기만 해도, 남자들은 페미니스트죠... 성 보수주의적 시각을 갖고 있어도 여자한테 찝쩍거리지만 않으면 페미니스트고, 가사노동을 ‘도와’줘도 페미니스트고, 여성한테 폭력만 안 써도 페미니스트고...
하지만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거는, 생물학적 본질주의라고 생각해요.
물론 어렵긴 하죠. 백인이 흑인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가 되는 것보다도 어렵잖아요.
그렇다 해도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 자체가 사실 잘못된 질문이죠. 우리나라 맑시스트들은 다 중산층 남자잖아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또 페미니즘을 고립화시키는 전략 중에 하나가, 페미니즘은 여자들이나 하는 걸로, 가정학 비슷하게 취급하는 거 있잖아요. 그것도 굉장히 문제죠. 사실 페미니즘을 모르면, 저는 사회과학자들이 객관적인 학문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여성문제를 모르면. 그렇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지금 사회의 현실이 이성애중심주의, 비장애인 중심주의와 가부장제, 이런 걸로 촘촘하게 짜여진 체크무늬로 사회가 드러나는데, 그 중에서 실을 하나 뽑아 버리면, 젠더라던가, 비장애인 중심주의라는 실을 뽑아버리면 사회가 잘 안 보일 거 아니에요? 그런 면에서 젠더는 모든 사람의 관심인 거죠. 계급도 모든 사람의 관심이잖아요.
생도: 앞으로 여성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희진: 누구나 자기 내부에 한 가지 이상은 타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벌, 외모, 나이, 계급, 지역, 장애, 성 정체성, 젠더... 모든 부분에서 완벽히 ‘진골’인 사람은 없습니다. 여성만 타자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타자입니다. 타자들끼리 연대하고 소통해야지요. 현실에 대한 분노 없이는 어떠한 사상도 이론도 성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가장 상처가 되는 문제를 연구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문제, 열등감, 감수성 등은 여성학 뿐 만 아니라 다른 모든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도 자원이 될 수 있어요. 자신의 일상과 이론을 분리시키지 말고, 자기 현장의 문제를 이론적 주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도 : 여성학에 관련된 책이나 그 밖의 책들 중에 학생들에게 추천해주실 만한 책들과 그것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희진 : 권하고 싶은 책은 너무 많지만, 복잡한 현실을 복잡하게 사유하고, 현실을 기존과는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상상력을 주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캐서린 문,『동맹 속의 섹스』, 이정주 옮김, 삼인, 2002.
베티 도슨,『네 방에 아마존을 키워라』, 곽라분이 옮김, 서울 : 현실문화연구, 2001.
최정무/일레인 킴 편,『위험한 여성』, 삼인, 2001.
알리 러셀 혹실드,『돈 잘 버는 여자 밥 잘 하는 남자 - 맞벌이 부부의 가사분담 이야기』 백영미 옮김, 아침이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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