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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한국근대가 만든 `허구의 신화`>(5)남편·자식 성공에 자아 희생

by eunic 2005. 2. 28.
<한국근대가 만든 `허구의 신화`>(5)남편·자식 성공에 자아 희생
[문화일보 2003-04-22 10:45]



1.“늦은 밤 갑작스런 남편의 손님들, 술안주 고민되시죠? 매일 집에서 컴퓨터만 하는 우리 아이, 영양 보충 어떻게 하시나요? 대한민국 주부님들 고민하지 마세요.” ‘대한민국 힘있고 아름 다운 아줌마들의 인터넷 세상’을 표어로 내건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배너 광고다.

광고 뿐 아니다. ‘아줌마에 의한, 아줌마를 위한, 아줌마들의 사이트’라고 강조하지만, 아줌마를 위한 내용은 별로 없다. 기 껏 아줌마 문학 세상과 커뮤니티 정도가 스스로를 위한 것일 뿐 인테리어, 알뜰 주부 일지, 육아, 장터, 우리집 클리닉 등으로 구성된 이 사이트는 대부분 남편과 아이를 위한 것이다.

“김갑동(한국고 교장), 김을동(한국대 교수) 모친상, 이병동(한 국그룹 이사) 장모상21일 10시 한국대학병원, 발인 23일 10시 02-123-1234” 신문 부고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아직도 신문 부고란에서 여성의 자리는 없다. 여성에겐 아버지, 어머니가 세 상을 떠나도 남편의 장인상 장모상일 뿐이다. 2.왜 그런가. 이 기획의 출발점인 책 ‘탈영자들의 기념비’에서 여성학자 정희진씨가 쓴 ‘어머니는 말할 수 있을까’란 글에 기대어 보자. 이에 따르면 여성에겐, 어머니에겐 언어가 없다. 식민지배와 압축 성장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 현대사의 가부장제 에서 여성의 자아실현과 인생의 성공은 남편이나 자식을 통해서 만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권력은 출세한 남편과 아들의 권력에서 나온다. 그러니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편을 출세시키고, 자녀를 일류 대학 에 보내야 한다. 자녀 교육에 목숨걸고 과외비 마련을 위해 파출 부, 주부 매춘까지 서슴지 않는 어머니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책 의 불편한 질문 던지기는 계속된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 바친 인생만큼 우리 사회는 어머니를 기억하고 존중하는가. 우리 마음속에 아릿한 상처와 안 쓰러움으로 남아있는 헌신적인 어머니와 음식점에서 떼를 지어 큰소리로 웃고 떠드는 여성들, 창피함도 모르고 물건값을 깎아대 며 시장에서 악다구니를 치는 여성들은 우리의 어머니와 다른 사 람들인가.” 3.“아줌마는 무식과 촌스러움, 뻔뻔스러움의 대명사라고 그랬던 가. 그러나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더 이상 아줌마를 무식하고 촌 스럽다고 감히 말하지 않는다.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 절약과 악착으로 버티어낸 아줌마들의 ‘몸뻬 바지’를, 한번 말면 오랫 동안 풀리지 말라고 짧고 빠글빠글하게 볶은 우리네 엄마들의 ??캡떳疸???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자식교육에 온갖 열정을 다 바친 ‘치맛바람’을 단지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라 누 가 감히 몰아붙일 수 있을까.

그런 극성스런 우리네 아줌마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그 어려 운 경제위기도 극복해왔고, 또 21세기 나라를 이끌어갈 무수한 인재들을 길러왔다.” (황경애·아줌마닷컴 대표)

하지만 문제는 “요즘 우리 주변에서 더 이상 아줌마를 무식하고 촌스럽다고 감히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데 있 다. 침실에서, 음식점에서, 지하철에서 창피함도 모르고 촌스럽 고, 뻔뻔스럽고, 날쌘 아줌마들의 이야기는 더욱 폭넓고 깊게 생 산되고 유포된다. 왜? 책의 진단은 이렇다.

어머니/아줌마들의 존재가 “고도의 정치적 목적을 가진 픽션” 이자, “예측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이 기 때문이다. 한국적 가 부장제에서 “결혼한 여성이 자신의 성 역할에 충실하며, 가정에 만 머무를 때” 그녀는 어머니지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집 밖으로 나올 때” 그녀는 아줌마다. 그녀가 내게 밥을 해줄 때는 어머니지만, 그녀 자신이 음식점에서 남이 해준 밥을 먹을 때 는 아줌마다. 여전히, 아들이 어머니에게 원하는 것은 변화무쌍 하고 끝이 없다.

4.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 풀이는 공무원 시험에서, 대학 입시에 서… 여성이 欖?? 남성들의 기득권에 균열이 가면서 이미 시 작됐다. 이래저래 한국적 가부장제가 해체되면서, 어머니가 되면 서 잃어버렸던 여성들의 언어 찾기가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불사조 아줌마 신화도 사라질까. 정씨는 말한다. “앞으로 딸들은 아버지의 검은 잉크를 엎지르고 어머니의 젖으로 만든 흰색 잉크로 어머니/아버지에 대해 다시 써야 한다. 이제 아들은 어머니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딸은 어머니를 자 신에게 투사하지 말고 스스로 욕망하는대로 살아야 한다. 사회는 여성을 어머니로부터분리시키고,‘성스러운’ 어머니의 일을 남 성에게도 부과해야 한다.”〈끝〉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kr