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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

[한겨레] 책 내셔널리즘과 젠더

by eunic 2005. 2. 28.

정희진의 책읽기

여성의 눈으로 역사를 상대화하다


남성은 가정이 휴식처라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에게 가정은 노동의 공간이다. 남성의 경험은 ‘객관적 사실’로 채택되고, 여성의 경험이나 주장은 주관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물론 여성의 경험도 같지 않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에게 가정은 폭력의 현장이며, 기혼 여성노동자에게 집은 이중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전쟁터다. 중산층 이성애자 여성에게 결혼 제도의 성 역할은 억압이지만, 레즈비언이나 장애 여성에게 결혼은 투쟁으로 쟁취해야 할 정치적 목표가 된다. 인간의 역사는 특정 범주에 속한 사람의 경험만을 대변하므로 지배 언어는 사회적 약자의 경험을 배제하기 마련이다. 언어의 의미는 인식 주체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어떤 이들에게 정치적 반동이 어떤 이들에게는 진보적인 실천이 된다.
일본 근대 국가 건설기와 2차 세계 대전 때, 일본 여성운동은 일본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당시 ‘여성의 국민화’ 프로젝트는 여성운동가들에게 전혀 ‘반동’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혁신’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일본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공적 활동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였으며, 여자도 국민이 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현재’ ‘남성’의 시각으로 비판할 수 있을까 도쿄대에서 여성학을 가르치는 우에노 지즈코는 그럴 수 없다고 본다. 어차피 역사는 현재의 기억에서 과거를 상기한 것이긴 하지만, 역사 해석에 ‘만일’이 없다는 것은 과거란 과거의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의 야심작 〈내셔널리즘과 젠더〉(이선이 옮김·박종철출판사·1999)가 출판되었을 때, 일본에서는 〈우에노 지즈코 정도는 무섭지 않다〉는 책이 나왔을 정도로 격렬한 찬반 논쟁에 휩싸였다. 이 책은 종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근대, 국가주의, 민족주의와 젠더(성별 제도)의 관계를 파헤치면서, 남성과의 평등을 주장해도 남성과의 차이를 외쳐도 국민이 될 수 없는 근대 국가의 여성의 현실을 논한다.

읽는 이에게 사유의 긴장과 고통을 주며, 기존 언어를 붕괴시켜 독자를 현실로부터 되도록 먼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내셔널리즘과 젠더〉는 그런 책이다. 여성주의 역사 해석은 기존의 남성 중심적 역사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시각에서 담론의 권력 투쟁에 참여함으로써 남성의 역사를 상대화하려는 작업이다. 저자는 묻는다. 국가, 시장, 민족은 성 중립적인 ‘실체’인가 문서로 기록된 역사와 여성의 경험이 불일치하다면, 무엇이 진실이며 어떤 것을 믿어야 하는가 아니, 특정한 사실(事實)을 사실(史實)로 믿게 하는 권력 구조는 무엇인가 여성은 국적을 초월해서 단결할 수 있을까 2차 대전시 종군 위안부로 취업한 일본의 ‘매춘 여성’과 강제로 끌려간 조선의 ‘순결한 딸’을 구분하는 것은 누구의 시각인가 전쟁은 국민 국가의 일탈일까 완성일까 왜 여성은 유사시에만 국민이 될까 강자의 민족주의는 악이고, 약자의 민족주의는 정의인가 이 책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민족 모순이냐 성 모순이냐는 식의 논쟁 구도 자체를 비판한다. 오히려 전쟁시 집단 성폭력 같은 비극이 인류사에 재연되지 않기 위해서, 민족주의가 대안일 수 있는가를 질문하고 있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